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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칼란드리아 Oct 04. 2022

알랭 드 보통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

*2017년경에 작성한 글입니다. 이후로는 알랭 드 보통의 책들도 여러 권 읽어보았습니다.


알랭 드 보통의 이름은 많이 들었고, 한국에서도 인기가 많은 작가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사실 그의 작품을 읽어본 적은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최근에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이 나와서 그 책을 구매했습니다.


이 책은 한 커플이 만나서 결혼을 하고, 결혼생활을 하는 과정에서 겪는 일들+알랭 드 보통의 사랑에 대한 아포리즘이 결합된 다소 독특한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폰트 크기가 달라서 구분은 됩니다)


라비와 커스틴이라는, 각기 한부모 가정에서 자란 남녀가 만나 불완전했던 청소년 시절을 극복하고 완전체가 되려는 꿈을 꾸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죠. 이 책의 비중은 대체로 결혼 이후의 이들에 맞춰져 있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주제는 왠지 <사랑과 전쟁>에서 많이 본 것 같지 않나요? 그러나 그들은 파국으로 치닫지는 않습니다. 결혼생활을 끝내려는 게 아니라 결혼생활을 유지하기 위한 그들의 결정과 노력은 가상하지만, 씁쓸만 면도 있어요. 그리고 라비가 잘못한 점을 끝까지 숨긴 것도요.


하지만 저는 그러한 결말도 좋았습니다. 왠지 느끼는 점도 있었고요. 찌질해 보이는 라비의 모습과 일상들이 어쩌면 저와도 많이 닮았을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저자는 그들의 연애에서부터 결혼생활까지를 해부하듯 들여다보며 마치 내레이션을 하듯이 설명을 해 줍니다. 혹은 관련된 이야기를 해 줍니다. 근데 그 말이 너무나 공감이 돼서, 이 책엔 참 많은 하이라이트를 쳤어요. 알랭 드 보통 아저씨, 보통이 아니네요~ ^^;;


저도 결혼생활이 만 5년이 되어 가고, 한 아이를 키우는 아빠의 입장에서 너무 많은 점에서 공감이 갔고, 고개가 끄덕여지고, 지난 시간을 돌아보게 됐고 또 미래를 생각하게 됐습니다. 그러면서 아내에게 많은 점을 감사하게 되었네요.


하이라이트가 너무 많지만 (또 저작권 문제도 있고) 몇 구절만 남겨봅니다. 그래도 많습니다만...



결혼: 자신이 누구인지 또는 상대방이 누구인지를 아직 모르는 두 사람이 상상할 수 없고 조사하기를 애써 생략해버린 미래에 자신을 결박하고서 기대에 부풀어 벌이는 관대하고 무한히 친절한 도박.


그들은 각자 이렇게 의심한다. 만약 상대방이 항상 이렇게 되는 대로이거나, 정반대로 항상 이렇게 엄격하다면 뭔가—세상, 본인, 배우자—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긴장을 일으킬 때마다 그 긴장감을 더욱 팽팽하게 하는 진짜 의문은 이것이다. “이걸 어떻게 평생 견디고 살지?”


잘 들어주는 사람은 의사 전달을 잘하는 사람 못지않게 드물거나 중요하다. 잘 들어주는 사람 역시 특별한 자신감이 그 비결이다. 어떤 확고한 가정에 심각한 도전이 될 수 있는 정보로 인해 경로를 이탈하거나 그 무게에 무너져 내리지 않을 수 있는 수용력 말이다. 잘 들어주는 사람은 다른 사람들이라면 마음속에 얼마간 담아둘 혼란을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이미 경험을 통해 모든 게 결국 제자리로 돌아온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이성적일 필요는 없다. 우리가 익혀두어야 할 것은 우리가 한두 가지 면에서 다소 제정신이 아니라는 것을 쾌히 인정할 줄 아는 간헐적인 능력이다.


아기보다는 일반 가전제품이 더 상세한 취급 설명서와 함께 온다. 인간 사회에는 한 세대가 다른 세대에게 인생에 대해 합리적으로 설명해줄 게 결국 그리 많지 않다는 측은한 믿음이 존속한다.


부모의 다정함만으로 충분하다면 인류는 활기를 잃고 머지않아 사멸할 것이다. 인류의 생존은 마침내 넌더리를 내고 사랑과 흥분을 선사할 더 만족스러운 원천을 찾겠다는 희망을 품은 채 세상으로 나아갈 아이들에게 달려 있다.


현대사회는 부부가 모든 면에서 평등하기를 기대한다지만, 실제로는 고통의 평등을 기대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괴로움의 복용량을 확실히 똑같게 측량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불행은 주관적인 경험으로, 각 당사자가 실제로는 자신의 삶이 더 저주받았으며 파트너는 이를 인정하고 속죄하지도 않는다는 진지하면서도 경쟁적인 확신에 빠질 유혹이 상존한다. 자신이 더 힘들게 살고 있다는 자기 위안식의 결론을 피하려면 초인적인 지혜가 필요하다.


"가끔 보면 당신은 이 집에서 당신에게만 내면세계가 있다고 믿는 것 같아. 하지만 당신의 그 모든 아주 섬세한 감정은 따지고 보면 지극히 정상일뿐, 결코 천재의 징후가 아니야. 이게 결혼 생활이고, 우리 두 사람이 평생 동안 유지하겠다고 두 눈 똑바로 뜨고 서명한 삶이야. 난 할 수 있는 한 거기에 충실할 작정이야. 당신도 그러길 바라고.”


‘부부의 특정 문제들은 드문 현상이 아니라 많은 연구가 이루어져 온 보편적인 문제의 일부를 차지할 뿐이다.’


이 순간 그는 자기 연민, 그에게 일어난 일이 드물거나 부당하다는 그 얄팍한 믿음을 벗어났다. 자신이 순수하고 유일무이하다는 믿음도 어느새 잃어버렸다. 이건 중년의 위기가 아니다. 그보다는 마침내 30여 년이나 늦게 사춘기를 벗어난 것이다.


세상에 항상 나쁘기만 한 사람은 거의 없다. 우리에게 상처를 주는 사람 스스로도 고통스럽다. 그러므로 적절한 대응은 냉소나 공격이 아니라, 드문 순간이나마 우리가 할 수 있다면, 사랑해주는 것뿐이다.


라비는 자신이 단 한 번 결혼했다는 입장을 고수할 수 있는 것은 순전히 언어의 교묘함 덕분이라는 점을 알아본다. 겉으로는 편리하게도 단일한 관계처럼 보이지만 그 밑에 수많은 진전, 단절, 재협상, 소원한 기간, 감정적 회귀가 깔려 있어 사실상 그는 적어도 열두 번은 이혼과 재혼을 겪어온 셈이다. 오직 한 사람과 말이다.


낭만주의 결혼관은 ‘알맞은’ 사람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이는 우리의 허다한 관심사와 가치관에 공감하는 사람을 찾는 것으로 인식된다. 장기적으로 그럴 수 있는 사람은 어디에도 없다. 우리는 너무 다양하고 특이하다. 영구적인 조화는 불가능하다. 우리에게 가장 적합한 파트너는 우연히 기적처럼 모든 취향이 같은 사람이 아니라, 지혜롭고 흔쾌하게 취향의 차이를 놓고 협의할 수 있는 사람이다. ‘알맞은’ 사람의 진정한 표지는 완벽한 상보성이라는 추상적 개념보다는 차이를 수용하는 능력이다. 조화성은 사랑의 성과물이지 전제 조건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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