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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칼란드리아 Oct 04. 2022

이언 모리스 vs. 니얼 퍼거슨

*2017년경에 작성한 글입니다.


니얼 퍼거슨의 <시빌라이제이션>은 리디에서 3권 세트로 대여할 때 구매했었고, 이언 모리스의 <왜 서양이 지배하는가>는 처음에 아마존 오더블과 원서로 킨들에서 읽다가 그 엄청난 분량에 질리기도 했고, 종이책으로 보면 좋겠다는 생각에 다시 번역본 구매해서 읽었습니다.



니얼 퍼거슨과 이언 모리스 둘 다 역사학자로서 (분야는 조금 다른 듯하지만요) 서양과 동양, 혹은 서양과 그 이외의 세계와의 차이 및 우월성을 역사적으로 고찰해보려는 시도를 하였는데 결론적으로 말하면 <시빌라이제이션>에선 실망과 적잖은 분노를 느꼈고, <왜 서양이 지배하는가>는 재밌게 읽었습니다. 후자는 어느 정도 객관적 시각에서, 데이터에 기반하여 충실하게 쓴 것 같아요. 번역서가 천 페이지가 넘고, 그중에 주석만 거진 백 페이지에 달합니다.


<시빌라이제이션>에서는 서양이 우월하다는 전제 하에 기술된 느낌이었습니다. 서양이 우월한 이유를 몇 가지 근거를 들어 보이는데 그것은 불과 몇 백 년 전부터 지금까지를 대상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 시기는 <왜 서양이 지배하는가>에서 이언 모리스가 제안한 '사회발전지수' 상으로도 서양이 다시 동양을 앞지르는 시점이기도 하기에 그 시기만을 대상으로 한다면 그렇게 보일 수도 있습니다. 


니얼 퍼거슨은 '경쟁, 과학, 재산권, 의학, 소비사회, 직업윤리'라는 여섯 가지 소주제를 내세우며 서양과 그 이외의 세계와의 차이를 드러내려 하지만 저자의 주관적인 생각 위주로 다소 산만한 느낌인 데다 서양의 식민지배를 정당화하는 (심지어 일본의 한국 및 동아시아권 지배마저 정당화하려는) 모습이었습니다. 


서양이 피지배 국가에 최신 문명을 전달하였고, 그들이 서양을 모방함으로써 그 국가들이 발전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입니다. 결국 책 제목인 '시빌라이제이션'이란 서양문명이 식민국가들에 전해지면서 그 국가들이 '문명화' 되었다는 것이죠. 


더 나아가 그는 현재의 신자유주의마저 옹호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읽으면서 내내 심히 불편한 마음이 많이 들었죠.



반면 이언 모리스가 선사시대부터 지금까지 생물학적, 사회적, 역사적 분석을 통해 기존의 '장기 고착론'과 '단기 우연론' 대신'장기 기회론'이라는 새로운 가설을 내놓았는데요, 이는 재레드 다이아몬드의 <총, 균, 쇠>와 비슷한 맥락이면서도 그보다 더 보완적인 해석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지리적인 영향이 가장 컸다는 결론은 비슷합니다. 여러 가지로 봤을 때 서양인이 동양인보다 우월하다는 근거는 희박하다고 하면서요.


사회발전지수를 기반으로 역사적 구간을 나누어서 고고학, 세계사의 중요 이슈를 기반으로 해석을 하는데 세계사의 전반적인 흐름을 이해하고 있으면 수긍이 갈만한 내용들입니다. 새롭게 알게 된 사실도 많았고요. 전반적으로 이해하기 쉽고 재밌게 쓰였습니다. 


역사적으로 두 번의 크로스가 있었는데 근미래에 다시 한번 크로스가 있을 예정이라고 합니다. 2020년대부터는 중국이 미국을 역전하며, 늦어도 2100년대 초에는 동양이 서양을 앞지를 거라는 거죠.


하지만 그의 사회발전지수 역시 한계가 있고 반론이 많았는지 부록에서 그에 대한 설명을 자세히 하고 있는데요, 아무튼 객관적 수치로 비교를 하려는 시도는 좋았다고 생각합니다. 미래에 그 수치가 급상승하는 것에 대해서도 그건 불가능하다는 것도 인정하고요.


어쨌든 이러한 책들을 읽으면 인문학적 지식도 더 쌓을 수 있고, 생각을 해 볼 수 있는 여지도 많아 좋긴 하지만 대부분 서양인의 관점에서 쓰인 것들이라 그들의 시각을 벗어나긴 어렵다는 한계는 있는 듯합니다. 아마도 이런 비슷한 시도는 중국에서 나오지 않을까 싶은데요 (주제는 조금 다르지만 중국 저자들이 쓴 책들이 꽤 있긴 하죠), 그래 봐야 '동양=중국'이라는 등식에 갇혀 있을 것 같고, 중국의 우월성을 내세우겠지요. 일본이나 우리나라, 또는 다른 나라 저자들은 이 정도의 연구저서를 내놓을 수 있을만한 역량이 있나 모르겠습니다.


그나저나 니얼 퍼거슨의 다른 책 <콜로서스>와 <위대한 퇴보>도 함께 구매해 놓았는데 이걸 읽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싶은 고민이 드네요. 


p.s. 이들 책과 유사한 주제로 안드레 군더 프랑크의 <리오리엔트>를 읽어볼까 싶은데요, 이건 전자책으로는 나오지 않아서 생각만 하는 중입니다. <총, 균, 쇠>도 조만간 다시 읽으면 느낌이 많이 달라졌을 것 같기도 하고, 한동안 쌓아두기만 했던 <화폐전쟁> 세트도 빨리 읽어야 할 텐데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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