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칼란드리아 Oct 04. 2022

박홍순 <헌법의 발견>


*2017년경에 작성한 글입니다.


현재의 헌법은 아홉 번째로 개정된 헌법으로서 1987년 민주화 운동의 결과로 만들어진 것이고, 그 이후로 약 30년간 제6공화국 체제를 유지해 온 근간이기도 합니다. 그 전 약 40년간 정치적 목적 및 현대사의 부침의 결과로 여덟 번의 헌법 개정이 있었음을 볼 때 현재의 헌법이 30년간, 그래도 유지되어 왔던 건 현재의 헌법이 최선이어서가 아니라 '개헌'의 위험성과 영향력을 깨달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동안 몇 번의 개헌 얘기가 있었지만 그건 대부분 대통령 선거제도나 내각제 등 정치제도에 의한 것이었지, 헌법 그 자체의 보완을 위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현재 개헌 얘기가 나오는 것도 마찬가지죠.


다른 법과 달리, 헌법은 국가 및 모든 법률체계를 유지하는데 근간이 되기 때문에 중요하고, 그 개정은 국민투표를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그래서 정치적 논리로만 바꿀 수는 없는 것이죠. 그럼에도 개헌을 너무도 쉽게 얘기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아무튼, 헌법이 중요한데도 사실 헌법 전문(全文)을 읽어본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듯합니다. 대부분 헌법에 무관심했었지요. 그건 헌법이 우리의 생활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 가에 대한 관심도 없었고 또 멀게만 느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피지배자'로서의 지위에 익숙해져서 그저 수동적으로 하라는 대로 하면서 살아왔기 때문이기도 할 것입니다.


하지만 전문(前文)은 교과서에서나 혹은 다른 매체에서도 종종 인용되기 때문에 익숙하실 듯합니다만 여기에 그 前文을 옮겨 봅니다.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 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 민주이념을 계승하고, 조국의 민주개혁과 평화적 통일의 사명에 입각하여 정의·인도와 동포애로써 민족의 단결을 공고히 하고, 모든 사회적 폐습과 불의를 타파하며, 자율과 조화를 바탕으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더욱 확고히 하여 정치·경제·사회·문화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각인의 기회를 균등히 하고, 능력을 최고도로 발휘하게 하며, 자유와 권리에 따르는 책임과 의무를 완수하게 하여, 안으로는 국민생활의 균등한 향상을 기하고 밖으로는 항구적인 세계평화와 인류공영에 이바지함으로써 우리들과 우리들의 자손의 안전과 자유와 행복을 영원히 확보할 것을 다짐하면서 1948년 7월 12일에 제정되고 8차에 걸쳐 개정된 헌법을 이제 국회의 의결을 거쳐 국민투표에 의하여 개정한다.


사실은 여기에 헌법의 핵심적인 내용이 모두 담겨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 책에서는 대한민국의 기본 정신, 국가권력으로부터의 자유 보장, 차별받지 않는 공평한 삶의 보장, 인간다운 생활의 보장 등 네 영역으로 구분하여 설명하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주요 조문은 이 영역으로 포괄되는데 이를 통해 헌법 전체의 흐름 속에서 총체적인 이해를 돕고 있습니다. 또한 영역별로 각 조문별 설명도 있습니다.


특히 이 책에서는 대한민국의 기본정신을 담고 있는 헌법 제1조 1항 및 2항에 대해서 '민주주의'와 '공화국'이라는 체계가 어떠한 것인지 역사적, 철학적 고찰을 하고, '주권'이라는 것의 의미를 깊이 생각하게 합니다. 너무나 익숙한 단어들이었지만 체감하기 어려웠던 그 단어들이 현재에 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논쟁과 다툼과 희생이 있었는가를 보여줍니다. 


저자는 법률가이거나 법학자는 아닌 것 같습니다. 주로 인문학 서적들을 집필했던 것 같은데 그래서인지 이 책 전반에서 인문학적 관점의 서술이 많습니다. 사실 이 책을 선택할 때 헌법의 법리적 고찰 또는 해석을 생각했었는데 그보다는 인문학적 관점이어서 다른 시각을 볼 수 있어서 괜찮았습니다.


사실 헌법 자체만을 공부하려는 것이었다면 법학 서적들이 더 나았을 수도 있겠죠. 하지만 그런 것들은 일반인이 접근하기 어려운 영역이긴 하지요. 이렇게 일반인들이 접근하기 쉽게 하는 것도 좋은 시도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저자의 약력에서 나오지만, 그는 노동운동 및 사회운동을 했던 경력이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전체적으로 상당히 진보적인 논지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상당히 타당성이 있으며, 헌법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보게 합니다. 구체적으로 조항에 담긴 단어 하나의 의미가 얼마나 큰 가 하는 것도요. 또한 조문별로 국내외의 예를 들어서 이해를 돕고 있습니다. 


다만, '국민'이라는 단어 대신 좀 더 포괄적인 '인민'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은 독자에 따라 거부감을 가질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이는 정치적 의미보다는 인문학적 접근이라 그런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 책에서는 제1조~39조, 뒤의 제119조~127조의 내용만 다루고 있는데 나머지는 정부조직 및 입법, 사법조직의 구성을 정의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느끼기론 현재의 헌법은 그래도 꽤 잘 만들어졌고, 시간의 흐름에 따른 부족함은 있지만 그래도 많은 것을 담고 있는 것 같습니다. 물론 그간의 개정에 따라 추가되거나 빠진 부분들도 있는데, 아직까지 박정희 정권이나 전두환 정권의 흔적이 다소 남아있는 부분도 있다는 게 놀랍기도 합니다.


문제는 하위법, 실정법인데 여기서는 헌법정신에 어긋나는 것들이 많고, 헌법에서 포괄적으로 정의, 보장하고 있는 것들에 대해서도 제한을 가하는 것이 많으며, 그것의 위헌 여부에서도 헌법재판소는 헌법정신에 어긋나는 판결을 많이 내렸다는 점입니다. 또한 대법원 판결 역시 헌법정신에 어긋나게 '힘 있는 자들'과 '있는 자들'의 손을 들어주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법이 문제가 아니라 그것을 악용하고,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만드는 사람들이 있기에 우리 사회가 이렇게 정의롭지 못한 것이겠지요.


정의로운 대한민국을 만드는 첫걸음은 헌법을 알고 이해하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현 시국이 이럴수록,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헌법정신'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것이 어떨까요. 그런 의미에서 읽어볼 만한 책이라 생각됩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국가론>, <군주론>, <자유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