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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훈 May 02. 2018

관찰 11 - 2

- 방훈의 글쓰기 교실 17

방훈의 글쓰기 교실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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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찰 11-2


난로에서 옹이 많은 소나무 땔감이 타닥타닥 기름 튀기는 소리를 내며 타는 동안, 가냘픈 몸집의 할머니가 저녁마다 흔들의자에 앉아 콧노래를 부르며 모카신(바닥이 평평하고 부드러운 인디언 신발) 한 켤레를 만드는 데는 꼬박 일주일이 걸렸다. 할머니는 먼저 갈고리 칼로 사슴 가죽을 찢어서 끈을 만든 다음, 빙 돌아가며 테두리를 꿰맸다. 이렇게 해서 구두가 완성이 되자 이번에는 그것을 물에 담갔다. 이 젖은 구두를 신고서 방안을 왔다 갔다 하면서 구두를 말리는 일은 내 몫 이였다. 이렇게 말리면 신발이 발에 딱 맞아 공기처럼 가볍게 느껴진다.
그날 아침, 자리에서 일어나 멜빵바지를 입고 잠바 단추를 잠그고 난 나는, 드디어 모카신 속에 가만히 발을 집어넣었다. 주위는 아직 어둡고 추웠다. 나뭇가지를 뒤흔드는 아침 바람조차 불지 않는 이른 시각 이었다.
할아버지는 “새벽에 일찍 일어나면 산꼭대기까지 데리고 가겠다”고 하셨다. 그러나 ‘깨워주겠다’ 고는 하시지 않았다.
“남자란 아침이 되면 모름지기 제 힘으로 일어나야 하는 거야”
할아버지는 조금도 웃지 않는 얼굴로 나를 내려다보시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렇지만 할아버지는 자리에서 일어나신 후 여러 가지 시끄러운 소리를 내셨다. 내 방 벽에 쿵 부딪치기도 하고, 유난스레 큰 소리로 할머니에게 말을 걸기도 하셨다.
사실 나는 그 소리 때문에 눈을 뜬 것이다. 덕분에 한 발 먼저 밖으로 나간 나는 개들과 함께 어둠 속에서 할아버지를 기다릴 수 있었다.
“ 아니, 벌써 나와 있었구나!”
할아버지는 정말 놀랍다는 얼굴로 말했고,
“예, 할아버지.”
내 목소리에는 뿌듯한 자랑이 묻어 있었다.
할아버지는 우리 둘레를 겅중겅중 뛰어 다니는 개들에게 손가락을 내밀고 “너희들은 그냥 있거라”라고 지시했다. 개들은 꼬리를 사리면서도 졸라대듯이 끙끙 거렸다. 모드는 컹컹 짖기까지 했다. 그렇지만 어느 개도 우리를 따라 오지 않았다. 모두들 그 자리에 서서 빈터를 빠져 나가는 우리를 실망한 눈빛으로 바라보고만 있었다.
나도 시냇가 둑길을 따라 만들어진 야트막한 오르막길을 올라가 본적은 있었다. 꼬불꼬불 구부러진 그 길을 따라 더듬어 가다 보면, 꽤 널찍한 풀밭이 눈앞에 펼쳐진다. 할아버지는 그 곳에 마구간을 지어 노새와 소를 기르고 있었다. 그러나 오늘은 그 쪽 길로 가지 않고, 곧장 오른쪽으로 꺾어지더니 산허리를 돌아 올라가기 시작했다. 이 길은 계곡을 따라 이어지는 길이 그렇듯이 꽤 가파른 경사를 이루면서 위로 이어져 있었다. 나는 급한 경사를 온몸으로 느끼면서 종종걸음으로 할아버지 뒤를 따라 걸었다.
그런데 그 전과는 뭔가 다른 게 느껴졌다. 할머니가 말씀하신대로 어머니인 대지, 모노라(Mon-o-lah)가 내 모카신을 통해 나에게 다가 온 것이다. 여기서는 볼록 튀어나오거나 밀쳐 올라오고, 저기서는 기우뚱하거나 움푹 들어간 그녀의 존재가 내 몸으로 전해져왔다...... 그리고 혈관처럼 그녀의 몸 전체에 퍼져 있는 뿌리들과, 그녀 몸 깊숙이 흐르는 수맥의 생명력들도, 어찌나 친절하고 부드러운지 그녀의 가슴 위에서 내 몸이 통통 뛰는 것 같았다.
모두가 할머니가 말씀하신 그대로였다.
차가운 공기 탓에 내 입김은 뿜어져 나올 때마다 작은 구름을 이루었다. 저 멀리 아래쪽에 개울이 놓여 있는 게 보였다. 벌거벗은 나뭇가지 아래로 이빨처럼 자라난 고드름들에서는 물방울이 똑똑 떨어졌다. 더 높이 올라가니 길바닥에도 얼음이 깔려 있었다. 이제 어둠은 사라지고 새벽 회색빛이 사방을 뒤덮었다.
할아버지가 멈춰 서서 길섶 쪽을 가리켰다.
“여기가 야생 칠면조가 다니는 길이야. 한번 보련?”
나는 쪼그리고 앉아서 그 작은 발자국들을 보았다. 그것은 가운데 동그란 자국을 중심으로 사방으로 퍼져나간 줄무늬 모양이었다.
“이제 덫을 놓아볼까.”
길을 따라가던 할아버지가 얼마 안 가 그리 깊지 않은 구덩이를 찾아냈다.
우리는 먼저 구덩이 위에 수북이 쌓인 나뭇잎부터 치웠다. 그리고 나자 할아버지는 긴 칼을 끄집어내서 땅을 파 들어가기 시작했다. 파낸 흙은 낙엽들 사이에 뿌렸다.
가장자리를 볼 수 없을 정도로 구덩이가 깊어지자 할아버지는 나를 구덩이에서 끌어 올렸다. 우리는 나뭇가지를 끌고 와서 그 구덩이에 걸쳐놓고, 그 위에 나뭇잎 한 무더기를 뿌려 놓았다. 그러고 나서 할아버지는 그 긴 칼로 야생 칠면조가 다니는 길에 구덩이로 비스듬히 이어지는 작은 도랑을 파더니, 주머니에서 붉은 인디언 옥수수 알갱이들을 꺼내 도랑을 따라 쭉 뿌려나갔다. 구덩이 속에도 옥수수 한 움큼을 던져 넣었다.
“자, 이제 가자.”
할아버지는 다시 숲길을 오르기 시작했다. 서리가 내린 것처럼 땅에서 솟아오른 얇은 얼음들이 발밑에서 부서졌다. 맞은편 산이 훨씬 가까워졌다. 그럴수록 골짜기는 가늘고 길게 갈라져서 저기 까마득히 발아래로 멀어졌다. 그 갈라진 바닥에는 칼날 같은 시냇물이 담겨 있었다.
우리는 길에서 벗어나 낙엽위에 주저앉았다. 그 때 마침 아침 해님이 산꼭대기로 고개를 내밀어 계곡 전체에 첫 햇살을 비추기 시작했다.
할아버지가 주머니에서 건빵과 사슴고기를 꺼냈다. 우리는 산을 바라보면서 아침식사를 했다.
산꼭대기에 폭발이라도 일어난 것처럼, 반짝이는 빛들이 하늘 위로 솟구쳤고, 얼음에 덮인 나뭇가지들은 햇빛을 받아 눈이 부실정도로 반짝 거렸다. 아침 햇살은 물결처럼 아래로 내려가면서 밤의 그림자들을 천천히 벗겨가고 있었다. 정찰을 맡은 까마귀 한 마리가 하늘을 날면서 날카롭게 세 번 울었다. 아마 우리가 여기 있다는 걸 알리는 신호였으리라.
이제 산은 기지개를 켜며 일어나 천천히 하품을 하고 있었다. 하품으로 토해낸 미세한 수증기들이 공중으로 흩어졌다. 해가 나무에서 죽음의 갑옷인 얼음을 서서히 벗겨감에 따라, 산 전체에서 살랑거리고 소곤거리는 소리들이 되살아났다.
할아버지도 나처럼 눈을 모으고 귀를 기울이고 계셨다. 아침 바람이 나무 사이에서 낮은 휘파람 소리를 일으키는 것에 맟추어 산의 소리도 점점 커져갔다.
“산이 깨어나고 있어.”
산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할아버지가 낮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그래요, 할아버지. 산이 정말 깨어나고 있어요.”
그때 나는 다른 사람들이 잘 이해할 수 없는 어떤 것을 할아버지와 내가 함께 받아들이고 있는 중이란 걸 깨달았다.
밤의 그림자는 이제 점점 더 아래로 밀려나더니, 그리 넓지 않은 풀밭을 가로 지르면서 뒷걸음질 쳤다. 풀들이 무성하게 자란 그 풀밭은 햇빛을 받아 물결처럼 반짝였다.

포리스트 카터의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 중에서.


1925년 생으로 체로키 인디언의 혼혈인 포리스트 카터는 유년시절 부모를 잃고, 인디언 할아버지 할머니의 보호 아래 인디언 방식으로 성장했으며 그 경험을 바탕으로 늦은 나이에 작가가 되었습니다.
일종의 자서전적 소설인 이 소설은 당시에는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으나 사후 재조명되었고 베스트셀러가 되었습니다.


아이 스스로 선택하고 성취하게 하면서도 자연과 교감하고 경외하며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가르치는 조부모의 배려와 사랑을 느낄 수 있는 일부분을 발췌했습니다.
특히 어스름한 새벽부터 먼동이 트고 아침 햇살이 세상의 문을 여는 순간까지 아이의 시점에서 관찰하고 묘사한 부분에서 작가의 사실적이고 세밀한 관찰력을 만나게 됩니다.
작가가 살았던 깊은 산속 집안에 가득한 사랑과 자연이 만드는 소리, 계절을 알게 하는 풍경과 시시각각 변하는 아침 햇살의 눈부심, 동물들의 습성과 새벽길을 함께 나선 할아버지와의 유대감 그리고 어린 인디언의 발길로 처음 걸어보는 숲과 대지의 감동과 새로운 도전에 대한 설렘과 두근거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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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습문제
- 신발에 대한 기억을 글을 써 봅시다. 지금까지 관찰하지 않았다면 자신이 신고 있는 신발을 찬찬히 살펴보면서 신발의 의미에 대해서 생각해보며 글을 써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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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습문제
- 위에 있는 예문처럼 인디언 꼬마의 시선처럼 자신이 경험했던 숲을 써 봅시다. 천천히 머릿속에서 자신이 경험했던 숲의 모습들을 그려가며 소설 속에서 일부 숲의 묘사가 있다는 마음으로 숲에 대해서 써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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