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림

by 방훈

- 김기림


나의 소년 시절은 은(銀)빛 바다가 엿보이는 그 긴 언덕길을 어머니의 상여(喪輿)와 함께 꼬부라져 돌아갔다.

내 첫사랑도 그 길 위에서 조약돌처럼 집었다가 조약돌처럼 잃어버렸다.


그래서 나는 푸른 하늘 빛에 호져 때없이 그 길을 넘어 강(江)가로 내려갔다가도 노을에 함북 자줏빛으로 젖어서 돌아오곤 했다.


그 강(江)가에는 봄이, 여름이, 가을이, 겨울이 나의 나이와 함께 여러 번 댕겨갔다. 가마귀도 날아가고 두루미도 떠나간 다음에는 누런 모래둔과 그리고 어두운 내 마음이 남아서 몸서리쳤다. 그런 날은 항용 감기를 만나서 돌아와 앓았다.


할아버지도 언제 난 지를 모른다는 마을 밖 그 늙은 버드나무 밑에서 나는 지금도 돌아오지 않는 어머니, 돌아오지 않는 계집애, 돌아오지 않는 이야기가 돌아올 것만 같아 멍하니 기다려 본다. 그러면 어느새 어둠이 기어와서 내 뺨의 얼룩을 씻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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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림(金起林, 1908~?)


호는 편석촌(片石村)이고 본명은 인손(仁孫)이다. 1908년에 함경북도 학성에서 출생하였고 1921년에 보성 고보 중퇴 후 도일, 릿쿄(立敎) 중학에 편입하였다. 1926년에 니혼(日本) 대학 문학예술과에 입학하였고, 졸업 후 조선일보 기자를 지냈다. 1931년 신동아에 ‘고대(苦待)’, ‘날개만 돋치면’을 발표하여 등단하였다. 1933년에 이효석, 조용만, 박태원 등과 ‘구인회(九人會)’를 창립하였고 1935년 장시 ‘기상도(氣象圖)’를 발표하였다. 1945년, ‘조선 문학가동맹’의 조직 활동을 주도하였고, 1950년 전쟁 중에 납북되었다. 시집에 기상도(1936), 태양의 풍속(1939), 바다와 나비(1946), 새 노래(1948)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