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종목이든 스포츠를 보다 보면 두각을 드러내는 선수가 나오게 된다. 언론은 그런 선수들에게 주목하게 되고 점차 국민들의 관심도 받게 된다. 때론 그 선수를 키워낸 부모들에게 스포트라이트가 비치는 경우도 있다.
그가 국제경기 (특히 월드컵, 올림픽 등)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거나 해외팀에서 활약하는 것을 보면 마치 나 자신과 동일시되어 뿌듯함을 느끼기도 한다. 그래서 스포츠는 애국심을 고양시키기에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다.
그런 많은 선수가 있었지만 어떤 선수는 최고조에 이르기도 하고, 어떤 선수는 그에 못 미치기도 한다. 선수의 기량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운도 잘 맞아야 하고, 경기 외적인 것들도 잘 따라주어야 한다.
운칠기삼
그는 그렇게 말했다.
그런데 우선 그를 어떻게 불러야 할까? 손웅정 감독? 손웅정 전선수? 손웅정 작가? 아니면 손흥민 선수의 아버지? 여기에서는 일단 책을 쓴 작가님이니 손웅정 작가라고 하겠다.
그가 그렇게 말한 이유는 자신의 생애에서도 운이 많이 따라주었고, 아들들, 특히 손흥민 선수에게도 그랬었기 때문에 그랬다고 했다. 그것은 자신의 실력 이외에도 운이 따라준 결과들에 감사하고, 겸손해야 함을 이야기한 것이다. 자만에 빠지게 되면 자멸하게 된다.
내가 사범대학을 나왔거나 훌륭한 교수법을 알고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나는 교육이란 말에는 '가르치다'를 넘어 '기르다'란 뜻이 들어 있다고 생각했다. 축구를 가르치는 데서 끝날 게 아니라 선수로, 사람으로 길러야 한다고 믿었다.
그래서 그때 내가 중시한 것은 축구에 임하는 태도와 자세였다. 나뿐만 아니라 모든 축구 코치가 대개 그럴 것이다. 축구를 잘 습득하려면 운동능력 하나로는 어림없다. 운동능력이라는 재능을 뒷받침해 줄 '성실한 태도'와 '겸손한 자세'가 겸비되어야 한다. 축구장이라는 네모난 공간은 무법천지가 아니다. 그곳도 룰(법)의 지배를 받는다. 그 공간에 들어간 사람은 누구나 엄격한 법 아래에 서게 된다. 그래서 자신과 타인의 관계를 이해하는 게 최우선이다.
그러나 선수에게는 '운'도 중요하지만 '실력'은 더 중요하다. 그리고 그러한 실력은 타고나는 것도 있지만 노력으로 얻어지는 것이고, 그러한 노력은 기본기를 쌓는 것에서 시작된다.
지금은 월드클래스로 일컬어지는 손흥민 선수를 키워낸 아버지로서 그의 훈련법이나 교육철학이 각광을 받고 있기에 TV에도 출연하고 이렇게 책도 내게 되었지만 사실 그의 신념은 일반적인 수준을 넘어선다. 어떤 면은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지만 모든 것을 일반화할 수는 없기에 '이런 것도 있구나'라고 상대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겠다.
나는 우리 아이들을 정말 혹독하게 키웠다. 이제 와 변명할 생각도 축소시킬 생각도 없다. 공차는 게 좋아 축구를 하겠다는 아이들에게 내가 할 수 있는 건 내 깜냥 안에서 제대로 된 교육이라고 생각하는 내용을 실천하는 것뿐이었다.
낙숫물이 떨어져서 바위를 뚫는 듯한 반복. 그 꾸준함과 끈질김이 필요했다. 그곳에서 기본기가 시작된다. 엄청 지루했을 테다. 아비가 무서우니 말은 못 했겠지만 지루하고 지쳤을 테다. 하지만 나는 다르게 가르치고 싶었다. 무엇이 맞고 틀린 지, 옳고 그른지는 모르지만 내가 경험한 축구가 아닌 다른 축구를 경험하게 해주고 싶었다. 다른 환경을 만들어주고 싶었다.
그의 선수생활은 그리 길지 않았다. 당시 국민학교에서 우연하게 축구를 시작하게 되어 오로지 축구만을 위해 살았고, 프로선수와 국가대표까지도 선발되었으나 부상으로 2년 만에 그만두게 되었다.
그는 자신의 선수생활을 돌아보며 후회를 많이 했다. 별다른 기술도 없이 그저 달리기를 잘했던 것 하나 믿고 무작정 뛰었던 것. 그러다 보니 부상을 당한 이후에 선수생활을 더 이어갈 수 없었고, 무엇이 중요한 것을 깨닫게 되었던 것이다.
그로 인해 그는 축구 영상들을 보며 분석을 하고 연구를 하여 자신만의 방법을 찾게 되었고, 그의 아이들뿐만 아니라 유소년 축구 선수들을 교육하고 있다.
그는 기본기를 중시한다. 이 책의 제목인 "모든 것은 기본에서 시작한다"는 말도 거기에서 나왔다. 그리고 이 책에는 그러한 것을 강조하는 대목도 많이 나온다. 이 말에는 그의 뼈저린 통탄이 담겨 있다.
사람들은 너무 성급하게 결과만을 바라본다. 승리와 영광만을 소망한다. 제대로 싸워서 이기려면 수도 없이 패배하고 좌절해봐야만 한다. 하지만 그런 좌절은 앞날이 보장된 좌절이자, 실패가 아닌 경험이다. 이 과정을 겪어야 사람은 성장한다.
그래서 내린 결론은, 기본기에 답이 있다. 몸의 밸런스가 중요하다. 축구의 비밀은 공에 있다. 이 세 가지 정도다.
축구에 왕도란 없다. 흥민이가 함부르크에서 처음 계약했을 때, 1년도 채 지나지 않아 1군 팀 훈련에 참가했을 때, 분데스리가 데뷔 골을 넣었을 때 사람들은 "혜성처럼 나타난 선수"라고 표현했다. 나는 흥민이뿐 아니라 그 누구도 그 어떤 분야에서도 "혜성은 없다"라고 말하고 싶다. 이 세상에 혜성같이 나타난 선수 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다. 차곡차곡 쌓아 올린 기본기가 그때 비로소 발현된 것일 뿐이다.
모든 것은 이 '기본'에서 시작된다. 흥민이의 기본기를 채우기 위해 7년의 시간이 걸렸다. 365일 쉬 지 않았다. 방학 때 친척집에 놀러 가는 일도 없었다. 하루를 쉬면 본인이 알고 이틀을 쉬면 가족이 알고 사흘을 쉬면 관객이 안다는 말처럼, 죽을 때까지 놓지 말아야 하는 가치는 '겸손'과 '성실'이다.
나는 농부의 마음이다. 365일 파종한다. 하루라도 손을 놓으면 열매를 거두기 어렵다.
그래서일까, 그의 훈련법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과는 다르다. 답답해 보일 수도 있다. 당장의 성과보다는 길게 내다보는 안목과 인내를 강조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선수생명도 오래 유지할 수 있고, 또 좋은 성적도 낼 수 있을 것이라는 얘기다.
그의 훈련방법은 손흥민이라는, 검증된 결과가 있었기에 인정을 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사실 손흥민 선수의 아버지로서 그는 극성맞아 보이기까지 한다. 그런 속내 역시 이 책에 드러나 있기는 하지만 손흥민 선수와 관련하여 몇 번의 이슈가 있었다. 때론 비난을 받기도 했지만 그것도 이제는 어느 정도 오해가 풀린 듯하기도 하다. 그 속에는 그의 진심이 담겨 있었음을 부정할 수는 없으니. 나도 그에 대한 오해가 있었지만 이제는 알 것 같다.
어릴 때부터 아버지에게 훈련을 받아서 혹시 부자관계가 안 좋지는 않을까라는 우려도 있었지만 현재까지 보이는 모습은 웬만한 부자관계보다 더 좋아 보인다. 이건 그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바이기도 하지만, 손흥민 선수의 천성이 좋아서인 것 같기도 하다. 손흥민 선수 같은 아들을 두면 정말 그렇게 하고 싶은 욕심이 날 것 같기도 하다. 다만, 모두가 손웅정 작가처럼 할 수는 없는 것.
흥민이는 내가 하는 행동의 진짜 이유를 알기 때문이다. 내가 흥민이를 존중하지 않아서가 아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표적지나 상장 같은 사물이 아니다. 핵심은 내가 최선을 다했고 그와 더불어 해야 할 일을 행복하게 잘 마쳤다는 데 있기 때문이다. '자신이 그 일에 얼마나 성실히 임했는가' 중요한 것은 본질이 무엇이냐를 아는 데 있다.
나는 훈련할 때 호되게 혼냈지만 반드시 사후 수습을 했다. 이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내 삶에 대해 자신할 수 있는 것이 많지 않지만 이것만은 조심스레 자신할 수 있겠다. 나의 엄한 훈련에도 아이들에게는 '우리 아빠는 나를 사랑해'라는 믿음이 있었다는 것. 혼나고 30초도 안 돼 "아빠~" 하고 달려올 수 있는 신뢰가 부자 사이에 끊어지지 않는 끈처럼 연결돼 있었다는 것. 지금도 만나면 반가워 자연스럽게 허그하고 서로의 행복과 소중함에 대해 표현할 수 있다는 것. 무뚝뚝한 부자지간이지만 그 안의 사랑과 믿음만큼은 조심스럽게 자신할 수 있겠다.
...
남들 눈에는 어떻게 보였을지 모르겠지만 우리 부자 사이에는 그러한 균형이 존재했다. 감정에 휘둘려서 혼을 내지 않을 것. 인격을 훼손하지 않을 것. 어찌 보면 당연한 것들을 지키려 노력했다. 일관되게 말하고 이유를 분명히 알 수 있도록 했다. 내 자식이지만 나와는 다른 삶이기에 조심스러웠다. 지금도 그렇다. 성장하고 성인이 된 아이들을 바라보며 내 한계를 매일 인식한다.
또한 그는 인문학을 강조한다. 인문학은 인성과도 연관이 있다. 그는 운동선수들이 그러한 인성을 갖추지 못한 채 경기만 하다가 선수 생활을 마감하는 것에 안타까움을 느꼈다. 그래서 그러한 교육도 하면서 특히 독서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한다. 그가 과거 자신의 무지를 반성하며 탐독하고 학구열을 불태운 것에서 그의 의지를 볼 수 있었다. 이것은 또한 노년을 대하는 거의 태도와도 연결된다.
그는 손흥민 선수의 경기가 있을 때마다 현장에서 지켜보며 지도자로서, 또 아버지로서 마음을 졸이고 있을 것이다. 아마 손흥민 선수가 은퇴할 때까지 계속될 것이다. 그러나 그는 누구의 아버지로서, 지도자로서가 아니라 스스로의 미래를 위해 노력하고 있기도 하다.
사회적으로 성공한 위치에 오르는 것, 뛰어난 기록을 내는 선수가 되는 것, 온 국민이 알 정도로 이름을 날리는 것, 이 모든 것보다 중요한 것은 인간다운 인간이 되는 것이다. 책을 읽다가 좋은 부분을 접어 내 아이들에게 읽게 했던 것은 결국 인성을 위한 것이었다. 내가 아무리 축구에 미쳐 있는 놈이라 해도 내가 축구라는 매개로 의도하는 모든 행위는 딱 한 마디로 줄이면 결국은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이다.
이 책에서는 손웅정 작가의 어린 시절 이야기부터 선수로 뛰던 이야기도 있었고, 아들들에게 축구를 가르치던 이야기들도 있다. 축구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아마 이 대목들에 관심을 가질 것 같다.
아이를 키우는 부모라면 그가 어떻게 아이들을 교육시켰고, 그의 교육 철학은 어떠한지에 대한 관심을 가질 것이다. 이처럼 이 책을 대하는 관점은 다양할 것 같다.
내 경우에는 그의 인생관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특히 노년을 대하는 그의 태도가 와닿았다. 그는 나보다 열몇 살 정도를 앞서 살아왔지만, 나도 이 정도 나이가 되니 그러한 것이 더 눈에 들어오는 듯하다.
최근 몇 년간 노후에 관한 책들을 꾸준히 읽고 있다. 연세 드신 분들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않고 관찰한다. 내가 더 나이가 들어 어떤 노인이 될지 배울 건 배우고 반면교사 삼을 부분 역시 기억해 둔다. 자식들에게 의지하지 않고 타인에게 간섭받지 않으면서 자유로운 나만의 삶을 살 수 있도록.
몇 가지 노력하는 부분들이 있다.
첫째, 매일 운동한다.
둘째, 매일 책을 읽는다.
셋째, 내 몸과 마음을 깨끗이 정돈하고 살핀다.
그는 자신의 미래에 대해, 노년에 대해 이런 희망과 다짐을 한다.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건강하고 자유롭고 행복한 삶.
이러한 삶을 살겠다.
그러한 것 역시 평소에 준비하고 쌓아온 것들이 기반이 되지 않을까. 어느 날 갑자기 그렇게 될 수는 없으니. 그렇기에 '모든 것은 기본에서 시작한다'는 그의 말은 여기에서도 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