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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운둥빠 Mar 04. 2021

아버지의 이름으로 나는 오늘도 버틴다

아버지의 이름으로...

     

쌍둥이들을 키울 때 너무 힘들었다. 정말 치열하게 살았다. 하루에 2시간 이상 잔 적이 없다. 안 마시던 커피까지 마시기 시작했다. 버틸 수가 없었다. 낮에는 열심히 회사 일을 하고 집에 가면 바로 쌍둥이들과의 육아 전쟁이 시작되었다. 밤새 우유 먹이고, 트림시키고, 기저귀 갈고 재우려고 시도하고... 


등 센서가 달린 둘째는 등만 바닥에 닿으면 울었다. 아무리 슬로 모션으로 천천히 내려놓아도 울었다. 둘째가 울면 당연히 첫째도 같이 운다. 지옥 같은 날이었다. 


아버지의 이름으로 버텨!


당시 나의 전쟁 같은 육아를 옆에서 지켜보시던 지인께서 내게 해주신 말씀이다. 그렇다. 아이가 세상에 태어나는 순간 아버지도 세상에 같이 태어난다. 그전까지는 누군가의 아들, 누군가의 남편, 직장 동료, 선후배, 친구라는 역할밖에 없었다. 내 아이가 세상에 태어나서 울음을 터뜨리는 순간, 나도 아버지가 되어 눈물을 흘린다. 


아버지는 버텨야 한다. 아버지의 이름으로 버텨야 하는 것이다. 아버지라는 이름을 부여받는 순간 기쁨보다는 고통이 더 많은 것 같다. 아닌 사람들도 있겠지만 나는 그랬다. 기쁨이 1이라면 고통은 100이었다. 집안에서도 직장에서도 '아버지의 이름으로' 참아야 하는 것들이 많았다.


오늘 아빠와 통화를 했다. 징그럽지만 나는 아직도 아빠라고 부른다. 그렇다고 아빠랑 친한 것도 아니다. 별로 유대감도 없다. 집안 형편이 어려워 어렸을 때 따로 살아서 그렇다고 핑계를 대본다.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이 어색하다. 오늘 새삼 느꼈다. 어색하다기보다는 아빠가 버텨온 세월의 무게를 느끼기 싫어서 아버지라고 안 부른 것이다. 내가 아빠를 아버지라고 부르는 순간 우리 아빠가 견딘 아버지라는 이름의 무게를 느끼게 될 것 같았다.


얼마나 힘든 세월을 사셨을지 감도 오지 않는다. 정말 치열하게 사셨을 것이다. '아버지의 이름으로' 수많은 고통들을 이겨내셨을 것이다. 오늘 영상통화를 하며 주름지고 머리숱이 많이 없어진 아버지의 얼굴을 계속 봤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우리 아빠가 많이 늙으셨구나.

인고의 시간이 우리 아빠 얼굴에 나이테를 만들었구나.’     


나도 점점 늙고 있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점점 예전 같지 않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몸도 많이 망가졌고 외모도 이제 중년이 다 되어 간다는 것을 느낀다. 내 찬란했던(?) 젊은 시절도 가고 언젠가는 나도 우리 아이들에게 늙은 아버지의 모습을 보여줄 날이 올 것이다. 


나는 태어나서 아빠에게 딱 1번 대들었다. 물건을 바닥에 집어던지면서 반항했다. 처음이자 마지막 반항이었다. 우리 아빠는 믿었던 큰아들이 반항했을 때 얼마나 큰 충격을 받으셨을지...     


실패한 인생


아빠가 내게 했던 말이다. 20대 초반이었다. 아빠가 봤을 때 나는 실패한 인생이었다. 아버지의 이름으로 온갖 고통을 참아가며 키워놨는데 큰아들이 당신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 실패한 인생으로 보였을 것이다. 당시에는 아빠가 하신 말씀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내가 뭐 얼마나 실패했길래 그렇게 심한 말을 하셨는지...

 

내가 아버지가 되어보니 우리 아빠의 마음이 이해가 될 것도 같다.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렇게 치열하게 버티면서 아들을 키웠는데 믿었던 아들이 그 기대를 내가 져버렸으니... 이제는 내가 아빠를 조금 이해해 보려고 한다. 아직 완벽하게 이해가 되지는 않는다. 내 자식들은 아직 그렇게 크지 않았고 나한테 반항도 하지 않았으니까. 


언젠가는 내 아이들도 나한테 반항하는 날이 올 것이다. 지금이야 작고 귀여운 꼬마 공주들이지만 언젠가는 자라서 나한테 대들기도 하고 나를 무시하기도 할 것이다. 나도 아빠한테 그랬으니까. 충격받지 않으려고 한다. 아이들에게 아무런 기대도 하지 않으려고 한다.


나는 그냥 아버지의 이름으로 버티려고 한다. 아버지는 원래 그런 거니까. 아버지라는 이름을 받게 해 준 아이들에게 감사하려고 한다. 아버지가 되면서 나는 엄청나게 성장했다. 아이들이 없었다면 내가 이렇게 간절한 마음으로 살지 않았을 것이다. 성공하려고 지금처럼 독하게 노력하고 있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냥 현실에 안주하며 살았을 것 같다. 


아버지의 이름으로... 

나는 그렇게 성장하기 위해 오늘도 버틴다.     


고마워. 나를 너희들의 아버지로 태어나게 해 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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