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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칼란드리아 Oct 04. 2022

조지 오웰 <1984>

*2018년에 작성한 글입니다.


너무나 유명한 작품이라 작가와 제목은 알고 있었고 대략적인 분위기만 짐작해보았지만 아직도 읽어보진 못했던 책이었습니다. 열린책들 번역본으로 읽었네요. 


읽으면서 진도는 생각보다 안 나갔지만 생각해볼 만한 내용이 많았고, 조지 오웰은 정말 천재적이고 또 통찰력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해설에서 데이빗 굿맨이 그의 작품 속에 등장한 137개의 설정 중 이미 1978년에 100여 개가 현실로 이루어졌다고 하니 더 놀랍죠. 많은 분들이 작품 속에서 기시감을 느끼는 건, 그러한 설정이 이미 많은 영화나 작품에서 차용되거나 반복 사용되었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현실이 그와 많이 다르지 않기 때문이기도 할 것입니다.


1940년대 말에 1984년을 생각하며 전체주의 국가의 세계관을 그렸는데 이 작품에 등장하는 세 개의 초국가, 즉 오세아니아, 유라시아, 이스트아시아의 모습이 설사 어느 국가를 대상으로 했더라도 비슷했을 것 같은데요, 이는 두 차례의 세계대전 및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과 소련을 중심으로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간의 대립이 격화되기 시작한 것을 겪은 후 그가 바라본 미래의 모습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제3의 제국으로 이스트아시아를 설정한 것이겠지요.


대상이 된 오세아니아는 미국을 중심으로 재편된 세계인데 실제로 미국은 2차 대전 이후 유럽 및 아시아를 원조하며 사회/경제 시스템을 미국식으로 바꾸었고 그로 인해 미국이 패권국가로 부상하게 되었죠. 조금 다른 방식으로 공산권 국가를 확대해 나간 소련 역시 그렇게 되었고요. 


그런데 이는 다소 '이중사고'의 관점에서 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저는 처음에 작가가 전체주의 국가 및 사회주의 국가를 비판하려는 것으로 생각했었거든요. 그런데 미국에 대해서도 그런 의도가 있는 것으로 보였어요. 


영국은 이미 미국의 속국이 된 설정이지만, 실제로도 미국이 민주주의, 자본주의 국가를 표방하면서도 국가를 운영하는 소위 지도층(혹은 기득권층)은 과연 소련의 지도층과 무엇이 다를까 싶은 생각이 드니까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미국에 대해서 갖는 환상 중 하나인 '팍스 아메리카나'가 과연 정당화될 수 있는가 싶은 생각도 듭니다. 그들은 어쨌거나 철저히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 움직여왔으니까요. 그리고 역사 속에서 다른 전체주의, 사회주의 국가들 못지않게 무지막지한 일들을 행해왔으니까요.


더군다나 1980년대 초는 로널드 레이건이 대통령으로 당선된 후 레이거노믹스가 본격화되기 시작할 때였는데요. 허수아비나 다름없었던 레이건은 신자유주의자들에 의해 경제에서의 정부의 역할을 축소하는 정책을 펼치지만 반면 군비는 증가되고 군사적 행동 역시 증가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1984년에는 LA 올림픽이 열렸습니다. 그보다 앞서 1980년엔 모스크바 올림픽이 열렸죠. 냉전이 극에 치닫고 있을 때 '오세아니아'는 모스크바 올림픽에 불참했고, 그에 대한 보복으로 '유라시아'는 LA 올림픽에 불참했습니다. 지금도 1984년의 LA올림픽 때 성조기를 상징하는 모자를 쓴 독수리가 등장하던 개막식이 생각납니다. 결국 양진영은 1988년 서울 올림픽에서야 다시 참가를 하게 되었습니다.


1984년에 대한 다른 기억은 전두환 정권의 제5공화국 시절입니다. 박정희 정권 때는 너무 어려서 전혀 기억도 없지만 초등학교 (당시 국민학교) 시절을 온전히 5공체제에서 보내었기에 그 시절의 사회 및 교육에 대해선 지금도 기억나는 게 많아요. 좀 더 극단적으로 표현하자면 '파쇼'정권이었고, <1984>에서 묘사된 사회와 별 다를 바 없었습니다. 3공~5공까지의 연속성이라 볼 수 있겠죠. 그러니 그러한 세계관을 전 세계적으로 확장하더라도, 작품에서처럼 그렇게 세 개의 유사한 초국가로 설정하더라도 무리가 없게 보였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또한 1984년은 제가 개인용 컴퓨터(PC)를 처음 접한 해이기도 합니다. 당시 애플II로 컴퓨터를 처음 배웠고, 개인용으로는 금성에서 나온 FC-150을 썼어요. 그런데 작품 속에 등장하는 텔레스크린 및 빅브라더가 그러한 IT의 기술력을 바탕으로 한 것이니 그것도 참 아이러니컬하네요. 인간을 이롭게 하려는 기술이 결국 자본과 권력의 논리와 맞물려 감시수단이 될 수도 있고 또 실제로도 그렇게 되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이 작품의 백미는 작품 속의 '서적'인 <과두 정치적 집산주의의 이론과 실제>의 내용인 것 같아요. 거기에 작가의 핵심적 내용이 들어있다고 보입니다. 통째로 하이라이트 쳐두고 싶을 정도였어요.


그리고 군데군데 노래 가사 같은 글들도 상징적이면서 복선과 같은 역할을 해주었네요. 때론 서사적인 표현보다 그런 시적 표현이 더 효과가 있는 듯합니다. 그중에는 과거의 노래도 있고, 기계에 의해 생성된 노래도 있지만 역사와 인간의 감정마저 통제하려는 시도는 디스토피아의 극단적 모습을 보여주는 듯합니다.


결말에 이를 때까지 그 분위기는 이어지고 결국 반전은 이어지지 못하지만 (그래도 뭔가 전복이 될만한 것이 있지 않을까 기대했지만 '101호실'에서 다 끝나버렸네요) 어쩌면 그게 나았을 수도 있을 듯해요. 그 이후의 다른 유사한 작품들에서 충분히 전복의 기회를 줄 수 있도록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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