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책은 도끼다 (박웅현)

오독을 위하여

by Bwriter

어제 애인과 데이트 하면서 "다음엔 나 만날 때 책 한권 갖고 나와요."라고 했다. '너 책즘 읽어라'가 아니라 '나 책즘 읽게 놔둬봐봐'라는 뜻으로 말이다.


난 가방에 책 한권은 꼭 들어있다. 언제 어느때에 시간이 생길지 모르기 때문에 책은 항시 대기중이다. 그래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시간은 '기다리는 시간'이다. 그 시간에 책을 볼 수 있으니깐. 예전에는 출퇴근을 지하철 타고 했기 때문에 그 왕복 두 시간은 오롯하게 내가 책을 읽는 시간이었다. 그 시간이 꿀같이 좋아서 출근 시간이 기다려지고 퇴근 시간이 기다려졌었다. 지금은 운전하며 다니다보니 책을 시간이 더 귀해져서 더 책을 챙겨 다닌다. 틈새를 놓치지 않으려고 말이다.


2개월전에 목에서 강의한 적이 있다. 수능시험을 치룬 고3 후배들에게 내 삶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면 된다고 하셨는데 그때 내가 선생님께 드린 말씀은(고1때 담임선생님이 전화를 주셨었다.) "선생님 제가 뭘 잘 살아야 얘기를 해주죠"했더니 "살아 있으면 잘 살고 있는거지"라고 말씀해주셔서 그 말씀에 "네, 할게요"했다. 그래서 내 강의의 시작은 '살아 있으면 잘 살고 있는거다'였다.


그냥 들으면 웃고 넘길 말, '그게 뭐야'라고 스칠 말이 나에게는 와닿은 말이 되었다. '그렇지. 살고 있으면 잘 살고 있는거지. 그게 맞는 말이지' 되뇌이고 되뇌였다. 그냥 넘기려는 말을 생각하는 말로 바꿔주는 것은 책의 영향이 있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후배들에게 그에 대해 이야기해주고 싶었다. 바쁜 대한민국에서 시간내어 책 읽을 수 없으니 틈틈이 읽으라고. 지금 아니면 책 읽을 시간은 더 없다고. 지금이 책 읽기에 딱 좋은 시기라 여기라고. 그리고 책을 읽고 난 후에는 반드시 글을 쓰라고 했다. 쓰고 안 쓰고의 차이는 어마어마 한 것이라고 말하며 말이다.


평소에도 책 읽기를 좋아하는 살마을 보면 '읽고 난 다음에 꼭 써봐'라는 말을 하곤 했었다. 쓰고 안 쓰고의 차이는 크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기 때문에 당차게 힘주어 말할 수 있는 부분이다. 그 차이의 대표적인 것은 내 삶을 사느냐 타인의 삶을 사느냐, 내 생각으로 사느냐 타인의 생각으로 사느냐, 내 선택으로 사느냐 타인의 선택으로 사느냐 일 것이다.


내가 책을 읽고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은 24살이었던 것 같다.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손님이 없을 때는 책을 읽곤했는데 책을 읽다보니 적어두고 싶은 문장이 있는길래 급한대로 옆에 있던 메모지에 옮겨적었다. 그렇게 적은 메모지는 적지않게 많았고, 이걸 어떻게 해야 할까.. 그냥 버리기엔 아깝고.. 버릴거면 쓰지도 않았어야 하는거 아닌가, 라는 생각에 인덱트 테이프를 사서 그 메모했던 부분을 찾아 테이프를 붙이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걸로도 성에차지 않았다. 책을 읽고 그냥 이렇게 끝내고 싶지 않았고, 남기고 싶었다. 내 생각을 남기고 싶었고, 그 문장들을 남기고 싶어서 '독후감'이라는 것을 쓰기 시작한게 26살 부터이다.


그렇게 글을 쓰다보니 회사 팀장님은 칼럼리스트를 해보는게 어떠냐고 하셨다. (그 당시에 나는 싸이월드에 글을 쓰고 있었기 때문에 회사사람도 볼 수 있었다.) 팀장님께 그 말을 들었을 때 중학교때 담임선생님이 해주셨던 말이 생각난다. 담인선생님은 내가 쓴 편지를 보시고는 작가가 되어 보는게 어떠냐고 진지하게 말씀해 주셨던 것이 생각났다. 생각하는 힘이 있었나보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도 틈틈히 책을 읽었다. 문장에 꽂히면 다음 페이지로 넘어가질 않았다. 보고 또 봤어야 했으니깐. 그리고.. 일기의 힘으로 글쓰기를 좋아하게 된 것 같기도 하다.


책을 읽고 글로 남기는 것과 그냥 덮어버리는 것에는 차이가 있다. 한번 더 곱씹어 보느냐 아니냐의 차이는 책을 이해했느냐 안 했느냐보다 당신의 생각은 얼마만큼 길러졌느냐 아니냐고 나뉘기 때문이다. "이 책 재미있어"라는 말 보다는 "이 책을 보면 책을 왜 읽어야 하는지를 알게 돼. 그리고 빨리 읽고 다독하는 것보다 천천히 읽고 생각하는 힘을 기르는게 더 중요하다는 것을 말하고 있기 때문에 책 읽는 사람에게는 도움이 될 수 있는 책이야"라고 말하는 것에는 차이가 있지 않은가?


다시, 책은 도끼다


남보다 더 많이 읽고, 남보다 더 빨리 읽으려 애쓰며 우리는 책이 주는 진짜 가치와 즐거움을 놓치고 있다. 천천히 읽어야 친구가 된다. '천천히 책을 읽는다'에서 '천천히'는 물론 단순히 물리적 시간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읽고 있는 글에 내 감정을 들이밀어 보는 일, 가끔 읽기를 멈추고 한 줄의 의미를 되새겨보는 일, 화자의 상황에 나를 적극적으로 대입시켜 보는 일, 그런 노력을 하며 천천히 읽지 않고서는 책의 봉인을 해제할 수 없다고 나는 믿는다.


박웅현 작가는 책의 봉인을 해제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봉인해제는 어떻게 해야할까? 생각하는 시간을 갖어야만 가능한 것이 봉인해제이다. 빠르게 읽는게 아니라 천천히 읽으며 음미해야 그 책을 봉인해제 할 수 있다. 에세이나 자기계발서를 읽을 때도 마찬가지다. 그런류의 책을 왜 보는지 모르겠다는 의견도 많고, '그래서 뭘 어쩌라고' 또는 '왜 날 가르치려 들어'라는 말을 우스갯소리고 하는 걸 종종 들었었다. 난, 그건 책의 의도를 파악하지 못해서 생긴 착오라 여긴다. 그리고 나약한 람이 그러한 책을 읽는거라고 말하는 사람을 보며 실컨 비웃어준적도 있다. 물론 속으로. 겉으로 비웃다가 한 대 맞을 수도 있으니깐.


참 건방진 생각이다. 사람은 '장담'을 하면 안 된다. 비슷한 상황이 있을 뿐이지 똑같은 상황은 세상에 없다. 공감이 있고 동감이 있을 뿐이지 '나랑 똑같아'라는 건 없다. 사람이 다 다른데 생각도 다르고 감정도 다르고 그 사이 사이에 닮음이 있을 수 있고 비슷한 점이 있을 뿐이지 자기 기준에 '나약한 사람'일고 치부한다면 그 살마 스스로가 나약한 존재가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해본다. 그래서 그러한 장담으로 가볍게 읽을 수 있으나 내면은 묵직한 류의 책을 거부하나 싶기도 하다.


나도 자기계발서, 에세이 많이 읽었는데 그 책으로 뭔가를 배우려고 할 거였다면 나 그 책 안 읽었다. 뭔가를 얻고 싶다면 차라리 '전공책'을 읽어보길 바란다. 나와 비슷한 상황, 나의 어려움과 흡사한 상황에 놓였던 사람의 책을 읽음으로써 그 사람의 생각이 알고 싶고, 그러한 어려움들을 어떻게 버텨냈는지에 대한 것이 알고 싶으며, 그런 와중에 당신의 그런 글들로 위로 받으며 '나만 이런 상황에 놓이는 건 아니네'라는 안도감이 생기기 때문에 '용기'라는 것도 얻게 되고 '희망'이라는 것고 갖게 되어 그런 류의 책을 읽는 거다. 적어도 나는 그렇기 때문에 그런 류의 책을 읽는다. 그럼 그런 생각은 어떻게 생기지? 읽는 도중에 생각한다. 한참 동아 그 문장을 뚫어져라 쳐다보면서 내 입장을 생각해본다. 내 행동과 말이 맞았었는지, 다른 생각과 행동을 할 수는 없었던 것인지에 대해서 생각해보고 작은 팁을 얻기도 하고 때로는 '당신 괜찮아요'라는 의미로 받아들이며 마음을 다잡기도 한다.


다시, 책은 도끼다의 마지막 부분에서 작가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책을 오독하는 버릇이 있다. 그러나 내가 글을 쓸 수 있다는 것은 평소에 책을 오독한 덕분이다.

이 문장은 저를 위한 말입니다. 지금까지의 여덟 번의 강독은 아마 저의 오독이었을 겁니다. 여러분도 기꺼이 오독을 하시길 바랍니다. 정독은 우리 학자들에게 맡겨둡시다. 우리는 그저 책 속의 내용을 저마다의 의미로 받아들여 내 삶에 적용하고 실천하는 각자의 오독으 합시다. 그래서 그로 인해 좀 더 풍요로워진 삶을 살아가는 것이 어떨까요.


에세이에 대한 그들의 오독, 자기계발서에 대한 그들의 오독이길 바라본다. 편견이 아닌 오독 말이다.

그리고 나의 오독도 계속 될 것이다. 다시, 책이 도끼인 것 처럼 말이다.







읽기만 하지 말고 읽은 걸 느껴야 합니다. 그런 후에야 내 안으로 들어온 지식이 지혜가 될 겁니다.

많은 지식을 섭렵해도 자신의 것이 될 수 없다면 그 가치는 불분명해지고, 양적으로는 조금 부족해 보여도 자신의 주관적인 이성을 통해 여러 번 고찰한 결과라면 매우 소중한 지적 자산이 될 수 있다.


저는 저만 아는 답을 찾은 겁니다. 제 주관적 이성을 통해 한 단어를 이해한 거죠. 이런 식의 책 읽기가 되어야 삶이 바뀐다고 봅니다. 그것이 책의존재 의의입니다. 그러하니 읽었으면 내 것으로 만들어야 해요. 그런 면에서 쇼펜하우어는 독서를 하더라도 내 것으로 만드는 독서를 하라는 얘기를 하고 있는 거죠.


지식보다 지혜가 좋죠. 그러나 지혜만 있어서 될 것이 아니라, 내가 그 지혜를 온전히 느껴야 하는 겁니다. 최근에 자주 하는 생각인데 지혜란 것은 크고 넓은 것, 많이 가져야 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한 움큼인 것 같아요. 그 한 움큼을 내 몸으로 체화시켜 삶 속에서 어떻게 실천해나가는지의 여부, 그게 중요한 것 같습니다.


단호한 언어를 가지려면 확고한 신념이 필요해요. 그러기 위해 책을 '제대로' 읽어야 하고 스스로 '사색'도 해야 하고. 다음에 이어지는 문장도 같은 문맥입니다. / "읽기 쉽고 정확하게 이해되는 문체를 만들기 위해서는 먼저 '주장하고 싶은 사상을 소유'해야 한다."


"우리는 작가의 지혜가 끝날 때 우리의 지혜가 시작됨을 느끼고" / 책을 다 읽고 덮었어요. 그걸로 끝이 아니라는 거죠. 끝이 되어선 안 된다는 겁니다. 책을 덮고 더 나아가 느낄 수 있는 독서를 하라는 말입니다.


책은 그렇게 얼어붙은 정신과 감수성을 깨는 도끼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책은 도끼다'인 겁니다.

책이 중요한 이유는 새로운 시선이 들어오기 때문입니다. 그전까지는 그렇게 보지 않았는데 어떤 책을 읽고 나면 그렇게 보게 되는 거죠. 그 시선의 변화가 제일 중요합니다. 그 변화가 나를 풍요롭게 만들어 줍니다.

제가 다독 콤플렉스를 버리자고 자주 말하는데요. 자랑하려고 많이 읽는 게 핵심이 아니죠. 얼마나 체화됐는냐, 얼마나 내 인생에 좋은 영향을 미쳤느냐 이런 것들이 중요합니다.



다시, 책은 도끼다



우리는 책을 왜 읽을까요? 돈을 벌려고 읽을까요? 그럴 가능성이 별로 높지 않습니다. 혹은 자랑하려고 읽을까요? 그것도 아닌 것 같아요. 그렇다면 과연 왜 읽는 걸까요? 제 생각에는 책 한 권을 읽고 아무것도 아닌 것에서 이렇게 우리들의 삶을 위로받을 수 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어차피 모래알 씹듯이 꾸역꾸역 넘겨야 하는게 삶입니다. 그 삶 속에서 덜 힘들 수 있는 방법이 책을 읽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2019.01.14 - 2019.01.11]



뒤이어 나오는 나머지 7강들에서는 언제나 그렇듯 읽은 고전에 대한 박웅현 작가의 오독이 나오는데,

나도 그 고전들을 읽고 나만의 오독을 남기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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