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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 1,2 (백세희)

'너만'이 아닌 '나도'가 될 수 있다

by Bwriter

이 책을 읽은 이야기 보다는, 이 책을 빗대어 내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내가 정신건강의학과에 가게 된 이야기...


내 상태가 정신건강의학과에 가기는 하야 할 것 같은데 쉽사리 가지 못했던 이유는 딱 하나였다. '모르는 사람한테, 처음보는 사람한테, 의사한테 내 이야기를 어떻게 하지? 어떻게 시작해야해?'라는 거였다. 이 불편함과 거북함은 치과가는 긴장감과 같았다고나 할까?


이비인후과, 치과, 피부과, 산부인과를 가게 되면(주로 내가 다니는 병원들) "감기예요", "이가 시려요", "알러지가 올라왔어요", "자궁경부암 검사 하려구요"라고 말하면 된다.


그런데 정신건강의학과는 뭘 말해야 하는지, 내 상태의 어디서부터 어디까지를 말해야 하는지, 내 증세에 대해 '아무렇지 않아요. 정상이예요'라고 하면 어쩌지? 등의 오조 오억개의 고민을 하느라 첫 진료를 위한 긴 시간이 필요했었다.


'괜찮아지겠지', '남들도 나처럼 이러고 살겠지' 그러다가 괜찮아지고, 다시 요동치고. 무슨 미친년 널 뛰듯, 감정 변화의 기복이 길었다가 점점점 짧아지는게 느껴졌다.


그러다가 결국 병원에 갔는데, 오조 오억개의 고민을 언제 했었냐는 듯이 집 근처에 있는 정신건강의학과에 전화 다 돌려서 오늘 당장 진료가 가능하냐고 물었고, 나는 그렇게 2014년 9월 2일에 첫 진료를 받았으며 지금까지 꾸준하게 치료 받고 있다.


치료는 나 처럼 정신건강의학과에 가서 상담과 약물 치료를 같이 하는 경우도 있고, 심리상담하는 곳에서 상담을 받고 약은 정신건강의학과에 연계하여 처방 받기도 한다. 물론 심리상담만 받는 치료도 있다. 선택은 자신의 몫이고 자신과 맞는 병원을 찾기 위해 여러 시도를 하는 사람들도 있다.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 이 책의 작가도 자신과 맞는 병원을 찾기 위해 여러차례의 시도를 했다고 했다.


나같은 경우는 처음 결정한 곳을 지금까지도 다니고 있는데, 처음 집 근처의 정신건강의학과에 전화를 돌리면서 첫 진료 비용, 첫 검사 비용, 앞으로 꾸준하게 진료 받을 겨우 얼마 정도를 예상하면 되는지를 물었고 그 가격은 병원마다 모두 달랐다. 그래서 나는 가장 저렴한 비용의 병원을 고랐다. 대략적으로 비용을 이야기 하자면 초진, 검사 비용이 15만원~20만원, 1회 진료 비용은 2만원~7만원 등 다양하다. 물론 상담 시간이 얼마나 걸리는지에 따라 저 비용이 달라진다.


첫 진료 때 간략한 문진을 작성하게 되는데, 현재의 내 상태에 대해서 무엇이 문제인지를 알 수 있도록 하는 문진인데 이것을 토대로 의사 선생님과 대화를 하게 된다. 그때 의사 선생님의 몇 마디 주고 받은 후 "힘드셨겠어요"라는 말 한 마디에 눈물이 쏟아졌고, 그 자리에서 간단한 우울증 문진검사를 하고 우울증 점수가 나와서 나와서 바로 항우울제를 처방 받아서 먹기 시작한 게 지금까지다.


1주일에 한 번씩 병원에 갔었는데 그때 마다 퉁퉁 부운 눈으로 휴지를 손에 쥐고 나왔었다. 그러기를 2개월 가까이 했던 것 같다. 약을 늘리고 줄이고, 어설프게 끊어도 봤다가 다시 먹기도 하고. 약을 여러번 바꾸기도 하고, 진료 주기를 늘렸다가 줄였다가 하기도 하고. 약을 먹다가 살이 70kg 까지 찌기도 했었다.


잠을 못자서 약을 점점점 늘리게 되었을 때는 저녁 8시에 잠들고 다음날 6시에 일어나야 출근길 운전이 수월할 정도였다. 그렇게 잠을 안 자면 졸면서 운전하게 되었다.


그런 우여곡절의 시간을 보내면서 나는 많이 좋아졌다. 더 이상 울지도 않고, 약을 줄여보고 싶다는 이야기도 선생님께 할 수 있었으며, 약을 죽여서 힘들면 힘들다고 말할 수도 있게되었다.


얼마전에 우울증 검사를 했는데, 경계선에 있다고 하셨다. 그 말을 듣고 처음에는 좋았다. '나 이제 정상 된거야?' 그런데 내가 지금도 항우울제를 먹고 있는데, 이것 때문에 좋아졌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 다음 진료 때 선생님께 여쭤보니 항우울제 때문에 좋아진 상태일 수도 있고, 다른 요소 때문에 좋아진 것일 수 있다고 하셨다. 어느 한 가지 때문은 아니라고... 그래서 약을 안 줄여주셨나?? 그래서 약을 줄려보고 싶었다. 어떤 요소로 인해 내가 좋아진건지 알고 싶기도 했고, 정말 약 때문인지 테스트 해보고 싶었다.


그래서 "그러면... 약을 줄여보고 싶어요."라고 말씀드렸더니 항우울제를 반알 줄여주셨다. 난 약을 줄려달라고 말씀드릴 때마다 항상 이 뒷말이 붙는다. "그러다가 힘들면 말씀드릴게요."


이런 뒷말이 붙는 이유는 어설프게 약을 끊었을 때, 내가 선생님께 많은 이야기를 하지 않고 숨기며' 괜찮아요 괜찮아요 괜찮아요'라고 했었기 때문이다. 환자가 작정하고 말을 안 하면 의사는 알 수가 없다. 그렇게 어설프게 약을 끊었다가 부리나케 다시 약을 먹고, 내원 기간도 다시 1주일에 한번이 되었었다.


그때 선생님이 무슨 말이든 해도 된다고 하시면서 "예를 들면 '어제 뉴스에서 이러이러한 기사를 봤어요'라는 말도 괜찮아요" 라고 하셨었다. 어떤 말이든 일단 해야 한다고.


그 후로는 내 상태가 변한 것 같으면, 마음이 요동치거나 열불나는 있었을 때는 선생님께 말씀드린다. 정확히 말하면 선생님과 이야기를 한다.






펭수는 펭수다.

나는 나다.



내가 이렇게 길게 내 이야기를 하는 것은, 당신이 우울증이라고 의심이 된다면 타인의 시선에 신경쓰지 말고 병원에 가라는 말을 해주고 싶어서다. 가족도 타인으로 생각해야 한다는 말기암 환자의 말을 들었는데, 그 말이 맞다고 본다. 내가 아니면 모두가 타인이다. 본인이 겪어보지 않으면 그 상황들이 얼마나 힘든지 모르는 것은 물론이고 환자를 둔 가족의 입장 역시 환자 당사자들은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서로간의 배려와 이해가 필요하다.


그런데 이게 정신건강의학과와 관련되면 그 시선은 '가족의 창피함'이 되거나, 'OO는 답답해' 또는 '걔는 의지가 부족해'라는 시선을 받기도 한다. 지금은 그나마 그러한 시선들이 많이 줄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지' 문제로 치부하는 경우가 많다.






내 친구는 당당하게 "나는 다름을 인정하지 않아. 이 부분 알고 내 얘기 들어줘"라고 포석을 깔고 얘기를 시작했는데 빙빙 돌려서 말을 시작하는 것보다는 속 시원했으나, 그 사고는 답답했다. 결론은 이거였다. "내가 할 수 있으면 남들도 할 수 있어. 내가 운전 할 수 있으면 A 너도 운전 할 수 있어. 나는 이런 사고 방식이야.", "희배야 시도를 해봐. 나아질 수 있게 밖으로 나가는 시도를 해봐. 너도 할 수 있어. 희배 너도 할 수 있어."내가 듣다듣다... "너는 그렇게 시도를 해볼 수 있을 만큼 건강하다는 거고, 나는 시도가 힘들만큼 건강하지 못한거야."라고 이야기를 해도 자기는 이해가 안 된다고 한다.


다행이도 A라는 친구가 같이 있었는데, 그 친구가 상담사다. 그 친구가 중재를 해줬다. "희배 말대로 희배는 너만큼 건강하지 못한거고, 너는 시도를 해볼 만큼 건강한거야. 그게 둘의 다른 점이야." 그렇게 말을 하며 겨우 정리가 되었지만, 이 친구는 그래도 이해 못하겠다는 표정이다.


내가 얼마나 지쳤던지. '내가 할 수 있으면 너도 할 수 있어'라는 말이 얼마나 잔인한 말인지 모르나보다. 뮤지컬 배우 홍지민이 다이어트 보조제를 홍보하면서 "홍지민이 했으면 나도 할 수 있다"라는 말을 주구장창 하면서 헤드카피처럼 쓰는데, 난 그 글을 보고 '참 잔인한 말을 힘있게 하네'라고 생각했었다. 다이어트에만 국환시켜 듣기에는 너무 포괄적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마치 내 친구처럼.






나는 나다. 다름을 인정해주고 받아들여줬으면 좋겠다. 그날 친구와 얘기하고서 '내가 너의 다름을 인정하면 되지 뭐'라며 나를 위로 했지만, 거듭 생각이 들 수록 답답하고 허무해졌는데, 이유는 이 친구도 우울증 진단을 받고 치료를 받았었기 때문이다. 내가 처음 항우울제를 복용하게 되었을 때 나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약에 댛 많은 대화를 했었는데, 그 날 나에게 '나는 너가 우울증 치료 받는지도 몰랐어'라고 말을 했었다. 그래서 허무했다. 항우울제를 처음 복용하게 되면 구토증세 때문에 먹는 것 자체가 힘들고, 차를 타면 멀미하는 것 같아서 힘들다. 이 친구는 이런 구토 증상 때문에 약을 먹다가 말다가를 반복하다가 결국에는 치료를 포기하고 지금의 남편을 만나면서 완치가 됐다고 했었다. 그런데 그건 네 이야기고, 난 너와 다르다.


결론은 하나다. '거리를 두자'이다. 너로 인하여 내가 힘들 필요가 없다.


「마음이 아픔 사람들이 숨을 쉬듯 당연하게 병원을 찾고 그 어떤 불이익도 받지 않으며, 주변 사람들은 더는 의지의 문제로 치부하지 않는, 마음의 성처도 눈에 보이는 상처와 비슷한 무게로 여겨지는 날이 꼭 오면 좋겠다.」라고 작가는 책의 마지막에 이야기 하고 있다.


100프로 공감, 동감한다. 아직도 '의지' 문제로 치부하는 사람들이 있고, 그런 사람들은 많다. 내 주변에도 있고. 변화하기르 ㄹ바라지만 그게 쉽지 않다는 것도 알기 때문에 변화를 원하는 내가 변하기로 했다. 그 친구와 거리를 두려고 하듯이 되도록이면 그런 사람들을 멀리하기로.


나는 내가 소중하다.

한참 우울증이 심할 땐 내가 소중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제는 아니다. 그 전의 나처럼, 나는 내가 소중하다.


모두에게 좋은 사람이 될 필요는 없다.

그간의 치료를 통해 어렵게 받아들이고 바뀌는 것 중의 하나다. 내가 당신에게 덜 좋은 사람이면 어때?






[2019.09.23 - 2019.10.31]

참을 수 없이 울적한 순간에도 친구들의 농담에 웃고, 그러면서도 마음 한구석에서는 허전함을 느끼고, 그러다가도 배가 고파서 떡볶이를 먹으러 가는 나 자신이 우스웠다.

나처럼 겉으로 보기에는 멀쩡하지만 속은 곪아 있는, 애매한 사람들이 궁금하다. 세상은 아주 밝거나 지나치게 어두운 부분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 같다.


"오늘 하루가 완벽한 하루까진 아닐지라도 괜찮은 하루일 수 있다는 믿음, 하루 종일 우울하다가도 아주 사소한 일로 한 번 웃을 수 있는게 삶이라는 믿음."

말을 해봤자 듣지 않을 거 같은 사람들은 피하는 것도 나를 위한 선택이 될 수 있어요.


사람은 다 입체적이에요. 겉으로는 멋져 보여도 뒤에서는 더러운 행동을 할 수도 있고, 내가 부풀려서 기대해놓고 실망하는 경우도 있어요. 그럴 땐 오히려 '저 사람도 숨 쉬고 사는구나, 별 수 없는 사람이구나'라고 생각하면 나한테도 관대해질 수 있어요.


결국 이것저것 조금씩 시도해보면서 내가 원하는 게 뭔지, 어느 정도로 해야 편한지 알아보는 게 중요해요. 내 취향을 알고, 불안감을 낮추는 방법도 알게 된다면 만족감이 생겨요. 누가 어떤 지적을 해도 받아들이거나 거부할 수 있게 되지요.

일상의 만족도가 떨어지면 가장 원시적인 퇴행으로 돌아가요. 먹고 자는 본능적인 거로요. 만족감의 중추를 가장 편한 곳에서 찾느 거죠. 하지만 먹는 건 만족감이 오래가지 않아요. 운동이나 프로젝트 같은 게 도움이 될 수 있어요. 장기적인 목표를 통해 극복하는 게 좋아요.


다른 사람의 감정 생각하는 거 좋아요, 관심 쏟는 거 좋죠. 하지만 제일 먼저 나를 점검했으면 좋겠어요. 내 기분을 먼저요.

힘들 땐 무조건 내가 제일 힘든 거예요. 그건 이기적인 게 아니예요.


취미 생활이 스트레스가 되면 안 돼요. 하지만 안 하는 이유가 두령무에 굴복해서는 아니었으면 좋겠어요.

나를 편하게 하는 나만의 방법을 계속 찾는 건 중요해요.

누굴 만나든 절대적인 선은 없거든요. 불만도 있을 수 있고요. 늘 부분과 전체를 구분했으면 좋겠어요. 하나가 마음에 든다고 이 사람 전체가 다 마음에 들고, 하나가 마음에 아 든다고 해서 전체가 싫어지는 건 아니잖아요. 좀 다르게 시도를 하면 좋겠어요.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 - 백세희]



나 : 저는 매번 똑같은 문제를 이야기하고, 선생님도 늘 같은 답을 이야기하는 거 같아요. 제 성향이 바뀌지 않으니까 똑같은 문제가 계속 되는 것 같아요. / 선생님 : 지금 말씀하신 게 되게 중요해요. 지금까지는 나도 모르게 했던 행동인데, '내가 늘 비슷한 선택을 하는 구나'를 인지했다는 것 자체가 치료죠.

사실 공포감은 무언가에 대해 '나만 알고 있을 때' 더 커지거든요. 혼자 고통받을 때모다 지금처럼 꺼내는 게 훨씬 좋을 수도 있어요.


힘이 안 나는 사람이 억지로 힘 나는 척하는 것만큼 애잔하고 슬픈 일이 또 있을까.

힘내라는 말, 자신감을 가지고 위칙되지 말라는 말은 때론 독이다. 그렇지 못한 사람의 속내를 파고드는 상처다. 10년간 모든 자기 계발서와 에세이가 채찍질이 아닌 '위로'가 된 것처럼, 모자라도 괜찮고 서툴러도 괜찮다. 힘내지 않아도 괜찮다. 나는 오늘 잘하지도 못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자체가 경험이다 괜찮다.


아마도 삶은 받아들이는 법을 배우는 과정 같다. 받아들이거나 내려놓는 건 삶의 특정 시기에만 꺼내올 태도가 아니라 평생 살아가며 연습해야 할 과제라는 느낌이 든다.


그럴 때 책을 읽는다. 해결할 수 없는 감정을 타인에게 끝없이 털어놓는 것만큼 고문도 없다. 나나 상대에게 모두 의미 없는 감정 소모의 되풀이가 될 뿐이다. 하지만 책은 다르다. 내 생각과 내 상황과 같은 책을 약을 찾듯 찾아 헤매고 종이가 닳을 만큼 읽고 또 읽고, 줄 치고 또 친대도 책은 날 외면하지 않는다. 싫증 내지 않는다. 결국 긴 시간을 딛고 해결책을 얻고, 치유가 될 때까지 조용히 오래 기다려준다. 책의 가장 큰 매력 중 하나다.


할머니만 생각하면 가슴 아픈 게 연민 같아서 싫지만, 사랑이라고 생각하면 조금 낫다. 사랑에서 오는 연민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리베카 솔닛은 『멀고도 가까운』에서 "어떤 감정이입은 배워야만 하고, 그다음에 상상해야만 한다"라고 말했다. 내 안에 없는 씨앗은 절대 자라날 수 없다. 그래서 우리는 평생 타인과 평행선을 달릴 수밖에 없다. 하지만 내 안에 없는 걸 만들어낼 방법은 상상과 공부다. 감정이입 역시 공부하고 상상해야 할 때가 있다.


우리는 줄곧 순간으로 전체를 판단한다.



[2019.10.28 - 2019.11.19]

솔직함을 강요하는 것, 억지로 털어놓게 하는 것만큼 폭력적인 것도 없다고 생각해요.

생각만 하고 있을 때는 감정이 섞여 있잖아요. '그 당시의 감정'을 그대로 품고 있고요. 하지만 말로 꺼냈을 때는 자신을 관찰자 입장에서 평가할 수 있죠. 이성적으로요.

압박이나 불안감이 없다면 발전도 없거든요.


그 상황에서 더 이상 버티기 힘들다면 나를 찔러가면서 버틸 게 아니라, 누군가한테 '나 힘들다, 나 여기서 쉬어가겠다, 돌아서 가겠다'라고 말하는 용기를 내보셨으면 좋겠어요.

지루한데 무기력해. 이게 계속 반복되면서 돌아버릴 거 같은? 그래서 밤 12시에 나가서 공원에 누워 있고 이랬거든요. 숨이 막힐 거 같아서. 하루하루 제 컨디션을 느끼는 게, 아무리 무기력해도 뭔가를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은 하지만 무기력할 때는 그게 안 돼요. 컨디션이 괜찮을 땐 그게 가능하죠.


우울증이라 의욕이 없고 아무것도 하기 싫은 것처럼, 우울증에 걸리면 머리도 나빠져요. 집중력도 떨어지고, 기억력도 떨어지고. 실제로 아이큐 검사를 해도 떨어져요.

침묵도 치료의 과정이라는 말이 인상적이었다. 울증을 앓고 있는 많은 사람 중에 실제로 병원에 찾아오는 사람들은 얼마나 될까.


나는 오로지 나일 필요가 있다.

"역설적으로 들릴지 모르지만 외부로부터 무언가를 얻으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 사람일수록 더 많은 것을 얻는다. 이것은 낯선 방식이긴 하지만 자존감과 자부심은 이런 내려놓기에서 나오는 것이다." - 달린 랜서의 『관계 중독』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 2 - 백세희]



[2019.09.23 - 2019.11.19]



아프면 병원에 가야 낫는다.

마음이 아프면 병원에 가야 낫는다.

이상한 시선으로 바라보지 않았으면 좋겠고,

'의지'가 약해서라는 방구같은 말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참, 못 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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