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6.03 - 난 아직 낫지 않았다

안 나으면 어때? 평생 약 먹으면 어때서?

by Bwri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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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을 못 먹은지 3주가 되어간다.


처음 약을 못 먹은 며칠은 괜찮았는데 하루하루 지날 수록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무기력증, 다리 풀림, 두통... 처음 항우울제 복용했을 때 겪었던 증상이 고스란히 나타나기 시작했다.


하필이면, 이렇게 바쁜 시기에 무기력증이 왠 말이야..


꾸역꾸역 버텨서 급한 것을 끝냈지만, 만족스럽지 못하다. 과제 2개를 끝냈어야 했는데 결국엔 1개 밖에 못 끝냈고, "아, 됐어! 계절학기 등록하든가 내년에 다시 수강하든가 하면 되지 뭐!"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그저 마냥 찜찜했고, 루저가 된 느낌.

과제 1개를 포기하는 것도 꾸역꾸역 포기했다.

이러나 저러나 포기할거면 당차게 할 것이지..


겨우겨우 버티면서 병원 갈 날만 기다리고 있었는데 어제 저녁(시간상 어제지 뭐..) 아빠의 말 한마디에 뒷목이 저리고 아무말도 하고 싶지 않았다. 본인은 말 해놓고 아무렇지 않다. 아주 쿨 하시다. 나만 감정 정리가 안 되는데.. 순간 옛 내 모습이 나왔다.


'차라리 죽고 말지.'

진짜 오랜만에 드는 생각이었고, 눈 앞에 약이 있었다면 먹었을 수도 있었다.

그런데 먹을 약이 없네..


가방에 안정제가 있었구나...

이건 지금 생각났네..


아무튼 아까 그 순간에는 '지금 나한테 약 없는게 다행이다.'라는 생각이 순간 들었다.

진통제 있었으면 보이는 족족이 털어넣었을 것이다.

예전 그때처럼.


진통제 수십알, 수백알 먹는다고 죽지 않는다.

그저 잠만 잘 자다가 일어나지. 속즘 쓰리고. 간에 부담 되고.

뭐 그 정도.


문제는, 그렇게 행동한 것 자체가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이건, '자해'다.


몸에 상처를 내는 것만이 자해라고 생각했었는데, 눈 앞에 보이는 약을 순간의 목적을 갖고 먹어대는 것도 자해다.

난 이걸 상담하면서 '이것도 자해네.'라고 인정했다.


상담 하면서 이 부분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했었고, 상담을 진행하면서 그동안 하루 이틀씩 약을 못 먹어서 남았던 항우울제와 안정제를 굳이 모아두지 말고 버리기로 하고서는 모조리 버렸다.


내가 약을 모으는 이유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병원을 지금 처럼 못 가게 될 때를 대비해서 먹을 수 있는 약을 확보해 두는 것.

또 하나는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 먹을 수 있는 약이 필요해서.


상담 받을 때 이런 이야기 모두 상담선생님과 나눴고, 그때 선생님이 지금 당장 필요한 약이 아니라면 버리는 게 어떻겠냐고 하셨었다. 그리고 난 그 약을 버렸다. '버리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자마자 버렸다. '그래도..'라는 생각이 들면 못 버릴 것 같았다.


그리고 아까 그 상솽에서 그때 상담선생님과의 약속이 문득 생각났다. 그 약속이 생각 났다는 것은 내 정신으로 돌아왔다는 소리다.

그리고 바로 뒤이어 들었던 생각은 '약발이 떨어졌네.. 완전히..'


상담과 약물치료의 조합은 탁월한 선택이었고, 상담이 완료 되었으나 그래도 덜 걱정하고, 덜 불안했던 것은 항우울제 덕분이었다. 나에게는 병원이 있다라는 든든함 말이다.


이번에 약을 긴 시간 동안 못 먹게 되면서 약을 끊을 수 있을까 살짝 기대했지만, 역시나 안 되는거였다는 것과 그것은 과한 욕심이었다는 걸 인정하게 되었다.


이걸 보는 누군가는 '약에 의존하고 있다'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의존성이면 어때서? 그래서 살 수 있잖아.


그 의존성 때문에 사람 하나가 죽겠다는 생각보다는 살겠다는 생각을 할 수 있으면, 그걸로 된거라고 여겨주면 좋겠다.


당뇨 환자가 매일 약을 먹듯, 혈압 환자가 매일 혈압약을 먹듯이, 나에게도 그 정도의 약이라고 딱 그 정도로만 생각해주면 좋겠다.


병원 가고 싶다.

빨리 병원 가서 약 달라고 하고 싶고, 3주간의 내 상태를 주저리주저리 말하고 싶다.


아...

유리멘탈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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