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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칼란드리아 Feb 13. 2024

로버트 새폴스키 <행동>

인간의 최선의 행동과 최악의 행동에 관한 모든 것


우리가 폭력을 싫어하지 않는다는 것, 이것이 이 책의 핵심 논점이다. 우리가 싫어하고 겁내는 것은 잘못된 종류의 폭력, 잘못된 맥락의 폭력이다. 옳은 맥락의 폭력은 다르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것을 보려고 적잖은 돈을 내면서까지 경기장에 가고, 아이들에게 맞서 싸우라고 가르치고, 온몸이 삐걱대는 중년의 나이에 주말 농구 경기에서 치사하게 엉덩이를 부딪쳐서 상대를 밀어내고는 자랑스러워한다.


로버트 새폴스키는 신경내분비학자로서 아프리카에서 수십 년 동안 영장류를 연구해 왔다. 그의 경험과 연구, 그리고 학문적인 내용들을 접목하여 여러 책을 저술하였는데 그의 책을 읽어본 것은 처음이다.


이 책은 방대한 분량과 깊이를 보여준다. 그러면서도 유머러스해서 지루하지 않았고, 그가 이끄는 대로 즐겁게 여행을 하고 온 듯하다. 번역도 전반적으로 준수하였지만, 의학용어에 대한 이질감은 어쩔 수가 없다. 이 부분은 아직도 용어에 대한 컨센서스가 이루어지지 못해서 생긴 혼란이기 때문이다.


사실 인간의 본성에 대한 책들을 많이 읽었지만 명확하게 와닿은 것들은 별로 없었다. 인간이 본래부터 선한 마음을 갖고 있는 존재라고 본 책들은 억지스러운 듯해서 오히려 반감이 들었고, 인간의 악한 면 (폭력성 등)을 보여주는 책들은 희망적으로 마무리하고 있지만 결국 그러한 모든 것들이 어떠한 지향점을 향하고 있는 듯했다. 수많은 논거를 들어 그것들의 타당성을 보여주려고 해도 우리가 체감하는 것은 그러한 것들과는 거리가 있기 때문이다.


인간 행동을 살펴볼 때 이런 요인들을 모두 포함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우리가 복잡하고 다면적인 현상을 다룰 때 흔히 쓰는 인지 전략은 그 측면들을 낱낱이 쪼개어 여러 가지 범주로, 즉 여러 가지 설명 단위로 나누는 것이다.
이 책의 목표는 그런 범주적 사고를 피하는 것이다. 사실들을 깔끔하고 깨끗하게 분리된 설명의 구획들에 나눠 넣는 것은 이점이 있다. 예를 들어, 그러면 사실들을 기억하기가 더 쉬워진다. 하지만 그러면 그 사실들에 대해서 생각하는 능력이 망가질 수 있다. 범주 간의 경계가 종종 임의적이기 때문인데, 그렇지만 일단 임의적인 경계라도 세워지고 나면 우리는 임의성은 잊고 그 중요성만 기억한다. 따라서 이 책의 공식적인 지적 목표는 인간의 가장 복잡한 행동들, 무려 암탉이 길을 건너는 것보다 더 복잡한 행동들의 생물학을 생각할 때 범주적 구획화를 피하자는 것이다. 
서로 엄격히 구획된 설명들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대신 한 설명은 그에 앞섰던 여러 설명들의 영향이 낳은 결과물이고, 그 또한 이후에 올 설명들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따라서 어떤 행동이 한 유전자, 한 호르몬, 한 유년기 트라우마로 인해 벌어졌다고 결론짓기는 불가능하다. (...) 한 종류의 설명을 입에 올리는 순간, 사실상 다른 모든 설명들도 끌어들이는 셈이기 때문이다. 구획은 없다. 어떤 행동에 대한 ‘신경생물학적’ 혹은 ‘유전적’ 혹은 ‘발달생물학적’ 설명이라는 말은 수많은 요소들로 이뤄진 이야기를 순전히 설명의 편의를 위하여 당분간 특정 시각에서 접근하겠다는 말의 축약일 따름이다.
자, 우리의 첫 번째 지적 과제는 이처럼 늘 분과를 아울러서 생각하는 것이다. 두 번째 과제는 인간을 유인원, 영장류, 포유류로서 이해하는 것이다. 당연히 그렇죠, 우리도 동물이죠. 그런데 인간이 어느 때 다른 동물과 같고 어느 때 전혀 다른지를 알아내는 것은 수월찮은 과제일 것이다. (...) 그러니 가끔은 인간이 어떻게 다른 종들과 비슷한가를 이해하는 것이 우리의 지적 과제다. 그런데 다른 때는, 인간이 다른 종들과 비슷한 생리학을 갖고서도 그것을 새로운 방식으로 사용한다는 점을 이해하는 것이 우리의 과제다. (...) 마지막으로, 가끔은 오로지 인간만을 고려하는 것이 우리의 인간성을 이해하는 유일한 방법이다. 인간의 행동은 독특하기 때문이다.


이 책은 그런 면에서 다소 영리한 전략을 취하고 있다.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뉘는데, 전반부인 1장~10장까지는 생물학을 기반으로 해서 어떤 행동의 원인을 근원까지 파고든다. 그것을 1초 전~최초 생물의 발생 순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방식은 아주 흥미로웠다.  그러한 시간의 흐름을 생물학의 여러 분야와 대응시켜 보는 방식이다. 


행동 1초 전의 뇌의 자동화된 무의식적 과정, 몇 초 전의 의식적 행동과 관련된 신경계의 작용, 몇 시간에서 며칠 전의 호르몬의 영향, 며칠에서 몇 달 전에는 만성 스트레스와 신경 가소성의 적응 등의 영향을 살펴본다. 더 거슬러 올라가 수년과 수십 년 전에는 문화의 형성과 개인 발달, 수 세기에서 수천 년 전에는 진화의 과정을 살펴볼 수 있다. 아울러 수정 및 임신시기와 청소년기 시기도 곁들여서 보여준다.  


그러한 과정을 통해 우리 내면의 불완전한 구조들, 밝은 면과 어두운 면을 고루 살펴보았다. 행동은 단순히 다양한 호르몬과 신경전달물질 때문이 아니라 그것이 발생하기까지 유전적, 진화적으로 이유가 있었다. 


의학용어와 해부학적 구조, 내분비학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오기 때문에 관련된 공부를 하지 않은 사람들이라면 낯설고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겠다. 그래서 부록에서는 간단하게나마 신경과학과 내분비학에 대한 이야기를 덧붙였다.


그러나 후반부인 11장~17장까지가 저자가 정말로 하고 싶은 말이었을 것이다. 그는 전반부에서 우리의 행동의 원인을 고찰했던 것을 바탕으로 그 사고를 더 확장해 나간다. 전반부가 나와 환경 간의 상호작용을 강조한 것이었다면, 후반부는 내가 속해있는 '우리'에 대한 것을 다룬다. 물론 '우리' 역시 나를 둘러싼 환경에 포함된다. 그러나 그것은 단순한 환경이 아니며 그 가운데서 여러 가지가 형성된다. 그러한 관계에서 사회적인 문제들도 발생한다.


우리의 행동을 신경과학을 기반으로 계층적, 다면적으로 보려는 그의 목표는 원대했다. 이 책은 마치 거대한 풍경화를 보고 있는 듯하면서도 그 안에 있는 것들 하나하나의 세부적인 묘사까지도 너무나 또렷한 작품과 같다. 


그러나 생물학에서 심리학적인 측면으로 넘어가면서부터는 몰입도가 다소 감소했다. 이러한 류의 책을 많이 읽은 탓이기도 하겠지만 여러 책에서 반복적으로 나오는 내용과 주장들, 특히 심리학 실험에 대한 내용은 식상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인간의 행동을 파악하기 위해선 개인별로 보는 것보다는 집단적으로 보는 것이 더 쉽고, 통계적으로도 의미가 있다는 건 사실이다. 그러나 그 결과가 늘 진실을 말해주지는 못한다.


물론 그러한 심리학 실험들이 갖는 의미가 있지만 그 가운데는 비판을 받고 있거나 틀린 것으로 밝혀진 것들도 있다. 새폴스키도 그러한 것을 잘 알고 있는지 그러한 것들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정당하게 반박도 하고 있으며 최대한 객관적으로 보려고 하는 것은 마음에 들었다. 심리학 실험뿐만 아니라 유사과학처럼 여거지는 것들에 대해서도 비판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


사실 그는 데이터가 객관적으로 보여주는 것 이상의 과도한 해석을 삼가려고 했다는 것이 느껴진다. 그러한 절제력도 이 책의 미덕이다. 그러한 절제력을 유머로 해소한 것이 아닐까 싶다. 이러한 책을 저술하려면 최소한 그 정도의 성의는 있어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 독자에 따라서는 전반부보다는 후반부에 더 흥미를 가질 수도 있을 것이다.


결국 그는 '함께 살아가는 법'을 이야기하고 싶었을 것이다. 마치 "We are the world"와 같은 마무리였지만 그가 하려는 이야기가 무엇인지는 알겠다. 또한 형사사법제도와 자유의지에 대한 부분은 다른 관점에서 생각할 거리를 주었다. 더 나아가서는 윤리와도 연결이 될 것이다.


그러나 그가 이렇게 방대한 분량을 통해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우리는 아직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들이 더 많으며 아마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이다. 과학이 더 많은 것들을 밝혀내더라도 그것은 바닷물을 스푼으로 퍼내는 정도일 테니까.


그런 면에서 자연과학보다는 아직은 사회과학이 더 먹혀드는 것일 수도 있으리라. 그는 그러한 사회과학을 좀 더 자연과학의 영역으로 끌어당기려는 모습을 보였다. 이 책 전반에서는 여러 분야를 아우르는 그의 폭넓은 지식 덕분에 그야말로 '통섭적'인 사고를 할 수 있게 된 것 같다.


매우 복잡하고 어려운 주제를 다룬 책이지만 분량과 난이도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다면 매우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책이며, 이러한 분야를 다룬 책 중에서 가장 추천할만한 책이다.


만약 이 책을 단 한 문장으로 요약하라면, ‘얘기가 복잡하다’가 될 것이다. 어떤 요인이 어떤 현상을 직접 일으키는 일은 없는 듯하고, 대신 모든 요인이 다른 무언가를 조절한다. (...) 언제나 의도하지 않은 영향이 있기 마련이라는 법칙에 따라, 하나를 바로잡으면 종종 열 가지가 더 망가진다. 크고 중요한 문제에서 과학은 늘 연구의 51%는 이렇다고 결론 내리는데 49%는 저렇다고 결론 내리는 듯하다. 이야기하자면 끝이 없다. 그렇다 보니 우리가 뭔가를 실제로 고치고 세상을 더 나아지게 만든다는 것은 가망 없는 꿈으로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시도 외에 다른 선택지가 없다. 그리고 이 문장을 읽고 있는 당신은 아마 그 일에 가장 알맞은 사람일 것이다. 달리 말해, 당신은 지상의 행운아 중 한 명이다. 그러니 시도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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