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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칼란드리아 Oct 04. 2022

새뮤얼 헌팅턴 <문명의 충돌>


*2017년에 작성한 글입니다.


인류 문명사에 대한 관심이 많아 관련된 책들을 종종 읽습니다만, 그중 동양권과 서양권의 우열 다툼에 대한 것은 흥미로운 주제인 것 같습니다. 저 자신도 동양권에 속한 국가의 일원인 지라 '팔 안 굽' 원리에 의해 동양권의 우세를 더 바라게 되긴 하지만, 우리나라가 주체가 아니라 '동아시아권=중국'이라는 식으로 전개되는 서양권 학자들의 논리에 묻혀버리게 되는 것에 반감과 아쉬움을 많이 느끼게 되기도 합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서양인들에게 한국이라는 나라는 역사적으로 중국의 영향을 받은 중화권으로 인식될 수밖에 없고 (애초에 관심 밖인 경우가 더 많으니까요) 오히려 일본이 독자적인 문화를 가진 문화권으로 인식이 되고 있습니다. 


새뮤얼 헌팅턴의 <문명의 충돌>에서도 동아시아권의 문화를 분류하면서 중화권, 일본권, 힌두권, 이슬람권 등으로 구분했는데 자존심 강한 한국인들로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부분도 있을 것이라 생각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한반도가 국제사회에서 관심의 대상이 되는 것은 '냉전의 박물관'처럼 여전히 냉전과 이념의 갈등이 남아 있는 곳이기 때문이지 그 이상의 어떤 의미를 갖지는 못하는 것 같습니다. 이미 1990년대를 전후해서 냉전이 종식되고 세계의 갈등의 원인이 종교와 문명, 그리고 신자유주의에 의한 시장논리에 등으로 전환되어 그것이 곳곳에서 충돌을 일으키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반도가 국지전 혹은 전면전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은 곳으로 보일 지라도, 실제로 그 발발 가능성은 낮으며 오히려 이슬람권, 구소련연방권 등에서 전쟁 혹은 군사력을 동원한 분쟁이 많았던 것을 감안하면 앞으로도 냉전보다는 그러한 문명의 충돌(이 책에서는 '문명의 단층선 전쟁'이라고 표현했습니다)이 더 많아질 것 같습니다.


또한 한 국가 내에서 '단절국' 현상이 나타나는 문제점도 이야기하고 있는데 인종간, 문명 간 갈등으로 인해 내부 분열을 일으키는 사태를 이야기합니다. 즉 영토가 중요 관점이 아니라 그 안에서 문명, 특히 종교 갈등이 주된 원인이 될 수 있다는 점이죠. 이는 유고슬라비아 등의 경우에서 극단적으로 나타났고, 단절국화는 결국 단층선 전쟁으로 이어지게 될 것입니다.


이 책이 처음 나온 건 1990년대 중반이고, 막 탈냉전이 마무리되어가던 시점인 지라 향후의 전망 위주로 되어 있는데 그 예측이 20여 년이 지난 지금 시점에서 돌아보면 놀라울 정도로 정확하게 맞아떨어진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그가 예언자처럼 이야기했던 부분이 더 정확하게 맞은 것은 아니지만, 그마저도 상당수는 진행형이고 향후 시간이 더 지나면 그렇게 될 수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예를 들자면 미국의 단절국화라든가 서구 문명이 몰락할 것이라든가 하는 것 말이죠. 그가 이 책에서는 여전히 서양권의 우위를 가정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요.


특히나 이슬람권이 다른 아시아권, 그리고 서구권과 갈등을 일으키고 분쟁이 많아질 것이라는 점과 중화권이 서구권과 갈등을 일으킬 것이라는 대목은 거의 정확하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이슬람권과 다른 문명과의 갈등과 분쟁은 여러 예를 들면서 서술하고 있죠. 아마 그가 중점적으로 내세우는 점 같습니다. 실제로 지금도 그렇고요. 


하지만 그것 역시 갑자기 발생한 것은 아니라 그 이전부터 갈등의 요소들이 내재하고 있었던 것이 여러 가지 과정을 거치면서 결국에는 터져버린 것이라 볼 수 있는데요, 가령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의 세력이 커진 것은 냉전시대로 거슬러 올라가, 소련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했을 때 이슬람권 및 미국, 서구권이 그에 맞서기 위해 이슬람 무장세력들을 지원했기 때문이라는 점이죠. 그것이 이후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을 다시 침략했을 때 그들에 맞서는 세력으로 돌아오게 된 것이고요.


이는 이슬람권이 '핵심국'이 없어서 그것들을 통제할 수 있는 상황이 못되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이슬람권에 미국과 같은 역할을 할 수 있는 국가가 있었다면 현재의 분쟁과 갈등을 조정하기가 좀 더 용이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가 궁극적으로 주장하는 바는 어느 문명이 우위를 점할 것이라는 것이 아니라 이제는 그러한 다극화 정세를 받아들여야 하고, 문명의 다양성을 기반으로 새로운 국제질서를 정립하여 문명의 충돌을 막고 평화를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만약 한 차례의 세계대전이 더 일어난다면 그것은 필시 문명의 충돌로 인한 것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헌팅턴 교수가 2008년에 사망한 관계로 개정판이 나오지 못한 것이 아쉬운데, 그가 만약 지금까지도 살아 있어서 그 이후의 정세를 목격할 수 있었다면 좀 더 분명한 논리를 추가적으로 전개할 수 있었을 것 같습니다. 


이 책의 개정판이 전자책으로 나왔고, 그것도 대여로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다는 것은 정말 좋은 기회라 생각합니다. 인류 문명사에 관심이 있으신 분들께서 읽어보시면 좋을 듯합니다. ^^*


p.s. 그러나 한반도에서 전쟁이 발발한다면 그것은 이념에 의한 것, 즉 남한과 북한의 충돌이 아니라 중국과 미국의 충돌로 보게 될 것 같습니다. 이 또한 그가 이야기한 문명의 충돌의 예가 되겠지요. 


p.s.2. 우리는 중국에 대해서 여전히 적대시하고, 중국이 성장하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으며 그들의 민족성을 우습게 여기지만 중국이 이미 새로운 패권국가로 떠올랐고 향후에도 미국을 견제할 거의 유일한 국가라는 점에 대해서는 대부분의 학자들이 동의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인식과는 별개로 말이죠.


p.s.3. 이 책을 읽은 전반적인 느낌은 리영희 교수의 <전환시대의 논리>와 상당히 유사했습니다. 물론 이 책이 <문명의 충돌>보다는 20여 년 먼저 나온 것이고, 또한 한반도 주변의 정세를 위주로 써졌지만요. 역시 그 시점에서의 정세를 정확히 파악할 수 있어야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논리력도 생기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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