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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운둥빠 Jan 25. 2021

쌍둥이 없는 자유시간도 실패

좋아하다 벌 받다

정말 살기 힘든 나라 A국에 도착하는 날부터 1년 넘게 하루 2시간도 못 자면서 쌍둥이들을 돌보며 정말 지옥 같은 시간을 보냈다. 우리 쌍둥이들이 유독 밤에 잠을 안 잔 건지... 애들도 그 나라에 적응을 못 한 것인지는 모르겠다. 

 

결론은 A라는 나라는 정말 살기 힘들다는 것이다. 글이나 말로는 아무리 설명해도 그 생생함을 전하기는 힘들다. 그냥 유튜브에 “중동 드리프트”라고 검색해서 영상을 1~2개 보면 감이 온다. 임산부, 노약자, 어린아이들은 절대 보지 마라. 정신 건강에 좋지 않다.

아무튼 우리 정서로는 절대 이해 못하는 사람들 때문에 나도 몇 번이나 죽을 뻔했다. 정신이 조금 이상한 사람들과 어울려 살아야 했다. 물론 이상한 사람들만 있는 것은 아니지만 기본적으로 조금 이해하기 힘든 행동을 하는 사람의 비율이 굉장히 높다. 내 기준에서는 그냥 미를 친 사람들이다.


이런 나라에 어린 쌍둥이와 아내를 데리고 와서 살아야 한다는 것이 정말 싫었다.     


내가 회사 생활을 그렇게 잘못했나?
나름 열심히 한 것 같은데...
퇴근을 너무 빨리했나?
왜 나를 이 나라에 보냈지?
죽으라는 건가?


정말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회사 생활 제대로 못한 남편 만나서 쌍둥이를 데리고 A국이라는 이상한 나라까지 와서 고생하게 된 한 아내에게 정말 미안했다. 이직할 기회를 버리고 버틴 결과가 A국 발령이었다. 객관적으로 놓고 봤을 때 회사에서 A국을 보낸 직원이라는 것은 그렇게 일을 잘하는 직원이라고 평가받은 것이 아니다. 


깔끔하게 인정했다. 나는 초기 회사 생활에 실패했다. 엄청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나는 원래 A국이 아니라 조금 괜찮은 나라에 발령받는 걸로 되어 있었다고 한다. 밝힐 수 없는 이유 때문에 A국으로 바뀐 것이라고 한다. 최근에 알았다.      


A국에 간 지 8개월 정도 지났을 때였다. 한국에 출장 갈 일이 생겼다. 우울해하는 아내를 한국에 잠시 데려갈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열심히 출장 준비를 하고 8개월 만에 한국에 왔다. 


한국이 이렇게 살기 좋은 나라인 줄 몰랐다. 미국이나 유럽 등 선진국에서 사는 분들도 한국에 오면 그렇게 한국이 좋다고 하시는데 나는 살기 어려운 A국에 있다 한국에 갔으니 더 좋게 느껴졌다.      


출장 일정을 마치고 아내와 쌍둥이들을 일본에 계신 처가에 데려다 놨다. 아내에게 독박 육아에서 잠시 휴식을 주기 위함이었다. 나는 혼자 A국으로 복귀했다. 처가는 내가 A국으로 가기 직전 장인어른께서 일본으로 발령을 받아서 일본에 거주하고 계셨다. 한두 달 정도 처가에서 장모님 도움을 좀 받으며 쉬는 것이 아내에게 정신적, 육체적으로 좋을 것 같았다.     


나는 혼자 A국으로 돌아왔다. 아내와 쌍둥이들이 없는 집은 천국이었다! 


드디어 자유다!
이 얼마만의 자유시간인가?
운동도 하고 책도 보면서
결혼 전의 우아한 싱글 라이프를
즐겨야지!


솔직히 좋아했다. 잠도 푹 잘 수 있었고 자유시간도 생겼다. 그동안 못했던 운동도 할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 

   

드디어 아내와 쌍둥이들이 없는 첫 주말, 신나는 마음에 주재원과 교민들로 구성된 축구 동호회에 나갔다. 이 얼마만의 축구인가. 축구든 뭐든 그냥 운동을 할 수 있다는 것 자체에 신났다. 


몸을 풀고 운동장으로 나가 처음으로 공을 멋지게 빡! 찼다. 그런데 허리가 아팠다. 삐끗한 모양이다. 이대로 공 한 번 차고 집에 갈 수는 없었다. 이 얼마만의 자유 시간이고 소중한 운동 시간인데 공 한 번 차고 허리 좀 삐끗했다 고 포기할 수 없었다.     


2시간 동안 통증을 참으며 열심히 그라운드를 누볐다. 골도 넣었다. 신났다. 허리는 계속 아팠다. 일단 집에 갔다. 그날 밤, 집에 쌍둥이도 없는데 나는 한숨도 못 잤다. 


허리가 끊어질 것 같았다. 이건 분명 심각한 문제가 생긴 것이었다. 누울 수도 일어날 수도 없었다. 너무 고통스러웠다. 군 입대 전에 어깨 교통사고를 당했을 때보다 더 아팠다.     


큰일이었다. 침대 밖으로 나올 수도 없었다. 아내는 하필 A국이 아니라 일본에 있었다. 사경을 헤맸다. 밤새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날이 밝아 오고 출근은 해야 하는데 도저히 일어날 수가 없었다. 


8개월 동안 밤새 쌍둥이를 안고 잠도 못 자면서 허리가 많이 약해진 상태였는데 그것도 모르고 축구공을 차다가 허리가 뒤틀린 것이었다. 바로 쉬었으면 그렇게까지 악화되지 않았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오랜만에 운동 좀 해보겠다는 욕심에 2시간 동안 참으며 뛰다가 허리가 아예 망가져 버렸다.      

침대 밖으로 나오는데 30분 이상 걸렸다. 양말을 신을 수도 없었다. 허리를 아예 움직일 수 없으니 옷 입는 것도 너무 아팠다. 어떻게 출근 준비를 했는지도 기억도 안 난다. 그냥 허리가 너무 아팠다는 사실과 침대에서 일어나는데 30분, 옷 입는데 또 30분 이상 걸렸다는 것밖에... 


앰뷸런스에 실려 갔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A국이라서 앰뷸런스 부르는 법도 모르니 그냥 억지로 일단 출근했다.     


출근해서 사정을 말하고 바로 병원에 갔다. 다행히 뼈에는 이상이 없다고 한다. 그냥 약만 주고 가라고 했다. A국의 병원은 정말 열악하다. 걷기는커녕 아예 움직이지도 못하는 환자한테 약만 주고 땡이다. 물리치료 이런 것도 없다. 


아내가 A국으로 돌아올 때까지 싱글 라이프는 하나도 즐기지 못하고 고통의 날만 보냈다. 벌 받았다. 아내와 쌍둥이들이 없다고 신나게 운동하고 책 보면서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려다 쌍둥이가 있을 때보다 더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냈다.     


A국에서 혼자만의 자유로운 첫 방학도 이렇게 실패했다. 우아한 싱글 라이프에 대한 기대는 허리 부상으로 또 이렇게 산산조각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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