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르 (미카엘 하네케, 2012)
앞선 미카엘 하네케 감독의 두 작품 [하얀 리본]과 [히든]과 다르게 아무르는 선형적인 영화다.
묘사도 직접적이며, 대부분 사실을 다룬다.
아무도 모르는 비밀스러운 사실이 아니라, 대부분 사람들에게 조금씩 다른 형태로 찾아올 진실이다.
우리는 고운 모습으로 죽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사람은 저마다의 기품이 있다.
기품 있는 사람일수록 그의 삶은 풍성하다. 의식주의 기본을 토대로 쌓아 올린 저마다의 윤택한 삶은 그들의 취향과 식견이 되어 각자의 색깔을 낸다. 집이란 그 색깔이 내려앉은 공간이며 그들의 삶을 비춰볼 수 있는 곳이다.
현관문이 부서져있던 그날 밤, 그들의 온건한 집으로 무엇이 들어왔을까. 그들의 삶에는 어떤 것이 침투했을까. 외부로부터 쏟아져 들어오는 걸 막을 수 없게 된 집은 그 색깔을 유지할 수 있을까.
돌연 뇌기능이 떨어진 아내는 손과 발을 쓰기가 어려워졌다. 피아니스트였던 그녀의 삶은 분명 저 위까지 닿여있는 예쁜 상아탑이었는데, 의식주에 근간이 비어버리니 그 높이를 유지할 수 없다. 네 손으로 막아보려 해도 와르르.. 높았던 만큼 그 낙차가 너무나도 크다.
도리가 없다. 방법이 없다.
집 안에서만 이루어지게 된 그들에게 세계란, 곳곳에 걸려있는 풍경화들처럼 아름답고 박제된 것이다.
더 이상 그곳은 탐험해야 할 살아있는 공간이 아닐지 모른다.
말을 못 하게 된 아내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지금 나를 인지하고 있을까?
그녀가 피아노를 치는 모습이 눈앞에 있다. 그녀가 설거지를 하는 모습이 저 너머에 있다.
그녀에겐 늘 전심으로 말을 건다. 어떤 이야기를 또 해주었다. 이야기를 끝내야 할 것 같다.
꽃을 하나하나 다듬었다. 그녀는 참 아름다운 사람이었다.
아름다운 모습만을 보이고, 남기고 싶었다. 이미 그럴 수 없지만..
영화를 보며 울었다. 사람을 사람으로 남기는 조건은 무엇일까? 그것은 왜 이다지도 쉽게 소실되는 것일까.
우리는 존엄이라는 것을 지키기 위해 어떤 선택을 할 수 있는가. 그 어떤 선택도 존엄과 멀어질 뿐일 때, 그 선택을 한 사람을 누구도 탓하지 않아야 한다고 나는 부탁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