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독서 후기

천현우 <쇳밥일지>

by 칼란드리아
9788954688109.jpg


천현우 작가의 <쇳밥일지>를 읽었다. 이 책이 처음 나올 때부터 관심은 갖고 있었는데, 마침 독파 챌린지로 올라오고 뭉클에도 이달책으로 판매하고 있기에 이달책으로 구매하였다.


이달책 구매 시에는 작가의 편지와 질문지가 함께 온다. 보통 책을 읽기 전에 그것들을 한 번 읽어본 후 생각을 해보고, 책을 다 읽고 다서 다시 본다. 책을 읽기 전과 읽은 후의 느낌은 다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 책의 제목과 띠지만 보고도 이 책의 내용을 짐작해볼 수 있었다. 용접공으로 일하던 저자가 자신의 경험을 기반으로 해서 중소기업의 열악한 근무환경에 대해서 이야기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건 어느 정도 맞았다.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었다. 이 책에서 그는 고등학생 시절부터 현재까지 (이 책이 나오기 직전까지)의 이야기를 담았다. 시간순으로 현재까지 오면서 각 시점에서 만났던 사람들, 겪었던 일들을 이야기한다.


이후의 내 삶도 이때의 예감에서 크게 벗어나는 일 없이 흘러갔다. 청년으로서 살아가기란 생각보다는 힘들되 꾸역꾸역 생존은 가능한 나날이었다. 그때의 시간들. 고와 낙이 있었고, 땀과 눈물이 있었으며, 희망과 좌절이 공존했고, 꿈이 짓이겨졌다가 다시금 피어났던 과거를 문자로 남겨보고자 한다. pp.9


그는 어렸을 때부터 글쓰기를 좋아했던 것 같다. 글쓰기로 상을 받은 적도 있다고 했고, 일을 하면서도 소설을 썼고 공모전에 출품도 했다고 한다. 물론 수상은 못했지만 글쓰기에 대한 그의 열의를 느낄 수 있었다. 일하면서 일기처럼 그의 일상들과 생각들을 적어나갔고, 그렇기에 이런 책도 나올 수 있지 않았을까.


그의 말마따나 <인간극장>에 나올법한 이야기들, 보는 이에 따라서는 너무 비현실적이어서 차라리 성장소설의 줄거리 같은 이야기들. '불우하게 자랐던 주인공이 환경을 딛고 노력해서 성공한 사람이 되었습니다'라는 그런 진부한 이야기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환경을 딛고 노력한 것'까지는 맞지만, 아직 '성공한 사람'이 된 것은 아니다. 그는 이제 막 중요한 전환점에 서 있고, 앞으로 그가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모르는 상태이기 때문이다. 그 전환점에서, 그동안 자신이 지나왔던 과정을 되짚어보고 각오를 새로이 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주면 될 것 같다.


혹자는 그를 '용접하는 아니 에르노'라는 표현을 쓰기도 했지만 이는 올해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아니 에르노의 유명세에 기댄 것뿐, 사실 아니 에르노의 글쓰기와는 많이 다르다. 다만 자신의 과거와 현재에 대해서 그대로 적고자 했고, 그에 대한 치열한 글쓰기를 하려 했다는 점에서 유사성이 있다는 정도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다. 이제 그를 그 자신의 스타일의 글을 쓰는 사람으로 봐주어야 할 듯.


사실 이 작품의 전체적인 구성이나 전개는 비슷한 장르의 작품들과 비슷하다. 그것이 가장 무난하기도 하고 또 독자들도 쉽게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 저자도 아마 고민했을 것이다. 내용은 무겁지만 독자에게는 어렵지 않게 다가가고 싶었을 것. 그러면서도 많은 내용을 담고 싶었을 것이다. (약간의 과욕은 느껴졌다)


그의 관점에서 보면 나는 그와 반대쪽에 있는 사람일 것이다. 공부를 조금 더 잘해서 좋은 대학에 갔고, 계속 공부를 해서 현재의 위치까지 왔으니까. 그러한 내가 그를 이해할 수 있다고 하면 그건 가식으로 보일까?


하지만 나는 그의 삶에서 공감하는 부분이 많다. 내 아버지께서도 중소기업에서 20년 넘게 근무하셨는데 어릴 때 살던 집이 그 회사 근처에 있어서 자주 아버지 회사에 놀러 갔었다. 그 일대는 주거지와 공장들이 뒤섞인 곳이었다. 지금도 그 공장 안에서 돌아가던 기계소리와 냄새가 기억난다. 좋은 환경은 아니었지만 그곳에서 일하시던 동료 직원분들도 좋은 분들이었고, 그곳도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다. 하지만, 그 회사도 IMF 사태로 인해 문을 닫게 되어 아버지께서는 이후에 택시운전이나 다른 일을 하시게 되었다.


당시 아버지께서 월급으로 얼마를 받으셨는지는 모른다. 당시에도 우리 집은 넉넉지 않은 살림이었고, 어머니께서도 계속 맞벌이를 하셨던 것을 생각하면 그리 많지는 않고, 일반적인 중소기업 수준이었을 것이다.


대학생 시절, 나는 육체노동을 하는 아르바이트들을 주로 했었다. 방학 때 공장에서 일해보기도 하고, 신문배달, 도서 창고, 냉장냉동창고 등에서 일을 하기도 했다. 다른 친구들처럼 편하게 과외를 할 수도 있었지만 당시에 나는 노동의 신성함과 중요함을 자각했었다. 직접 경험해보지 않는다면 그러한 현실을 알지 못할 것이고, 나의 주장들은 거짓될 것이라 생각했었다.


그러면서 학생운동(PD계열)에도 동참했다. 노동환경과 노동자들의 처우 개선, 우리나라에 고착된 사회문제들을 해결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나의 마음은 크게 달라지진 않았지만 나의 위치가 달라지면서 사실상 그러한 문제들로부터 멀어졌다. 내겐 늘 그러한 마음의 빚이 있었다.


이 책을 읽으며 당시의 기억들이 떠올랐다. 그때 보았던 풍경들, 사람들이 떠올랐다. 하지만 당시의 나는 순진했었다. 우리가 그렇게 노력하면 이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으니.


많은 이들이 노동환경, 특히 중소기업의 노동환경에 대해서 막연하게나마 알고는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자신의 직접적인 문제가 아니라면 외면한다. 눈에 보이지 않으면 없는 것이라고 치부한다. 하지만 그곳에도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고, 여전히 우리나라의 경제시스템의 근간을 이루고 있다.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그의 말대로 공부를 못 해서, 그저 그런 일들 밖에 할 수 없어서 그런 열악한 환경을 견디고, 저임금과 차별을 받으며 살아야 하는 걸까?


그저 나이를 먹어갈수록, 어딜 가나 얼마 안 되는 승자들이 패자가 응당 가질 몫까지 몽땅 빨아들 이는 현실만 알아갈 뿐, 스물다섯 살의 나는 일찌감치 사회에 투항했다. 승자 독식에 의문을 느끼고 저항할수록 나의 초라함만 되새길 뿐이란 사실을 깨달아버렸다.

명문대생은 공부 많이 했으니 유능해서 대단한 일을 하고, 전문대생은 공부 안 했으니 무능해서 못난 일만 한다. 그리 생각하면 세상만사가 일목요연하고 질서정연해 졌다. 체념하면 모든 게 편할 텐데, 오히려 '우리가 훨씬 대단한 거야'라니. 확신에 찬 그 목소리가 참 멋지다고 느꼈다. pp.117


사실 그것은 고도성장의 그늘이자 민낯이다. 우리나라 경제가 그동안 고도성장을 할 수 있었던 것은 특정 재벌의 독식과 정경유착, 하청에 하청으로 이어지는 구조, 결국 노동자들에 대한 착취의 결과이다. 나아지고 있다고 해도 근본적인 구조는 나아지지 못했고, 오히려 비정규직이 더 많아지면서 차별도 많아졌다.


그가 이 책에서 요구하는 것은 단순했다. 같은 일을 하는 사람들 간에 차별을 하지 말고, 정당한 임금을 달라는 것. 이는 비슷한 환경에 있는 모든 이들이 한 목소리로 요구하는 것이기도 하다.


내가 왜 이렇게 살아야 할까.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을 누구도 던져주지 않는다. 세상은 그저 냉소로 회답한다. 넌 흙수저 주제에 노력도 하지 않았잖아? 맞는 말이다. 맞는 말이긴 한데, 나도 나름 열심히 살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좀 행복하게 해 달라는 게 그리 거창한 부탁인가? pp.148


그게 어려울까? 그렇다. 생각보다 어렵다. 구조적인 문제도 있지만 사람들의 마인드부터가 그렇다. 또한 모든 것에는 다 이유가 붙는다. 대기업이 하청을 주는 이유, 중소기업 사장이 그렇게 하는 이유, 정규직과 비정규직 또는 노조원과 비노조원이 차별을 받는 이유, 비정규직 노동자가 그런 임금을 받을 수밖에 없는 이유, 외국인 노동자가 차별을 받는 이유 등등. 각자의 입장이 있고 서로 대립관계에 있기도 하기에 모두를 만족시킬 수도 없다. 하나의 해결책은 하나의 문제점을 낳는다. 그게 문제 해결이 어려운 이유다.


이 책에서는 저자가 여러 중소기업을 다니면서 겪은 부당함과 차별을 그대로 적어놓았다. 단지 이 책을 읽고 그러한 노동환경과 처우에 대해서 공감을 표시한다고 달라지는 것은 없다. 더군다나 영향력이 있는 사람이 이 문제를 언급하는 것이 아니라면 사회에 반향을 일으킬 가능성조차 없다. 그가 이렇게 조명을 받았던 이유도 양승훈 교수를 통한 것이기도 하기에.


공장 이야기에 사람들이 관심이 많다고 느꼈지만 그때의 나는 정작 최종 진단을 잘못 내렸다. 이런 이야기가 번뜩일 수 있는 이유는 결국 양승훈이란 베스트셀러 저자의 역량과 명망 덕일뿐 내가 직접 얘기하면 아무도 듣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pp.222


대다수의 사람들은 노동조합, 주로 노조라고 말하는 단체에 대해서 반감을 갖는다. '귀족노조'라고 폄하하며 자신들의 이득만을 위해 행동하는 사람들로 치부한다. 노조는 늘 언론의 타깃이 되고, 그들에 대한 부정적인 면만을 부각한 결과다.


이 책에서도 노조에 대한 불만이 드러난다. 노조가 결국엔 정규직인 노동자들의 권리만을 위한 것이고, 그 결과 비정규직에 대해선 차별을 강화시킨다고. 노조가 대다수 노동자들의 현실을 대변하지 못하고 특정인들만을 위한 것으로 변질되어 간다고.


티브이에서 동일노동 동일임금을 해달라 절규하는 하청 직원들을 보았는데, 현실은 동일 노동조차 안 시켜주는 셈이었다. 진짜 욕먹어야 할 주체는 재벌과 대기업 이건만, 유달리 노조가 더 비난받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보이지 않는 재벌의 횡포가 아메리카노 정도라면 눈앞에서 직접 체험하는 차별은 에스프레소 원액만큼 썼다. pp.111


일면 맞는 부분도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노동환경을 개선시켜가는 힘은 노조로부터 나올 수밖에 없다. 비록 욕을 먹을지언정 그렇게라도 해나갈 수밖에 없기도 하다. 누군가는 끌고 나가야 그 뒤를 따라갈 수 있으니까. 하지만 국민들의 공감대 형성이 안 되고, 점차 설자리조차 위협받는 현실에서 우리나라 노동운동은 어떠한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도 고민해봐야 할 것이다.


저자가 앞으로 어떤 모습을 보일지 궁금하다. 그는 현장을 떠나고 싶지 않다고 했지만 현재는 미디어 스타트업에 기자로 들어갔고, 그곳에서 그의 시각으로 글을 쓸 것이다.


사실 나는 이 책 이전에 그가 어떤 글을 썼는지는 모른다. 책에 일부 인용되어 있기는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그가 초심을 잃지 않았으면 한다. 그가 노동자들의 현실을 정확하게 알리고, 그 영향력으로 우리 사회가 좀 더 바람직한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었으면 한다. 그러기에는 한 사람의 힘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할 것이지만 변화는 작은 것으로부터 시작될 수도 있는 것이기에.


우리가 공장 바닥 전전하며 보낸 이십 대는 그저 통장에 찍힌 얄팍한 숫자 따위가 대표할 수 없다. 사회에서 '못 배운 놈년들'로 통칭당하며 냉소와 조소의 대상이 되었던 우리는 자존감을 찌그러뜨리려는 온갖 압력에 저항한 결과, 삶의 형태에 고하 따윈 없다는 소중한 지혜를 얻었다. pp.246


다만 그가 과욕을 부려서 포기하게 되는 일은 없었으면 한다. 사실 글 쓰는 일을 그만두더라도 다시 현장에 갈 수는 있겠지만 그 전과는 많은 것이 달라졌을 테니, 그가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글을 계속 써주었으면 한다.


무엇보다 기자가 된다는 건 세상 그리고 타인과 훨씬 밀접해진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렇다면 내가 바랐던 현실과 실제가 다를 때, 사실을 가공하고픈 유혹에서 쉽게 벗어날 수 있을까. 그리할 수 없다면 훌륭한 기자가 될 수 없고 제안은 받지 말아야 했다. pp.276
공장 일꾼이란 정체성으로 현장의 서사를 팔아 나 혼자 비겁하게 출세하는 건 아닐까. 진짜 현장 노동자들은 천현우를 기득권 앞에서 글 재롱부리는 간신으로 생각하진 않을까. 아저씨의 고마운 덕담에 최근 들어 점점 무게를 불려 나가던 걱정의 무게가 훌쩍 줄어들었다. pp.284


이제 이달책에서 그가 쓴 편지를 다시 읽어본다. 그의 마음이 느껴진다.


(...)
책에 담고자 했던 주제는 거창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힘겨워도 살겠노라 마음먹으면 어떻게든 살수
있다 말하고 싶었습니다. 이 책엔 응원과 위로가 없습니다.
대신 한 사람이 세상에 냉소하지 않으려 노력한 흔적은
남아 있습니다. 여러분께서 책을 덮었을 때,
세상이 생각보단 살 만한 곳이라고 느끼셨다면,
작가로서 더 바랄 게 없겠습니다.

2022년 가을
천현우 드림


#북클럽문학동네 #이달책 #쇳밥일지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엄유진 <펀자이씨툰> 1, 2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