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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칼란드리아 Oct 05. 2022

김승섭 <미래의 피해자들은 이겼다>


많은 생각이 들게 하는 책이었다. 그동안 PTSD에 대한 책들을 꽤 읽어보긴 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와닿았다. 아무래도 우리나라의 일들, 특히 최근의 일들을 위주로 썼기 때문일 것이다. 


깊은 슬픔과 분노가 부조리한 사회를 바꾸는 근본적인 힘인 것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그와 함께 기록과 분석을 통해 대안을 내놓는 과정이 생략된다면 그 힘은 더 나은 변화로 이어지지 못하고 일시적인 사건에 불과한 것이 될 테니까요. pp.11


그중에서도 천안함 사건과 세월호 사건은 온 국민의 관심이 집중되었고 또 충격적이었던 사건이기도 했다. 어떤 면에서는 아직도 진행 중이다.


저는 천안함 사건이 폭침 당일의 사건에 한정된 용어가 아니라 그 이후 천안함을 대하는 한국 사회의 태도를 모두 포괄하는 단어가 되어야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럴 때에 비로소 우리는 천안함 사건을 정치적으로 이용하거나 외면하는 현재의 상황을 넘어설 수 있으니까요. pp.16


서울대학교 김승섭 교수는 이 두 사건의 생존자들에 대한 조사와 연구를 담당하게 되었고, 그들의 이야기를 정리하여 책으로 펴냈다. 


정리하는 과정에서 많은 고민이 있었을 것이다. 아무래도 예민한 주제에 또 일반인도 아닌 PTSD 환자(?)들이었기 때문이다. 더욱이 정치적으로 얽혀있는 부분도 있기에 쉽게 접근하기는 어려웠으리라 생각한다. 


제가 보기에 이 두 사건은 중요한 공통점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첫째는 트라우마 생존자를 대하는 한국 사회의 폭력적인 태도가 고스란히 드러난 사건이라는 점이고, 둘째는 상대 진영이라 여겨지는 피해자의 고통을 조롱하는 진영 논리의 폭력성과 편향적 사고가 만연했던 사건이라는 점입니다. pp.138
한국 사회에서 피해자가 된다는 일은 간단치 않습니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생각하는 전형적인 피해자의 이미지에서 어긋나는 이들에게 마음을 내주지 않으니까요. 오히려 살아남은 이들은 피해자라기보다 운이 좋았던 사람이라고 생각하지요. 그렇기 때문에 재 난에서 살아남은 피해자들의 이야기는 한국사회에서 설 자리가 없습니다. pp.151
비참함이 피해자의 자격을 결정하는 조건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한국사회는 사회적 폭력을 대할 때 가해자의 행동을 따져 묻는 게 아니라, 피해자가 진짜 '피해자'인지 확인하는 데 더 큰 관심을 쏟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피해자의 말과 행동이 동정하기 적당한 모습을 벗어나는 순간, 사람들은 고개를 돌리곤 했지요. (...) 그렇게 피해자의 입은 틀어 막혔고, 몸은 매였습니다. pp.187-188


그럼에도 일반인들에게 그러한 것들을 알리고자 했던 그의 노력은 책 전반에서 차분하면서도 강한 어조로 드러났고 그래서인지 더 설득력을 가졌다. 


특히나 PTSD가 어느 특정인만의 문제가 아니라 누구에게나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어느 날 갑자기 자신에게도 닥칠 수 있는. 


PTSD는 전쟁에 참여한 군인만이 아니라, 일상에서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서는 충격적인 사건을 경험한 모든 이에게 나타날 수 있는 증상이었던 것입니다. pp.42


이 책에서는 그 두 사건 이외에도 피우진 전 보훈처장, 고 변희수 하사, 그리고 소방관들과 산업재해 피해자들도 같은 범주에서 아우르고 있다. 


통증은 괴롭지만 제대로 고통을 인지하는 것은 생존을 위해 필수적입니다. 통증을 느낄 때 비로소 우리는 그 통증의 원인을 제거하거나 최소한 그로부터 멀어질 수 있습니다. 현재 한국 사회는 가장 위험한 곳에서 일하는 노동자의 고통에 대해 구조적인 무감각증을 가지고 있습니다.  pp.247


이처럼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들을 부각해주면서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를 제시해주기도 했다. 책의 제목처럼 '미래의 피해자들'은 과연 이기게 될까? 우리 사회가 그렇게 쉽게 바뀔 수 있을까? 


이 책 한 권으로 우리 사회가 쉽게 변하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많은 이들이 이 책을 통해 변화에 동참해주었으면 한다. 그게 변화의 시작일 것이다.


저는 사람들 사이의 이해관계에 따른 대립이 더욱 첨예해지기를 바랍니다. 다만 그 대립이 정치적 선동으로 인한 공허한 충돌이 아니라, 구체적인 얼굴을 가진 사람들이 살아가는 생생한 현실에 뿌리박은 갈등이기를 바랍니다. 그런 갈등이 더 많아져야 합니다. 그런 진통을 겪지 않고 생겨나는 대안은 현실에서 힘을 가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pp.2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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