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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칼란드리아 Aug 22. 2023

에드워드 윌슨 <통섭> #2

3장 계몽사상


1장과 2장에서 '이오니아의 마법'이 있었음에도 학문들이 갈라져 나가게 되었다고 했었죠. 그러한 것들을 다시 통합하기 위해 '통섭'이 필요하다는 얘기를 했었고요.


계몽사상, 혹은 계몽주의는 아마 많이 들어보셨을 것 같고 어떤 것인지 대략 감은 잡으실 것 같은데요, '그래서 그게 뭐 어쨌다는 건가?'라는 생각도 하실 듯해요.


저는 계몽사상을 먼저 이야기한 것은 그것이 '지적인 통일'을 위한 시도였고, 어느 정도 성과가 있었지만 결국 실패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라고 생각해요.


지적인 통일이라는 꿈은 계몽 운동이 일어난 17~18세기에 처음으로 꽃을 활짝 피웠다. 이때는 마음의 이카로스가 하늘로 날아오른 시기라고 볼 수 있다. 세속적인 지식이 인류의 권리와 진보에 기여한다는 비전(vision)은 서양이 인류 문명에 남긴 가장 위대한 공헌이다. 이 비전이 근대를 출발시켰으며 우리 모두는 그 유산을 물려받았다. 하지만 그 비전은 실패했다.


이 책의 관심사는 지식의 통합이고, 그러한 여정에서 고대 그리스를 출발점으로 삼았을 때 근대 서양과의 간극은 꽤 큽니다. 그 사이 약 2000년간의 잃어버린 시간들에서는 무언가를 고찰할만한 것이 별로 없기 때문이었죠. 그나마 르네상스 이후에 조금씩 싹트기 시작한 인본주의, 이성에 대한 자각 등이 계몽사상을 통해 비로소 전면에 부각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계몽사상은 자연과학이 발달에 힘입어 발달했지만 그 자체가 가진 한계, 어찌 보면 모순으로 인해 쇠퇴하게 되었는데요, 이는 계몽사상이 자연스럽게 형성된 사조라기보다는 목적성을 가진 것이었고, 그 가운데서 서로 상충되는 것들이 생겨서 힘이 약화되었다고 느꼈습니다. 그러면서 다른 사조들에게 공격도 많이 받게 된 것이죠.


사실 이성이 최고의 권위를 가졌던 적은 없다. 계몽사상은 자기 정당화에 계몽사상을 이용한 압제자 때문에 쇠퇴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많은 경우에 타당했던 지성적 반대 의견이 대두하면서 쇠퇴했다. 처음에는 자유로운 지성으로 세계를 질서 정연하게 만들려는 계몽사상의 꿈은 절대로 깨질 수 없으며 모든 사람들의 본능적인 목표처럼 보였다.


그러한 계몽사상의 발전과 쇠퇴, 그리고 그 이후의 사조들에 대하여 정리를 하고 있어서 꽤 복잡하게 느껴졌을 수도 있을 듯해요. 마치 서양철학사를 읽는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했죠. 아니, 그런 기분이 드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그런 셈입니다. (우리가 지금 무슨 책을 읽고 있는 거죠? ㅋ)


3장에서는 마르키 드 콩도르세의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그가 계몽사상의 본질적 속성과 종말에 대해서 가장 잘 보여준다고 하면서요. 윌슨은 1794년 3월 29일, 콩도르세의 죽음으로써 계몽사상은 끝이 났다고 하였습니다.


콩도르세는 사회학자, 수학자, 철학자, 역사학자, 정치가였고 '인류는 과학과 세속 철학이 지배하는 더욱 완벽한 사회 질서를 향해 나아가고 있으며, 우리는 인류로 하여금 그러한 운명적인 길을 걷도록 하는 법칙들을 이해하기만 하면 된다'라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저자는 그가 인간의 본성을 과신하는 실수를 범했다고 비판합니다.


어찌 보면 계몽사상은 다소 오만하게 느껴집니다. 소수의 엘리트들이 각자의 주장을 내세우며, 몽매한 대중들을 교화시켜 이성이 중심이 된 사회를 만들려고 했던 것이니까요. 당시의 수준에서는 그러한 것이 타당하게 보였을 수도 있지만 그들은 너무 낙관적이었던 것이죠. 그들의 꿈은 '인류보완계획'만큼이나 허황된 것이었을까요?


계몽사상은 서양 근대 지성의 전통과 서구 문화 대부분의 출발점이 되었다. 사람들은 이성이 인간을 정의하는 특성이고 그것이 보편적으로 꽃피려면 약간의 교화만 있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바로 그 인간은 계몽사상에 관심도 기울이지 않았으며 다르게 생각했다. 오늘날까지도 지속되고 있는 계몽사상 퇴조는 인간 동기의 근원이 미로처럼 얽혀 있음을 드러내 준다.
(...)
그런데 계몽사상 자체는 통합된 사조가 아니었다. 그것은 거침없이 빠르게 흐르는 물결이 아니라 비틀린 운하를 따라 흘러가는 잔잔한 흐름과도 같았다. 프랑스 대혁명 시기에 계몽사상은 이미 낡은 것이었다.


이후 프랜시스 베이컨에 의해 귀납적 방법론의 정교화, 학문의 체계화 등이 주장됩니다. 통합된 학문을 추구하기도 했었죠. 그는 과학을 매우 넓게 정의하면서 그 속에 인문학까지도 포함하는 것으로 보았는데요, '학문의 커다란 가지들은 끝이 열려 있어서 계속적으로 진화하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그가 염두에 두었던 지식의 통일은 현대의 통섭 개념과는 다른데, 이는 '학문의 모든 가지들에 가장 잘 봉사할 수 있는 귀납적 탐구라는 공통 수단에 초점을 맞추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즉, 귀납적 방법이 모든 학문에 공통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수단이라는 것이죠.


베이컨은 질서 정연하게 통합된 학문을 인간 조건 향상의 핵심적인 요소라고 생각했다. (...) 철학적이고 소설적인 그의 저서 대부분은 지식의 통합이라는 개요를 충족시키도록 구성되어 있다. 여기서 그는 지식의 통합을 인스타우라티오 마그나(Instauratio Magna)라고 불렀는데 말 그대로 ‘위대한 부흥’ 또는 ‘새로운 시작’이다.


이후에 르네 데카르트는 '지식이 궁극적으로 수학으로 추상화될 수 있는 상호 연계된 진리 체계'라는 주장을 합니다. 그는 '우주가 합리적이며 인과율로 연결된 통일성을 지니고 있음'을 강조하며, 이를 바탕으로 학문의 통일성에 대한 믿음을 가졌습니다. 이는 데카르트적 환원주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이작 뉴턴이 등장하면서 상황은 급진전합니다. 고전물리학의 발판을 마련한 그의 여러 업적으로 인하여 계몽사상은 강력한 힘을 얻게 되고, 이 세상이 어떠한 법칙에 따라 움직인다는 생각은 인간 만사에 적용하려는 시도로 확장되었죠.


이러한 급진적인 생각들은 신 자체를 다시 평가하려는 이신론을 낳게 되었지만 이신론은 신학에도 밀리는 형세가 되었습니다. 사람들이 굳이 이신론을 추종할 이유가 없었으니까요. 사람들은 이성보다는 종교적 믿음을 더 따르는 것 같습니다.


그러한 종교적인 영역까지 침범해서 들어간 계몽사상은 점차 그 힘을 잃게 되었습니다. 인간을 자유롭게 하고자 했던 계몽사상의 시도는 오히려 자유를 박탈하게 하는 결과를 낳았고, 그런 경직된 사고는 뒤에 낭만주의에게 공격을 받게 됩니다.


더구나 계몽사상을 뒷받침했던 자연과학은 오히려 계몽사상의 반대로 인해 형이상학적인 영역은 건드리지 못하게 되었죠. 하지만 그로 인해 오히려 자연과학이 발달하게 되었다고도 합니다. 인간의 정신세계는 오히려 과학에게는 족쇄 같은 것이었을 수도 있었을 테니까요.


계몽사상과는 별개로 자연과학이 발달하여 현재까지 왔지만 이 과정에서 학문이 너무 분화되어 이제는 각자 자기 영역에서만 머무르게 되었습니다.


큰 그림에 대한 관심이 부족한 데에는 더 소박한 이유가 있었다. 과학자들이 그 일을 할 만한 지적 에너지를 갖지 못했던 것이다. 대다수의 과학자는 장인(匠人)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다. 오늘날에는 더욱 그러하다. 그들은 전문 분야에만 집중한다. 그들의 교육 과정은 세계의 드넓은 윤곽을 볼 수 있게 해 주는 것이 아니다.


이는 과학자들의 탓만은 아닙니다. 과학 자체가 어느 한 분야만을 공부하고 연구하기에도 너무 벅차기 때문입니다. 철학자처럼 형이상학의 틀 안에 모두 집어넣고 흔들어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이미 정립된 엄격한 과학적 방법론에 따라 지식을 축적해갈 따름이니까요.


저자는 모더니즘에서도 파편화가 나타났음을 보여줍니다. 이는 '전통이 강요하는 굴레를 찾아내어 의식적으로 파괴'한 행위인데 이것이 극단으로 치닫게 되자 포스트 모더니즘이 등장합니다. 그런데 이 포스트 모더니즘은 계몽사상과는 반대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하고 있습니다.


모든 운동은 극단으로 치닫기 마련이다. 오늘 우리는 이 극단의 지점에 서 있다. 낭만주의에서 모더니즘에 이르는 열광적인 자기실현은 철학적 포스트모더니즘(정치·사회학적 표현으로는 종종 포스트구조주의로 불린다.)을 불러왔다. 포스트모더니즘과 계몽주의는 완벽한 상극이다. 왜냐하면 계몽사상가들은 우리가 모든 것을 알 수 있다고 믿지만 급진적인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은 우리가 아무것도 알 수 없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스트 모더니즘은 통섭에 있어서 어떤 실마리를 제공하기도 하는데, 이는 일종의 '메타 이론'으로서 어떠한 과학이론의 기저에 있는 '근원 은유'에 관점을 맞춥니다. 이는 특정 과학자들이 왜 그런 식으로 사고하게 되었는지를 문화·심리학적 관점에서 분석하는 것이죠.


그래서 저자는 그러한 포스트 모더니즘의 옳고 그름을 논하기보다는 그 필요성에 대해서도 이야기하며, 이를 통해 다시 계몽사상의 정신에서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마무리하고 있습니다.


인텔리겐치아(intelligentsia)가 점차 소멸하고 사회적으로 의미 없어짐을 우려하는 사람들에게 나는 두 종류의 독창적 사상가들이 늘 존재했음을 이야기하려 한다. 그들은 무질서를 보고 질서를 창조하려는 부류와 질서에 맞닥뜨려 무질서를 만듦으로써 이에 대항하려 했던 부류이다. 그 둘 사이의 긴장이 지식을 앞으로 나아가게 한다. 그 긴장이 지그재그형 진보를 통해 우리를 들어 올린다. 그리고 여러 사상들이 다윈주의적으로 서로 경쟁할 때 승자는 늘 질서의 편에 서 있다. 왜냐하면 그것이 실제 세계가 작동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몇 가지 이유에서 포스트모더니스트들에게 경의를 표한다. 그들은 열광적 낭만주의의 현대적인 집전자로서 문화를 비옥하게 한다. (...) 우리에게는 포스트모더니스트와 같은 반란자들이 항상 필요하다. 적대 세력의 공격을 끊임없이 방어하는 것보다 지식을 강화하는 더 나은 방법은 없다.


3장은 분량이 많지는 않았지만 꽤 많은 내용들이 담겨 있어서 정리하기가 쉽지 않았어요.


학교 다닐 때도 계몽사상에 대해서 배운 바는 있지만 그것이 지식의 통합 측면에서 어떤 의미가 있는지는 생각해보지 못했었는데요, 이번 장에서는 그 틀을 만들고자 했던 몇 명의 핵심적인 인물들을 통해 그 의의와 한계를 살펴보려 한 것 같아요. 또한 계몽사상이라는 범주로 묶이기는 하지만 그 속에서도 다양한 시도가 있었기에 그게 단지 어떤 한 가지로 보기 어려운 면도 있습니다.


특히 뒷부분에서 모더니즘과 포스트 모더니즘이 나오면서부터는 그것이 통섭과 어떤 관계가 있는 것인지 와닿지가 않더군요. 어쩌면 이 책이 쓰인 1990년대 중반은 지금보다는 그러한 포스트 모더니즘의 영향이 더 컸을 수도 있었기에 그러한 것이 반영된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도 해보았습니다. 계몽사상으로 시작했지만 모더니즘과 포스트 모더니즘으로 마무리되면서 좀 더 혼란이 생기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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