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수 작가님의 <일곱 해의 마지막>을 전자책으로 다 읽었습니다. 시인 백석의 한국전쟁 이후의 삶을 사실과 상상을 더해 만든 작품이었습니다. 막연하게만 생각했던 그의 후반부 삶이 조금 더 구체적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리고 안타까웠네요.
우선 이 작품에서는 백석의 본명인 '기행'을 호칭으로 해서 작가로서가 아닌 인간 기행으로서의 삶을 더 나타내고자 했던 것 같습니다.
책의 초반부부터 등장하던 소련 작가들은 백석과 어떤 관계가 있을까, 그리고 소련에서 강제 송환당한 인물들은 백석과 어떤 관계였을까 궁금해하며 읽었는데 그 접점과 연결선이 너무 약해서 그 비중에 비해 허무하게 이야기가 넘어가버린 듯한 생각도 들었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인물들은 백석의 예전 작품들이 가진 우리말의 아름다움, 그의 작품의 탁월함을 더 강조하기 위한 것이었을 수도 있고, 당시 상황의 비극을 더 선명하게 하기 위한 것이기도 할 것입니다. 뒷부분에 잠깐 등장하는 삼수에서의 여교사도 그랬던 것 같고요.
절망적인 상황에서 백석은 계속 과거를 생각합니다. 가족도, 친구도 모두 잃고 집단농장으로 쫓겨가면서 더 이상 글도 쓸 수 없게 되었지만 그의 마음속에는 여전히 과거의 자신과 자신의 글들이 남아 있었던 것이지요.
이전에 <백석 정본>에서 그의 작품 세계와 그의 삶에 대한 자세한 해설을 보았기에 작품 내에서의 그의 심정이 이해되었습니다. 왜 월남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고요. 아마 고향인 정주를 버릴 수 없었기 때문이겠죠. 분단의 현실이, 전쟁의 결과가, 그리고 공산정권에서의 독재가 그렇게 진행될 줄 몰랐을 테고요.
저는 이 책을 읽으면서 줄리언 반스의 <시대의 소음>이 떠올랐습니다. 스탈린 치하에서의 쇼스타코비치의 삶. 여러 면에서 유사한 점들이 많습니다. 음악가인 쇼스타코비치에게 당시가 '소음'이었다면, 작가인 백석에게 당시는 '낙서'였을까요. 아니면 그만도 못한 얼룩자국이었을까요.
그의 삶은 그러했지만 그의 작품들은 여전히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주고 있습니다. 그게 문학의 힘이자 글의 힘이겠지요. 그 글의 힘을 체제 선전과 권력 유지용으로 이용하려 했던 자들도 언젠가는 몰락하겠지만 그 작품들은 영원히 남을 테니 결국 승리자는 작가 자신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다만 그것을 체감하지 못하고 생을 마감해야 했다는 것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