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답게 죽기로
내가 궁금했던 것은 '연도'였다. 2년전 장례식장에서 '연도'라는 것을 처음 알았는데, 불교에서 하는 염불의 리듬과 비슷하다 보니 나에게는 어색함을 넘어 신기하기 까지 했었다. 천주교식 장례식도 처음이어서 더 그렇게 느꼈던 것 같은데, 불교였던 내가 느끼기에는 종교가 다름에도 공통점이 있다는 것에 더 신기해했던 기억이 난다. 그러면서 동시에 '저게 무슨 뜻이지?'라는 궁금증이 일었다. 손님이 오신다고 하여 연도가 끊기거나 하지 않는다. 오시든 말든 연도는 마무리 될 때까지 이어지고, 또 다시 시작되어지고. 그 과정도 나는 궁금했다. 특히 천주교 신자분들이 오시면 그분들 중에는 자리에 앉으셔서 같이 연도를 하시기도 했다.
그때 남자친구의 누나에게 "저 분들이 하는 곡소리 같은게 뭐예요?"라고 물어봤었다. 그 장례식은 남자친구의 아버지 장례식이었기 때문에 장례 치르는 이틀동안 장례식장을 오가며 귀에서 잊혀지지 않았던 그 곡소리와 몇번이고 이어지는 그 모습이 궁금해서 물어봤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그 곡소리가 '연도'라는 것도 그때 알았고.
그때 남자친구 누나가 '단테의 신곡' 이야기를 해줬다. 단테의 신곡을 보면 지옥, 연옥, 천국으로 나뉘어서 망자의 죽은 후 모습을 보여주는데 그 중 연옥을 보면 장례식장의 모습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얘기해줬었다. 그러면서 덧붙였던 언니의 말..."책이 좀 어려워~"라고... 나는 그 말에 웃음으로 대답했지만 속으로는 '제목 자체가 그런거 같아요'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내가 이 책을 읽게 된 건, 제목만으로도 어려울 것 같은 느낌이 가득한 이 책을 한 번은 읽어보고 싶다는 욕심이 있었고, 어렵다는 책이니 더 읽어봐야겠다는 도전정신도 있었다. 그런 와중에 나는 불교에서 천주교로 종교를 개종하게 되었고 그렇다보니 이 책에 더 욕심이 생겼다. '나도 이 정도는 알고 싶다'라는 욕심 말이다.
보통 '단테의 신곡'은 두 권의 책으로 나뉘어져 있다. 성경의 시편처럼 쓰여진 책이 대부분인데 아무래도 내 능력상 그렇게 쓰여진 책을 읽는데는 상당히 어렵겠다는 생각을 했고, 어렵기로 유명한 책인 만큼 더 재미있게 읽고 싶은 생각이 있었다. 성경처럼 말이다. (요즘 성경 통독중인데, 이 재미가 참 쏠쏠합니다.)
그래서 단테의 신곡을 열심히 찾았다. 구매후기 읽은 후기를 살펴보며, 잘 풀어 쓰여진 책이 분명히 있을것이라 믿으며 찾고 또 찾았다. 특히나 나처럼 천주교에 대해 모르고, 하느님에 대해 알아가는 사람에게는 좀 더 쉽게 풀어진 책이 좋겠다고 생각해서 열심히 찾았는데, 그 책이 이 책이었다. 이 책, 그 기준에 딱 맞는 책이다. 읽을 거리는 왼쪽에, 그 내용에 맞는 그림은 오른쪽에. 소문보다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이라서 손에서 놓기 힘들다. 다음 단계의 지옥과 연옥과 천국이 궁금해서 말이다.
끊임없이 이어지느 지옥과, 죄를 하나하나 지우며 죄의 무게를 줄이고 천국으로 가는 길을 오르는 것은 산 사람의 기도로 해야 하므로, 산 사람들의 기도를 기다리는 것이 연옥이다. 이것을 위해서 '연도'를 하는 것이다. 연옥에서 만난 단테의 오랜 지인은 '되돌아가면 가족들에게 나를 위해 기도해달라'고 부탁을 전했다. 그 길을 지나 천국으로 가는 길을 읽고 있던 나는 왜 긴장이 풀리게 되었던 걸까. 드디어 천국이여서 그랬던 걸까.
'단테의 신곡'이 고전이다보니 번역가도 여럿이고, 출판사도 여러곳이다. 그렇다보니 후기를 보고 책을 고르게 되었는데 '이렇게 쉬워?' 싶을 만큼 술술 읽히는 책이다. 대신, 이 책의 주석은 꼼꼼하게 읽어보는 게 좋다. 보통 두 권짜리로 발간된 책에 비해 내용이 많이 압축되어 있기 때문에 주석의 설명이 전체흐름을 정비하는데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다음에는 두 권짜리 단테의 신곡을 읽어보고 싶은 욕심으로 이 책을 마무리 했는데, 그 두 권짜리의 책은 언제 읽게 될까? 어렵다는데..ㅎㅎ
"인간이란 이렇게 불편한 존재로구나. 무슨 일만 있으면 겁을 먹고, 그림자에도 깜짝 놀라는 나약한 짐승과도 같구나. 고귀한 명예와 영광이 기다리고 있는데도, 겁이 나서 꼬리를 말고 도망치고 싶어 하다니. 그렇다면 내가 이야기를 해 주지. 쓸데없는 걱정은 그대의 앞길을 가로막을 따름이라네."
"그들은 세례를 받지 못했어. 개중에는 훌륭한 사람도 있지만, 믿음을 가지는 데 절대적으로 필요한 세례 의식을 받지 못한 게야." / "그렇다면 주 예수 그리스도 이전에 태어난 사람은 어떻게 되는가요? 개중에는 선량하고 위대하 나사람도 있지 않은가요?" / "어느 때 어느 분이 이곳으로 오셔서, 아담과 아벨, 그리고 노아와 모세, 그리고 많은 영혼들을 데리고 지복의 길로 인도하셨다네. 잘 기억해두게. 선량한 혼일지라도 그때까지 구원받지 못했음을. 따라서 일단 이곳으로 들어 온 이상, 그분이 오실 때까지느 위로 오를 희망이 없었다는 사실을."
"아무리 더러운 대지라도, 움트는 새싹은 더없이 청결하고, 활짞 핀 꽃은 아름다운 법이라네. 조심하게, 단테. 자네는 잡아채려 하는 그 힘들로부터 몸을 지도록 하게. 내가 살아만 있다면 자네의 힘이 되어 주련만.... 그러나, 사랑하는 제자여, 나는 언제까지고 자네에게 심어 준 그 지식 속에 살아 있다네."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절대로 망각해서는 안 돼. 개인적인 사연에 푹 빠져든다는 것은 자네 마음이 외롭기 때문이야."
"겁먹지 말게. 단테! 의연한 자세를 보여야 해."
인간은 왜 고향을, 그리고 친구를 배신할까? 안테노라가 적과 내통하지 않았더라면, 트로이 전멸의 비극은 없었을 것이다. 그를 믿고 마음을 열어 준 자들을, 왜 속이고 죽여야 한단 말인가! 톨로메아의 초대를 받아 술에 취해 자다가 목이 잘린 자들. 그렇다면 그들이 톨로메아를 믿지 않는 게 좋았을까? 그리고 유다, 은혜는 원수로 갚아야 하는 건가?
"내 몸은 벌써 나폴리에 묻혔다네. 그러니 내게 그림자가 없을 수밖에. 그러나 이렇게 이야기하고, 느끼고, 또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내가 자네의 길을 안내해 주고 있다는 사실이야. 무엇이 중요한지를 알아야 해. 논리르 넘어서 두 눈으로 보아야 한다네. 그 이유를 생각한 건 좋지만, 그럴 때도 쓸데없는 논리를 적용해서는 안 돼. 논리를 따르면, 사람이 나아갈 길은 너무도 좁아,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자연의 경치처럼 바라보면 된다네. 모든 것은 불가사의, 모든 것은 자연, 마음에 비치는 그대로를 아는 게 중요한 일이라네."
"이런 높고 험한 곳에 서려면 날개가 있어야 해. 그렇지 않으며 참으로 힘든 일이야. 날지 않고 오를 수 있는 높이가 아니니까...... 그러나 우리에게는 날개가 없어, 그럼 어떡하면 좋을까? 역시 뛰어 볼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우리가 하 수 있는 일이란, 믿음을 가지고 발 아래를 잘 살피는 것뿐이지 않을까. 그리고 시간을 지워버릴 것...... 조금 전까지 밑바닥에 있던 우리가 이렇게 높은 곳에 올랐다느 것은, 우리가 날았다는 증거가 아닐까......"
현세의 사람이 연옥의 섬에 사는 사람을 위해 기도를 올릴 때마다 이렇게 기다려야 할 시간이 줄어든다고 하네.
"단테, 왜 그리 마음이 어지러운가. 다른 사람의 말소리가 그리 마음에 걸리는가. 보아야 할 것, 보지 말아야 할 것, 들어야 할 것, 듣지 말아야 할 것을 좀 더 명료하게 구분하도록 하게."
그들은 세상에 남은 가족과 친구들에게 지금 지옥이 아닌 연옥에 있다는 사실을 알리고 싶어 했다. 한 사람, 그리고 또 한 사람, 차례대로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모두들 내 눈을 바라보면서, 심각한 표정으로 조심스럽게 말했다. 산 사람이 올리는 기도가 얼마나 효과가 있는지 나로서는 알 길이 없지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무슨 일이든 해 주고 싶은 마음을 불러일으키는 그런 간절한 눈길이었다.
만물이 모두 신의 뜻에 의해 결정되어 있다면, 살아갈 의미가 있을까? 하늘이 자네들을 움직이게 한다네. 그러나 그것을 알고, 그것을 빛으로 삼고, 그것을 자신의 힘으로 만들어 간다면, 자네들은 하늘의 작용에도 이길 수 있을 것이야. 그것이 바로 자유가 아니겠는가. 혼란은 자네들 마음속에 있을 따름이야.
"그렇지만 얼마 전만 해도 깊은 숲 속에서 나 자신을 잃고, 거의 죽은 것이나 다름없는 목숨이었어. 앞으로 반드시 아름답게 죽을 생각이라네."
"빛이란 하나의 시선 같은 것이에요. 그러므로 그 빛을 반사하느 밝음도, 그것을 받아들이느 사람의 그릇에 따라 다른 거예요. 빛은, 그것을 받아들이느 사람의 기쁨에 따라, 저절로 그 빛이 강렬해지는 것이에요. 지고천에서 온 우주로 뻗어나가느 사랑의 빛은, 그런 개개의 관계 속에서 확실한 힘을 얻을 수 있는 것이지요."
빛은 춤을 춘다. 내 속에서 뭔가가 사슬을 끊고, 자유로운 긴장감이라고나 할 뭔가가 천천히 밀도를 높여 가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안과 밖의 감각이 없고, 일종의 자장과도 같은 것이 공간을 지배하고 있었다. 그것은 눈에 보이는 것도 아니고, 여기에 확실히 존재한다고 할 수도 없고, 뭔지 모를 애정과도 같이 우리가 분명히 느낄 수 있는 그런 감정의 원형, 또는 감각 그 자체로 느껴지는 힘으로 주위를 지배하고 있었다. / 빛은 그 느낌의 자장이 떠도는 하늘을 자유자재로, 마음먹은 대로 날아다니는 것처럼 보이면서 때로 놀라운 구성력을 보여주었다. 조금씩 천국의 사고원리와 빛들의 표현방법에 익숙해지긴 했찌만, 아직도 그것을 언어로써 이해하려는 사슬에 얽매인 나의 어리석음을 알아채고, 춤추는 빛들이 재빨리 하늘에다 하나의 힌트로써 빛의 문자를 그려 주었다. / 행복했다. 나는 모든 것 속에 있었다. 평화로운 마음으로 베아트리체를 보니, 그 눈동자 속에도 끝없는 우주가 펼쳐져 있었다.
문득, 지금보다 훨씬 약한 빛에도 눈을 뜨지 못했던 내가 이제는 이렇게 쏟아져 내리는 빛도 똑바로 바라볼 수 있다는 사실을 느꼈다. / '눈부심이란 내 눈의 안쪽에 펼쳐지느 나의 어둠과 빛의 낙차'라는 깨달음이 일었다. 여기서 눈을 감아버리면, 마음에 그림자가 생길 것이다. / '눈을 감아야 한다. 알려 해서는 안 된다. 있는 그대로 보는 것. 거울처러머 비추는 것이다.'하고 나는 자신에게 속삭였다. 빛이 더 쏟아져 내린다. 저 먼 곳까지 뻗어 있는 빛의 사다리, 그 높이는 도저히 내 눈이 닿을 수 없는 거리였다. / '억지로 알려 하지 않을 일이다. 어디서, 누가, 무엇 때문에. 그런 말들은 나의 거울을 흐릴 따름이다.' / 빛들이 쏟아져 내리는 저편에는 나를 이끄는 하얀 빛이 있고, 지금 내 눈에 비치는 모든 것은 그것뿐이다.
읽고 나니, 단테의 다른 책들에도 욕심히 생기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