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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운둥빠 Jan 06. 2021

내 의지, 실력과 상관없이 실패하기도 한다

늦은 나이에 미국 유학 도전, 복병의 등장으로 갈등 시작

결국 두 번째 고시 도전도 실패했다. 29살이었다. 부모님은 이제 그만 취업하라고 하셨다.  

이제 우리도 곧 은퇴다.
10년 동안 고시 공부 뒷바라지했는데
이제 와서 또 대학원 가고 유학까지 가면
우리가 언제까지 네 뒷바라지를 해야 하느냐.
이제 그만 취업해라.

다소 많은 나이였지만 나는 대학원에 가고 싶었다. 대학에 입학하면서부터 미국에 유학 가서 박사학위까지 받고 싶었다. 행정고시는 대학교 1학년 때 부모님의 권유로 시작한 것이었다. 부모님께서 중앙부처 공무원인 5급 사무관으로 시작하면 국비로 유학을 갈 수 있다고 해서 시작했다.


20대는 부모님의 뜻을 따라 10년 동안 고시 공부를 했다. 좋아하는 농구도 포기하고 연예인 소개팅까지 거절하며 했다. 많은 것을 포기했다는 이야기다. 30대에도 내가 원하는 방향의 삶을 살지 못하면 평생 후회하고 부모님을 원망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부모님은 완강하셨다. 부모님이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아니었다. 그래도 30대는 내가 원하는 대로 살고 싶었다. 결국 부모님 몰래 대학원 시험을 보러 갔다. 처음으로 부모님 뜻을 따르지 않았던 것 같다.


합격했다! 고시 공부를 헛한 것은 아니었다. 따로 대학원 시험을 준비하지도 않았는데 붙었다. 그것도 우리나라 최고라고 하는 대학원이었다. 20살에 실패한 SKY 캐슬 입성을 29살 늦은 나이에 결국 하게 되었다.


30대는 드디어 내가 원하는 삶을 살 수 있게 됐다는 생각에 기뻤다. 대학원에 진학해 미국 유학을 준비했다. 이때 나보다 먼저 대학원까지 마치고 취업했던 엘리트 동생이 갑자기 등장했다. 결혼을 하겠다고 한다. 동생은 사회 초년생이었으니 당연히 모아놓은 돈이 없었다. 부모님께 신혼집을 장만해야 하니 1억 원을 달라고 했다. 고지식했던 우리 부모님은 뒤통수를 제대로 맞았다. 당신들이 부모님의 도움 없이 맨손으로 시작했기 때문에 자식들도 취업만 하면 알아서 결혼하는 줄 알았다고 한다. 당장 1억 원이 어디 있나. 있을 리가 없다. 안타깝지만 우리 집은 흙 수저 집안이다.


동생의 신혼집 장만 비용 1억 원 때문에 1차 충돌이 있었다. 당시 아버지는 이미 은퇴하셨다. 1억 원이 있을 리도 없었다. 부모님은 어떻게든 대출을 받아서 동생에게 5,000만 원은 주겠다고 했다. 동생은 무조건 1억 원을 달라고 했다. 대학교 4년 동안 전액 장학금을 받았고 과외를 해서 용돈을 많이 아꼈으니 1억 원은 받아야 하지 않았냐는 것이 동생의 논리였다.

     

이 와중에 상견례를 했다. 나도 참석했다. 의례 하듯이 한정식 집에 모여 '자식 잘 키우셨습니다' 덕담을 주고받고 있었다. 우리 아버지께서 대뜸 말씀하셨다.

결혼식은 대전에서 하겠습니다.


사돈어른들의 표정이 굳었다. 내 동생도 당황했고 예비신부도 표정이 일그러졌다. 당연히 동생네와 사돈어른들은 서울에서 결혼할 것으로 생각하셨나 보다. 순간 침묵이 흘렀다. 나는 분위기가 굉장히 이상하다는 것을 느꼈다. 우리 부모님만 모르셨던 것 같다. 일단 상견례 자리에서는 결혼식 장소 가지고 논쟁은 없었다. 상견례 이후부터가 문제였다.

동생과 부모님이 싸우기 시작했다. 동생은 언제 지방에서 결혼하기로 했냐고 부모님께 따지기 시작했다. 예전부터 본인 결혼은 서울에서 할 거라고 부모님께 계속 얘기했다고 한다. 동생 말에 의하면, 당시에는 분명 부모님이 서울에서 결혼해도 된다고 대답하셨다고 했다. 부모님은 먼 미래의 일이라 심각하게 안 받아들이셨던 듯하다. 그래서 동생네는 이미 서울 결혼식장을 계약하고 계약금까지 지불했다고 했다.


부모님은 동생이 서울에서 결혼하는 것에 대해서는 들은 바 없다고 했다. 집안의 첫 결혼이고 당신들의 터전인 대전에 지인들이 있기 때문에 무조건 지방에서 해야 한다고 밀어붙였다. 동생과 부모님의 싸움은 거의 매일 2시간 넘게 지속되었다. 동생과 예비신부의 싸움도 계속됐다. 나는 중간에서 중재를 했다. 동생이 부모님과 싸우고 나면 부모님과 통화해서 동생 사정을 설명하고, 동생한테는 부모님 입장을 이해시키려고 노력했다. 내 유학 준비는커녕 대학원 생활도 제대로 하기 힘들었다. 몇 달 동안 싸움이 지속되니 서로가 점점 지쳐가기 시작했다. 동생은 상견례 이후 어떤 결혼 준비도 진행할 수 없었다. 당연히 예비신부와의 사이도 틀어졌다. 부모님은 혈압이 오르셔서 병원을 다니기 시작하셨다. 부모님이 진짜 화병으로 돌아가실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결혼식 장소 때문에 문제인 것도 있지만 부모님은 당장 1억 원을 어떻게 마련해야 하는지도 걱정이었다. 집안이 정말 난리가 났다. 이게 이렇게까지 되어야 하는 일인지도 잘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그냥 한쪽에서 양보하면 될 텐데... 다들 고집을 꺾지 않았다. 동생, 예비신부, 부모님 모두가 본인들 입장에서만 얘기했다. 중간에 있는 나만 곤란했다.


대학원 수업 듣고 유학 준비로도 시간이 모자랄 판에 집안싸움 중재에 하루의 1/4 이상을 투입하고 있었다. 동생과 이야기하고 나면 부모님과 또 이야기, 그리고 또 동생, 또 부모님... 끝이 없었다. 드라마에서나 보던 일을 내가 겪고 있었다. ‘파혼이 이래서 나오는구나’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동생네는 진짜 파혼 직전까지 갔다. 동생도 거의 포기 상태였다. 현실에서 그걸 직접 겪어보니 정말 어이가 없었다. 난리도 아니었다.


이러다가 부모님께서 쓰러지실까 봐 심각하게 걱정되었다. 결혼식 장소, 신혼집 장만 비용 1억 원. 부모님은 화병이 나서 매일 병원을 다니셨다. 화병으로 병원을 다니시는 부모님께 내 유학비용까지 지원해달라는 말을 꺼낼 수가 없었다. 알아보니 미국 유학은 학비를 포함한 초기 정착 비용으로 7,000만 원 정도가 필요하다고 했다. 부모님은 동생이 필요하다고 한 1억 원도 없어서 대출받으러 은행을 50군데나 돌아다니셨다는데... 도저히 내 유학비용은 말할 수 없었다.


20대에는 부모님께서 원하시는 고시 준비를 하며 내 인생을 제대로 못 살았다. 30대는 내가 원하는 길을 가고 싶었다. 그렇지만 이 상황에서 나까지 내 입장만 고집하면 집안이 완전 풍비박산 날 것 같았다.     


가족의 건강과 평화
내 인생의 진로     


2개의 가치를 놓고 심각하게 고민했다. 내가 원하는 삶을 살기 위해 가족의 건강과 평화는 뒷전으로 할 것이냐. 내 진로보다는 가족의 건강과 평화가 더 중요한 것이냐를 놓고 심각하게 고민했다. 내가 유학을 포기한다고 가족의 건강과 평화가 보장되는 것은 아니었지만, 이 상황에서 내가 유학을 간다고 고집하면 가족의 건강과 평화는 없어질 것 같았다. 무엇보다 부모님을 잃을 수는 없었다. 진짜 돌아가실 것 같았다. 결국 나는 미국 유학을 포기했다. 내 나이 30살이었다. 나의 의지, 실력과는 전혀 상관없이 나는 미국 유학에도 실패했다. 그렇게 나는 30대에도 내가 원하는 삶을 못 살게 되었다.


그래서 동생 결혼은 어떻게 됐느냐. 결국 동생이 부모님께 용서를 구했고 부모님도 양보를 해서 서울에서 결혼식을 진행했다.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 지금은 결혼해서 아주 잘 살고 있다. 내 유학만 날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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