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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칼란드리아 Oct 04. 2022

폴 칼리티니 <숨결이 바람 될 때>


*2016년에 작성한 글입니다.


십여 년쯤 전, 단기연수로 스탠퍼드 대학과 스탠퍼드 대학병원을 방문할 일이 있었습니다. 


스탠퍼드 대학이야 워낙 명문이기도 하지만, 캠퍼스에 직접 가보니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습니다. 가장 큰 것은 '부러움'이었습니다. 캠퍼스도 부럽고, 그곳의 교수나 학생, 연구원들도 부럽고, 시설도 부러웠습니다. 그 며칠의 기간 동안 머물면서 '왜 내게는 이런 기회가 오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도 들었습니다. 미국이나 캐나다의 여러 대학과 병원을 가보았지만 스탠퍼드가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미국에서도 국내와 마찬가지로 정말 최고의 인재들만이 메디컬 스쿨에 들어갈 수 있고, 그중에서도 신경외과나 흉부외과는 자신들이 최고라는 자부심을 갖고 있습니다. 그곳에서 만난 의사들 역시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그러한 자부심이 보였습니다. 하지만 개개인으로 대하면 그들도 한 명의 평범한 사람이고, 누군가의 가족이었으며 때론 환자가 되기도 합니다. 의사라는 건 그를 나타내는 것 중 하나일 따름입니다.


'의사'라는 직업은 여러 가지 의미를 떠올리게 하지만, '인체'가 아닌 '인간'을 다룬다는 점에서 특수성이 있고 또 경외감을 갖게 합니다. 하지만 현대의학이 아무리 발전을 해도 그 한계성은 있고, 그것은 통계로서 나타납니다. 의학은 조금씩, 점진적으로 발전하고 있고, 몇 년에 한 번씩 새로운 의학교과서 개정판과 가이드라인/프로토콜이 나오지만 그래도 우리가 목표하는 곳에 도달하기까지 갈 길은 아직도 멉니다. 


저는 병원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제가 의사는 아니지만 꽤 오랜 시간 동안 의사들과 함께 일해오다 보니 (그리고 그들의 학생 시절부터 인턴, 레지던트 시절을 보아 오는 경우도 있었고) 한 명의 의사가 만들어지는 과정, 그리고 의사라는 직업에 대해 간접적으로나마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저도 일부분이나마 의학을 공부했고, 그것들을 기반으로 환자 치료와 연구에 동참함으로써 의학의 발전에 살짝 발만 담그고 있지만, 결국에는 무력함을 느끼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의사들은 매일 그러한 것들을 이겨내야 합니다.


'통계가 단지 통계일 뿐'이지 않으며 누구도 그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점, 하지만 그 정규분포의 끝단을 벗어나면 '기적'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실제로 그러한 일이 있기에 '희망'을 갖는다는 점에서 의학은 어떤 면에선 학문이라기보다는 '기술(art)'이고 또 '트릭'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주어진 프로토콜에 따라, 배운 대로, 그리고 날로 새롭게 변해가는 새로운 지식을 습득하며 그들은 오늘도 소신에 따라 일하고 있습니다. (그 이상의 것들에 대해선 생략합니다)


저는 매일 암환자를 대합니다. 실제로 환자를 대한 다기보다는 그들의 정보와, 그들의 검사용 영상과 그들의 치료를 위한 계획들을 대합니다. 물론 환자를 직접 바라보게 되기도 합니다. 초기 암환자부터 말기 암환자까지, 그리고 몇 년에 걸쳐 그들의 병이 점차 악화되어 최종적으로는 'expired'라는 문구가 찍힐 때까지 보기도 합니다. (제가 있는 곳에서 임종을 보게 되는 경우는 없지만요)


제가 한 명의 '치료 대상'으로 생각할 따름인 그들에게는 각자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환자가 의사나 간호사와 면담할 때 사적인 이야기를 풀어내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인간극장> 못잖게 기구한 운명도, 또 비극의 주인공도 있지만 때론 자신의 현실을 받아들여서 유쾌하게 지내는 사람들도 있지요. 


환자 중에는 여러 부류가 있지만 의사, 정치인, 기업가 등 성공했다는 사람들도 예외가 될 수는 없습니다. 어쨌거나 그러한 이야기를 가진 그들이지만, 결국에는 어떤 병을 가진, 어떻게 치료해야 할 환자일 따름이니까요.


암환자들은 모두가 완치되어 오래 살고 싶어 합니다. 미국에서도 수 십 년 전부터 외쳐오던 암정복의 날이 앞으로 얼마나 더 가야 할지 모르겠지만 그들은 매일매일 희망을 갖고 삽니다. 초기암의 경우엔 실제로 완치되는 경우도 많으니까요. 하지만 잔인하게도, 의학은 그것을 '생존곡선'으로 나타냅니다. 의사가 '시한부'라고 얘기하는 게 신이 되어 내리는 판정이 아니라 통계에 근거한 얘기이니까요.


만약 인생의 정점에 있을 때, 혹은 무언가 중요한 것을 남겨두었을 때 그러한 암 진단을 받는다면 그 심경은 어떠할까요. 특히 그가 촉망받는 유능한 의사였다면요.


폴 칼라니티의 <숨결이 바람 될 때>는 그러한 젊은 의사의 암투병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이러한 이야기는 사실 누구의 이야기가 더 특별하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고, 암 투병기를 쓴 책도 참 많습니다. 그럼에도 이 책이 미국에서 베스트셀러가 되고, 국내에도 출판되어 조금씩 읽는 사람이 많아지고 있는 건 마케팅을 잘해서 일 수도 있겠지만, 사람들이 그만큼 관심을 가졌고, 그 이야기에 공감했으며 때론 눈물을 흘렸기 때문일 것입니다.


만 나이로 서른여섯에, 긴 시간 동안 의사/전문의가 되려는 과정을 마치고 날아오르려다 폐암 진단을 받고 꺾인 그 이야기는 사람들의 동정과 카타르시스를 자아낼 훌륭한 소재가 될 수 있으니까요. 다소 평가절하한 느낌이긴 하지만 냉정하게 보면 그렇습니다.


하지만 이 책의 진가는 단지 그러한 소재 때문이 아닙니다. 그의 특이한 이력 (학부에서 영문학과 생물학을 복수 전공하고, 의학사 석사과정을 이수한)에서도 볼 수 있듯이, 그는 영문학 및 글 쓰는데 소질을 갖고 있습니다. 그는 자신의 이야기를 담담하고 솔직하게, 그리고 단단하게 적어나갔습니다. 그리고 문학에서 적절한 표현들을 인용하여 그의 이야기의 울림을 더 크게 해 주었습니다.


그는 암이 계속 진행되는 동안에도 신경외과 의사가 되려는 목표를 놓지 않았으며 실제로 레지던트 업무에 복귀도 했고 수련과정을 모두 마쳤습니다. 그가 왜 그렇게 자신의 여명에 연연했고, 또 의사로서의 삶을 포기하지 않으려 했는가 하는 것은 자세히 말하지 않아도 심정적으로 느낄 수 있을 듯합니다. 그 순간이 되면, 누구라도 그러고 싶지 않을까요.


삶을 끝까지 붙잡거나, 혹은 놓아 버리거나... 그 사이에 '적당히'라는 것은 없는 것 같습니다. 몇십 년의 남은 시간이 단 몇 년, 몇 개월로 압축되어 버리니까요. 붙잡기에는 짧은 시간, 놓아 버리기엔 긴 시간을 견뎌내야 합니다. 그래도 그는 말합니다.


"I can't go on, but I'll go on"


그의 이야기는 자신의 딸이 태어난 순간에서 멈추었습니다. 더 이상 쓰지 못한 것일 수 있겠는데 그리고 갑자기 그의 아내 루시의 에필로그로 넘어갑니다. 하지만 그 앞의 90% 정도, 그가 쓴 부분도 그냥 담담히 읽어나갔음에도 마지막 10% 정도, 아내가 쓴 글에선 계속 울컥울컥 해서 읽어 나가기 힘들었습니다. 나의 이야기가 아닌, 다른 이를 통한 나의 이야기는 그렇게 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마도, 제 아내와 제 딸아이가 생각나서 그렇기도 할 것입니다.


마지막 순간에, 그래도 한 생명을 남겨두고 가기 위해 그들 부부가 했던 노력의 결실. 그가 세상에 존재했었다는 부정하지 못할 증거. 아이는 아직 모르겠지만, 나중에 아빠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된다면 여러 가지 생각이 들게 될 것 같습니다. '우리 아빠는 이런 사람이었구나'라는 것도 알게 되겠지요.


암 치료는 참으로 힘든 과정입니다. 암 진단이 내려진 이후의 환자가 겪는 정신적 혼란(슬픔의 5단계로 표현된) 뿐만 아니라 수술, 항암제, 방사선 치료 등으로 겪는 육체적 고통까지. 하지만 환자뿐만 아니라 가족, 간병인 모두가 힘든 과정을 겪게 됩니다. 그의 아내 역시 의사이긴 했지만 암 앞에서는 무력하기는 마찬가지였죠. 그러나 그러한 과정에서 결혼생활의 위기를 극복하고 사랑을 다시 확인하게 되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저는 그러한 과정을 직접 겪어 보지는 않아서 아직 실감을 못하겠지만, 환자들의 보호자들을 통해서 간접적으로 느끼게 되기는 합니다. 암이라는 질병이 환자 및 가족들을 어떻게 파괴해가는가 하는 것과 어떻게 극복해가는가 하는 것을요.


그러한 루시의 심경은 다음의 인용한 시에서 나타나는 것 같습니다.

  

당신은 제게 두 가지 아름다운 유산을 남기셨습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도 뜻하셨다면

만족하실 그런 사랑의 유산을


당신은 바다처럼 광대한

고통을 남기셨습니다

영원과 시간 사이에,

당신의 의식과 나 사이에


- 에밀리 디킨슨


그리고 이렇게 이 책을 마무리합니다.

 

죽음을 정면으로 바라보겠다는 폴의 결단은 삶의 마지막 순간에 그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증명할 뿐만 아니라, 그의 인생 자체가 어떠했는 지를 보여주는 증거이다. 폴은 평생 죽음에 대해, 그리고 자신이 죽음을 진실하게 마주할 수 있을 지에 대해 깊이 고민했다. 결국 그는 그 일을 해냈다.

나는 그의 아내이자 목격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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