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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희봉 May 17. 2022

[책소개-과학자] 위대한 여성과학자들

위대한 여성 과학자들(살림지식총서 389) | 송성수 | 살림 - 교보문고 (kyobobook.co.kr)


위대한 여성과학자들, 송성수, 살림, 2011, 95쪽(살림지식총서)


지난 번에 이어 또 과학자 이야기다.

저자는 서울대 무기재료공학과 졸업, 서울대 과학사 및 과학철학협동과정 석사 박사 학위를 마쳤고, 부산대학교 교수이다. 학계의 전문가가 대중들이 읽을 수 있는 책을 내주는 건 너무나 반갑다.

살림지식총서는 아주 짧은 책들이고, 이 책도 채 100페이지가 안 된다. 그만큼 부담 없이 읽을 수 있으면서, 내용이 충실하다는 느낌이 든다.

서론 격인 <남성의 과학을 넘어서>가 제일 먼저 나오고, 마리 퀴리, 리제 마이트너, 이렌 퀴리(마리 퀴리의 딸), 바바라 매클린톡, 레이첼 카슨, 도로시 호지킨, 로잘린드 프랭클린을 소개한다.

길지 않지만, 매우 충실한 요약이고, 과학과 삶을 잘 서술했는데,내 느낌에는 과학에 얽힌 개인적인 삶을 조금 더 중요시한 서술이다.

서론은 좀 무겁다. 페미니스트 과학기술학은 여성학(gender studies)와 과학기술학(science and technology studies)의 접경지대라고 한다. 복잡한 이야기를 이런 작은 책의 한 챕터로 짧게 담을 수는 없을 것이다. 


마리 퀴리의 고생담과 성공담은 너무나 잘 알려져 있다.

퀴리 이야기를 읽으면서 까마득히 잊어버렸던, 교과서에 실린 이야기들이 생각났다. 어릴 적 이름은 마냐 스콜로도브스카, 학교는 러시아어 수업을 강요받지만, 모국어로 공부한다. 장학관이 순시를 오면, 가장 우수한 학생이던 마냐가 러시아어로 능숙하게 책을 낭독한 일. 이 일화는 일제 강점기에 일본어만 사용해야 했던 우리 나라 상황과 맞물려 머리속에 깊은 인상을 남겼다. 그리고 이 이야기만 보면 자동으로 소환되는 알퐁소 도데의 <마지막 수업>, 도데의 또 다른 서정적인 단편인 <별>, 그리고 왠지 도데의 별과 느낌이 비슷한 황순원의 <소나기>까지 줄줄이 떠오른다.  마리 퀴리는 1867년생이고, 그 시대에 폴란드는 없었다. 거의 100년쯤 전부터 러시아, 프로이센, 오스트리아가 폴란드를 여러 차례에 걸쳐 분할했고, 1차대전이 끝난 뒤에야 독립한다. 그러니까 마리 퀴리, 어릴 적 이름 마냐가 태어났을 때 폴란드는 몇십 년째 나라 없이 러시아 지배를 받고 있었고, 아빠는 김나지움 수학 물리 담당교사였는데 러시아어 수업을 거부해서 실직했고, 돈이 없어서 식구들이 병에 걸려도 치료를 제대로 못받을 지경이었다. 어머니는 결핵으로 죽고, 큰언니는 장티푸스로 죽었다고 한다. 19세기까지는 이렇게 자식이 죽고 식구들이 죽는 것은 어느 집안에나 있는 일이었다. 현대 의료의 혜택을 누리고 있는 우리는 그 시대 사람들의 심성을 이해하지 못한다.


과학자들 삶을 둘러보면서 부족했던 역사 공부를 한다. 그러니까 마리 퀴리가 태어났을 즈음은 유럽에서는 영토 전쟁, 유럽 바깥에서는 식민지 쟁탈전이 진행 중이었다. 스페인, 네덜란드, 영국은 일찌감치 유럽 밖으로 눈을 돌려 아메리카, 아시아, 아프리카로 나가고, 프랑스, 독일, 오스트리아, 러시아는 유럽 안에서 영토를 넓히려고 치고받고 싸우면서, 약소국들을 먹어치웠다. 제국들의 세력 확장이 어느 정도 이루어진 다음에는 서로 충돌해서 1차대전이 벌어지고, 그걸로도 갈등 해결이 끝나지 않아서 2차대전이 일어났고, 그 와중에 조선도 뒤늦게 나라를 빼앗기고, 2차대전 끝난 뒤에는 냉전이 이어지고, 이제는 강대국들의 직접적인 영토 확장은 끝났나 싶었는데, 마리 퀴리에게 러시아어 수업을 강요하던 그 러시아가 다시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것이 현재이다. 역사는 반복된다. 역사가 반복된다기보다, 불씨가 꺼지지 않았으면 불이 또 붙을 거다. 일본도 확장 욕구를 완전히 내려놓지 않은 것으로 보이고, 러시아도 먼 거리에 있지 않다. 제국의 확장에 따라 마리는 러시아어를 배우고 도데의 알자스 사람들은 독일어를 배우고, 우리는 일본어를 배우도록 강요당했다. 지금 우리는 자발적으로 영어를 배우려고 난리다. 뭔가 싶다.


마리 퀴리의 업적과 일대기를 여기에서 요약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이 책을 읽거나, 프랑스 영화 <마리 퀴리>를 넷플릭스에서 찾아봐도 좋을 것이다. 그는 엄청난 능력, 엄청난 노력, 엄청난 조력, 엄청난 기회를 누려서 역사에 길이 남는 과학자가 되었다. 엄청난 능력은 노벨상을 두 번 받는 등 스스로 입증했고, 엄청난 노력에는 잘 알려진 일화가 많다. 어린 시절에 가정교사로 돈 벌어 5년 동안 언니 학비 대준 일, 라듐 분리하려고 광석 한 열차분을 받아서 손수 정제한 일, 말이 정제지 그 많은 광석을 가마솥에 넣고 끓여서 열차 한 칸 분량에서 한줌도 안되는 샘플을 얻었다고 한다. 말 그대로 삽질이다. 엄청난 조력은 표현이 좀 이상하긴 한데, 마리 퀴리가 폴란드에 그대로 있거나 했다면 피에르 퀴리 같은 일급 물리학자를 만나지도 못했을 거고, 차별을 받기는 했지만 파리라는 문명의 센터에 있었다는 뜻이다. 또, 과학자로 이름을 날리려면 19세기 후반에 태어나는 게 제일 좋았을 거라는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해 본다. 과학혁명 2차 빅뱅 초기(내 마음대로 만들어낸 용어다)였으니까. 어쨌거나 마리 퀴리는 정규분포에서 몇 시그마 밖에 있는 아웃라이어다. 마리 퀴리의 조국 폴란드의 수도 바르샤바는 그때나 지금이나 문명의 센터라고는 할 수 없을 것같다. 그러면 서울은? 문명의 센터일까? 아직은 아닌 것 같다. 문명의 센터가 되려면 세계를 주도하는 새로운 것들이 쏟아져 나와야 할 텐데, 서울이 그런 곳은 아닌 것 같다. 그렇다면, 과학에서 마리 퀴리 같은 아웃라이어가 되고 싶다면, 문명의 센터로 떠나는 게 유리하다는 뜻이다. 마리 퀴리와 같은 잠재력을 가진 사람은 많지는 않겠지만 어느 집단에서나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그렇다면 이런 사람들이 아웃라이어가 되도록 돕는 조건을 갖추면 아웃라이어는 나온다. 물론, 서울이 문명의 센터가 되는 것, 내가 또는 누군가가 과학의 아웃라이어가 되는 것이 중요한지 좋은지는 달리 생각해볼 문제이다. 통계에 따르면 평균에서 예를 들어 5 시그마 밖의 아웃라이어는 몇백만에 하나다. 하지만 통계는 전체적인 시점일 뿐이고, 개인은 개인의 삶은 살아간다. 자기 앞의 삶이다. 

 

리제 마이트너는 1878년생이어서 마리 퀴리보다 11년 아래이고, 빈 출생이다. 오스트리아, 그러니까 폴란드를 나눠먹었던 강대국의 수도다. 당시에는 문명의 한 센터였다. 마리 퀴리는 경제적으로 쪼들리지만 아버지가 교사였으니까 나름 문화적 자산을 갖춘 집안이었다. 마이트너는 부모가 모두 유대인이었고 부유했던 것 같다. 여러 모로 마리 퀴리와 상반된 조건이다. 리제 마이트너는 문명의 센터에 부유한 집안 출신이고, 마리는 변방의 가난한 집안 출신이다. 마이트너는 빈 대학에서 볼츠만의 수업을 들었고, 박사학위를 받은 뒤에 베를린 대학교로 가서 박사후 과정을 한다. 나중에는 두 사람의 상황이 역전된다. 1차대전이 끝나고 폴란드는 나라를 찾았지만 오스트리아는 제국의 지위를 내려놓아야 했고, 나중에는 나치 독일에 합병된다. 베를린에 있던 마이트너는 나치 치하에서도 유대인이지만 외국인이어서 박해에서 예외였는데, 오스트리아가 졸지에 합병되는 바람에 자국인이 되어 박해 대상이 되었다. 결국 쫒겨난다. 마이트너는 핵분열을 발견했지만, 그 업적으로 동료인 오토 한은 노벨상을 받고 마이트너는 제외된다. 또 베를린에 있던 시절에 여성은 연구소에 출입할 수 없다는 관례 때문에 청소부들이 사용하는 반지하 뒷문을 이용했다고 한다. 마리 퀴리는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는데, 파리와 베를린의 차이인 듯하다. 마리 퀴리는 방사선 과다 노출로 여러 가지 병으로 고생하다 67세에 죽었다. 리제 마이트너는 90세 생일을 앞두고 죽었다.


이번 글은 어쩌다 책 내용보다 엉뚱한 이야기로 채웠다. 이 책에는 참고 문헌이 붙어 있다. 

박민아, 퀴리와 마이트너: 마녀들의 연금술 이야기, 김영사 2008

오조영란, 홍성욱, 남성의 과학을 넘어서: 과학의 새 길을 연 여성 과학자들, 창비, 2003

데이비드 보더니스, 마담사이언티스트


이런 책들이 보인다. 책에 참고 문헌이 있는 것은 미덕이다. 그래야 꼬리에 꼬리를 무는 독서가 가능하다.

이 글을 쓰면서 참고문헌에 들어 있는 <퀴리와 마이트너>는 참고하지 못했다. 그냥 내 생각으로 썼는데, 전문가의 비교는 어떨지 궁금하다. 


과학자 이야기는 과학을 이해하는 단서로도 활용할 수 있고, 역사와 사회를 향해 확장해 나갈 수 있는 기지 역할도 한다. 무엇보다, 무엇이든 사람이 하는 일이라는 시각에서 볼 때 많은 사정들이 잘 이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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