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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칼란드리아 Aug 21. 2023

나의 본캐와 부캐

출처: <SBS 스페셜> 621화


내가 1990년대 초반의 PC통신 시절부터 온라인 활동을 했으니 내 삶의 2/3 이상은 온라인과 연결되어 있었다. 온라인은 내게 익명의 공간이었으며, 친숙한 놀이터였다. 대부분의 경우 (오프라인과 연계되지 않은 경우에 특히) 나는 ID 또는 닉네임으로 불리었고, 그것은 나의 또 다른 이름이었다.


주로 사용하는 닉네임도 여러 번 바뀌었다. 그중에는 '중2병'스러운 것도 있었고, 장난 삼아 만든 것들도 있었다. 하지만 꽤 오래 사용했기에, 지금도 나를 예전의 닉네임으로 부르거나 기억하는 사람들도 많다.


'칼란드리아', 줄여서 '칼란'이라는 닉네임은 약 7~8년 전부터 사용한 듯하다. ID로는 훨씬 더 오래전부터 사용해 왔지만 닉네임까지 변경한 것은 그 정도의 시간이 지났다. 지금은 대부분의 커뮤니티 혹은 모임에서 '칼란'을 사용하고 있다. 아마 앞으로는 계속 칼란을 사용할 것 같다. 그리고 나의 부캐가 될 듯하다. 만약 내가 나중에 필명을 사용하게 될 일이 있다면, 그때도 칼란을 필명으로 하고 싶다.




나의 본캐는 페이스북 및 인적네트워크상에서만 드러나 있다. 나와 직접적인 인맥 또는 친목, 업무상의 경우에만 나의 본캐를 알고 있는데, 이 경우에는 나의 부캐를 모를 것이다. 페이스북에서도 40여 명의 지인들과만 친구공개로 글을 올리고 있다. 여기에서는 직업상의 얘기와 일상의 얘기를 하지만 그 외의 얘기는 잘하지 않는다.


그 이외의 경우에는 부캐인 칼란으로 알려져 있는데 사실 본캐나 부캐나 서로 숨기고 있는 편이기에 둘 다 드러내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그래서 둘 다 알고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심지어 가족조차도 나의 부캐는 모른다. 특히나 익명의 공간에서는 나의 본캐는 더욱 숨기게 된다. 




현재 나의 부캐의 정체성은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특히 책, 독서와 관련된 온라인 활동에서 이 닉네임을 사용하고 있다. 그러한 활동이 지속됨에 따라 정체성 역시 더 강화되고 있다. 


브런치에서는 '칼란드리아'를 쓰고 있다. 이마저도 다른 사람들이 모르게 하고 싶었던 것도 있고, '칼란'이 짧다고 느껴져서 일부터 좀 더 긴, 원래의 이름으로 한 것인데 내게는 둘 다 동일하게 느껴지기에 상관은 없다. 하지만 부르는 사람은 다르게 느껴지려나? 


그러한 부캐를 이용해서 무언가를 하려는 생각은 없다. 브런치를 키울 필요도, 더 홍보할 필요도 느끼지는 않는다. 오히려 본캐가 드러날 것이 우려되기에, 현재 수준 정도만 유지해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반면, 부캐를 좀 더 확실하게 만들고 싶다는 욕구도 들기는 한다. 하지만 목표도 열정도 없는 지라 무리라는 것을 안다. 


그래도 나는 이 부캐가 점점 더 좋아진다. 이러한 활동이 재밌다. 예전에는 그게 나 자신이었고 나와 동일시할 수도 있었는데 지금은 나와 분리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집과 직장에서 이루지 못하는 것들을 부캐를 통해 대리만족하고 있는 것인가 싶기도 하고.


상단의 이미지처럼 본캐와 부캐 간 균형을 잘 잡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사실 나는 본캐에 더 많은 노력을 투자해야 하는 상황이긴 하다. 현생을 무시할 수는 없으니까. 부캐가 재밌더라도 본캐만큼 중요하지는 않다는 사실을 상기해야 한다.




p.s. 아까 이 글을 쓰기 시작할 때만 해도 부캐는 그냥 재미로만 하고, 본캐에 집중해야겠다는 마음이었다. 하지만 내 브런치를 좀 더 키워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부캐도 좀 더 적극적으로 활동해 보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어떻게 할지는 아직 고민이다.


자신을 알리고 홍보해야 하는 시대에 반대로 숨기고자 하는 건 아니다. 다만 나를 알리는 건 나의 본캐로 족하다는 것. 부캐는 단지 부캐일 따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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