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브런치를 찾아오는 방문자 중에 상당수는 여전히 이북 리더에 대한 정보를 찾기 위해 온다. 게시글 순위나 검색 순위도 늘 이북리더 혹은 전자책이 차지하고 있다. 애초에 의도했던 것은 아니고 책에 대한 주제로 브런치를 운영하면서 곁가지로 전자책 및 이북리더도 다루게 된 것이었는데 가끔은 주객전도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게다가 나는 전문적인 기기 리뷰어도 아니고, 이북 리더들에 대해서도 간단한 소감 또는 사용기만 남기고 있다. 굳이 자세하게 리뷰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사실 이북리더들의 기기적 특성이나 스펙, 성능 차이는 여전히 고만고만하기에 비교가 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더구나 많은 기기들을 사용하다 보면 더 그렇다.
하지만 한 대 혹은 추가로 구입을 고려하는 경우에는 그래도 더 나은, 좋은 기기를 선택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은 이해한다. 그러한 것은 선택권이 제한되거나 혹은 선택해야 하는 조건이 복잡해질수록 더 그렇다.
나는 이북 리더를 좋아한다. 그건 기본적으로 책을 좋아하기에 그렇지만 내가 얼리어답터 기질이 좀 있기에 그런 것 같다.
그런데 얼리어답터의 기준은 잘 모르겠다. 남들보다 앞서 사용하는 부류들을 지칭하는 말이긴 한데 단순히 어떤 제품 자체라기보다는 새로운 제품군이 나왔을 때 먼저 사용해 보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 보통은 전자제품이나 기기 쪽에 더 많은 듯하다.
기존에 없던 제품들이 나오게 되면 호기심은 생기지만 선뜻 구입까지 이어지기는 쉽지 않다. 아무래도 뭔가 불완전하거나 어색할 것 같아서, 혹은 가격만큼의 효용성이 있을지 검증이 안 돼서인 것 같기도 하다. 사실 그런 제품들이 시장에서 완전히 자리를 잡거나 성공하기는 쉽지 않다. 역사적으로 그렇게 나왔다가 사라진 제품들도 많고, 어떤 사람들은 아예 접해보지도 못했을 제품들도 있다.
예를 들어 ISDN이라든가, 시티폰이라든가. GPS 단말기라든가, 초기의 PDA나 태블릿 PC 등등... 기술 발전에서 과도기에 있었던 제품들이기도 하다.
생각해 보니 내 경우에는 얼리어답터라기보다는 마이너 한 것들을 추구하거나 혹은 레어템을 더 선호하는 것 같다. 이북리더도 일종의 마이너 한 기기이니까.
브랜드의 경우에도 좀 더 마이너 한 것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 핸드폰, 스마트폰도 굳이 LG 것만 사용하고, 예전에 (2000년대 초에) 구입했던 DSLR는 펜탁스 것이었다. 노트북도 소니, 후지쯔, 아수스, 지금은 HP 것을 쓰고 있다. 또한 MS 서피스라든가, 구글의 넥서스 시리즈 등 레퍼런스기기를 좋아하기도 했다.
그러한 것은 어릴 때부터 그랬던 것 같다. 나는 컴퓨터를 조금 일찍 접한 편이라 1980년대 초반부터 8비트 애플, MSX, 삼성 SPC, 금성 패미콤 시리즈 등등으로 배웠고 사용했었는데, 1980년대 후반의 중학생 때부터는 16비트 XT를 사용했었다. 1990년경부터 1200 BPS 모뎀으로 PC 통신을 시작했고, 1994년부터는 인터넷을 사용했었다. 그러한 것들도 남들보다는 조금 빨리 접해본 셈이니 얼리어답터라고 할 수 있을지도.
하지만 뭐든 대중화되기 전에는 그에 열성적이다가 막상 대중화가 되면 그에 대한 반감으로 다른 쪽을 찾는 반항적 성격도 있다. DSLR에 한참 빠져있다가 막상 DSLR이 대중화되니 수동필름카메라를 쓰며 자체 현상, 인화를 했었고, 애플에 그렇게 열성적이다가 애플 제품들이 대중화되니 애플에서 돌아선 것도 그렇다.
고등학생 때도 매킨토시를 좋아해서 코엑스에서 맥 전시회 할 때마다 찾아다니고, 당시 국내총판이었던 엘렉스컴퓨터를 드나들기도 했었다. 대학 들어갈 때는 부모님을 설득하여 마침내 매킨토시를 구입하게 됐는데 공대생이 맥을 쓰는 것이 1990년대 초중반 당시에는 정말 미친 짓이었다. 그래도 졸업할 때까지 정말 꿋꿋이 썼다. 대학원 가면서는 노트북, 그 뒤로는 MS Windows XPTE 기반의 태블릿 PC로 갔지만. 나와 애플과의 인연은 아이팟까지였다.
그 뒤로도 얼리어답터 혹은 마이너 기질을 상당히 드러냈는데 이는 단순히 기기뿐만 아니라 생활 전반이 그냥 그랬던 것 같다. 심지어 나는 군대도, 학부, 대학원 전공도 다 마이너 하다. 태생적 마이너리티인 것 것처럼.
딱히 이유가 있는 건 아니다. 그냥 그러한 것에 꽂혔고, 그게 좋아서다. 그리고 재밌으니까. 그걸 선택함으로써 내가 더 특별해진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다. 그리고 굳이 다른 사람에게 그러한 선택을 하도록 하지도 않는다. 어쨌거나 그러한 유니크함을 즐기는 것은 사실인 것 같다.
대신 그로 인해 지불해야 하는 것들이 있다. 돈뿐만 아니라 시간, 노력 그리고 왜 들어야 하는지 모르는 소리들까지. 게다가 나는 게으른 편이라 중고거래는 거의 하지 않고 (학생 때 돈이 없을 땐 종종 했었지만) 이젠 예전만큼 적극적이지는 않은 것 같다. 궁금하긴 하지만 귀찮음을 무릅쓰기에는 치러야 할 것들이 많기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앞으로도 계속 이럴 것 같기는 하다. 특히나 가끔 나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것들이 나올 때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