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훈
세상, 그리고 나
- 방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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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
내가 발을 디뎠기에 세상은 존재했다
두 눈은 세상을 보았고
두 손은 세상을 만졌고
두 발은 세상을 걸었다
내가 발을 디뎠기에 세상은 존재했다
물
내가 멈추지 않고 흘렀기에 세상은 생명을 가졌다
입은 세상의 공기를 호흡했고
코는 세상의 냄새를 맡았고
가슴은 세상을 담았다
내가 멈추지 않고 흘렀기에 세상은 생명을 가졌다
불
내가 의미가 있었기에 세상도 의미가 생겨났다
나로 인하여 네가 생겨났고
나로 인하여 사랑이 생겨났고
나로 인하여 슬픔이 생겨났다
내가 의미가 있었기에
세상도 의미가 생겨났다
바람
내가 눈을 뜨자 세상은 열렸다
잠시 내 곁에 머무는
바람이
내게 말을 건낸다
"나는 당신이에요"
내가 눈을 감자 세상은 닫혔고
세상은 바람처럼 내 곁에 다가왔다가
바람처럼 떠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