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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용준 Jun 12. 2018

악의 심연을 들여다보는 프로파일러, 데이비드 핀처

<마인드헌터>는 데이비드 핀처가 마주본 악의 평범성을 공유하는 장이다.

데이비드 핀처가 냉혈한 싸이코패스를 묘사한 스릴러 장르 연출의 대가라고 생각해 왔다면 그건 오해다. 그는 남다른 악인을 연출하는데 관심이 없다. 그는 도처에 만연한 악의 평범성 자체를 마주보길 권한다. <마인드헌터>는 바로 그런 진심으로 내뱉은 긴 호흡이다. 

“왼쪽 담장을 가리키고 최대한 세게 휘둘러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 메이저리그의 유명한 홈런타자가 남긴 말이 아니다. 2013년, 넷플릭스의 <하우스 오브 카드>의 제작에 참여하고, 일부 에피소드를 직접 연출하며 처음으로 시즌제 드라마 연출 경력을 쌓은 영화감독 데이비드 핀처가 발음한 언어다. 그리고 <마인드헌터>는 넷플릭스와 손을 잡고 제작한 데이비드 핀처의 두 번째 TV시리즈다. 그가 다시 한번 왼쪽 담장을 가리키며 타석에 들어선 것이다. 


<마인드헌터>는 FBI 요원 출신 작가 존 더글라스의 동명소설을 극화한 작품이다. 존 더글라스는 FBI의 행동과학부라는 부서에서 근무하는 동안 강력범죄를 저지른 흉악범들을 만나 인터뷰를 했다. 여대생 연쇄살인마였던 에드 켐퍼와 리처드 스펙 그리고 악명 높은 살인마로 꼽히는 찰스 맨슨을 비롯한 수많은 범죄자들을 만나고자 미국 각지의 교도소를 찾았다. 그리고 그들의 인터뷰를 통해 파악한 범죄자들의 심리와 행동패턴을 정리해 나갔다. 그것이 바로 오늘날 말하는 프로파일링의 시초였다. <CSI> 같은 범죄수사물이나 스릴러 장르의 영화에 심심찮게 등장하며 익숙해진 그 용어 말이다. 


<마인드헌터>는 1977년 미국에서 새로운 수사기법을 정립하게 된 FBI 요원 홀든 포드(조나단 그로프)와 빌 텐치(홀트 맥칼라니) 그리고 정신분석학자 웬디 카(안나 토브)가 소속된 FBI의 행동과학부가 당대에 존재하지 않았던 프로파일링의 개념을 정립하고 이를 개발해가는 과정을 그린다. 하지만 데이비드 핀처는 ‘FBI가 어떻게 프로파일링 기법을 완성했는가?’라는 질문에 답하기 위해 <마인드헌터>를 제작한 것 같지 않다. “<양들의 침묵>을 보고 FBI에 지원한 사람이 아주 많았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내게 “<마인드헌터>가 <양들의 침묵> 같은 반향을 일으킬까요?”라는 질문을 하는 사람도 많았다. 내 대답은 그렇지 않다. <마인드헌터>는 비인간성의 자취를 추적하는 이야기에 가깝다.” <마인드헌터>는 프로파일링을 설계한 FBI의 활약상을 그린 작품이 아니라 프로파일링의 밑그림이 된 지난 시대의 그림자를 들추는 작품에 가깝다. 


<마인드헌터>는 여러모로 데이비드 핀처의 지난 연출작 <조디악>을 떠올리게 만든다. 1960년대부터 1970년대 사이 미국 샌프란시스코 일대에서 악명 높은 연쇄살인마로 꼽힌 조디악을 추적한 인물들에 관한 영화 <조디악>은 156분에 육박하는 러닝 타임에 달하는 작품이지만 이렇게 긴 러닝 타임 속에서 피가 튀는 장면이 등장하는 건 두세 차례에 불과하다. 쫓기는 자와 쫓는 자 사이의 심리적 거리감을 이용한 사이코 스릴러적 긴장감을 <조디악>은 크게 활용하지 않는다. <마인드헌터> 역시 마찬가지다. 싸이코패스로 꼽히는 당대의 연쇄살인마들과의 인터뷰가 등장할 뿐 그들이 벌인 살인 장면 같은 건 좀처럼 등장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이 종종 소름 끼치는 긴장감을 전달하는 건 결국 우리가 지금 진짜 일어났던 무언가를 생생하게 듣고 있다는 실제적인 감각을 일깨우는 덕분이다. 어쩌면 <마인드헌터>는 광기라는 단어로 손쉽게 규정해서 눙치려 했던, 어떤 시대를 숱하게 유린했던 끔찍한 실패담을 뒤늦게 되새기는 경험이라 결국 아찔할 수밖에 없다. 

사실 데이비드 핀처의 초기작인 <세븐>의 모티프가 된 것도 연쇄살인마 조디악이다. 그가 조디악 같은 연쇄살인마에게 관심을 갖게된 건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그는 조디악이 샌프란시스코에서 살인을 벌인 그 시절에 샌프란시스코를 마주보고 있는 금문교 맞은 편인 마린 카운티에서 성장했다. “캘리포니아 북부의 도로는 우리에게 큰 갈림길이나 다름 없었다. 사람들이 다른 사람을 사냥해서 만족감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7살의 나이에 처음으로 알게 됐다. 매우 무서운 일이었다.” 결국 데이비드 핀처가 영화나 드라마를 통해 연쇄살인마의 모습을 관객 앞에 제시하는 건 단순히 장르적 쾌감을 끌어올리겠다는 야심 따위를 위해서가 아닌 것이다.  


내가 살인마 같은 존재에 계속 매료되는  우리가 그런 이들의 행위를 단순히 광기라고 규정하기 때문인  같다연쇄살인마가 되려면 적어도   이상 살인을 저질러야 한다다시 말해서  번의 살인 이후 잡히지 않아야 한다그러려면 살인을 치밀하게 계획해야 한다그런데 그런 이들은 대부분 평범한 얼굴을 하고 있다연쇄살인마가 무서운  바로 그런 존재이기 때문이다그래서 그들의 행위를 단순히 광기로 정의해선  된다.” 그렇다데이비드 핀처는 비범한 악을 전시하며  세계와 무관한 듯한 영화적 체험을 선사하는 대신 도처에 자리한 악의 평범한 민낯을 드러내 보임으로써 관객의 현실에 경종을 울린다그리고 데이비드 핀처는 최근  인터뷰에서 <마인드헌터시즌2에서 1979년부터 1981 사이에 벌어진 아틀란타의 아동살인사건을 다룰 것이라 밝혔다 세계에 수많은 악이 존재하는 이상데이비드 핀처의 영감이 마를 일은 없을  같다이것은 비극일까희극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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