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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칼란드리아 Mar 08. 2024

마틴 리스 <여섯 개의 수>

마틴 리스가 들려주는 현대 우주론의 세계


사이언스 북스에서 "사이언스 마스터스" 시리즈를 계속 출간하고 있다. 자그마한 하드커버 문고판에 책 가운데에 구멍이 나 있어서 속표지가 들여다보이는, 다소 특이한 표지의 책이다.


책의 생김새만 보면 뭔가 신뢰가 가지 않을 수도 있지만, 사실 이 책들은 정말 말 그대로 '사이언스 마스터스'다. 서점에서 직접 봤다면 구매를 주저하게 됐을 수도 있겠다. 


저자인 마틴 리스 (마틴 리스 경이라고도 하는데 작위를 받았는지는 명확하지 않다)는 영국의 우주학자이자 천체물리학자다. 빅뱅, 블랙홀, 중성자별 등에 대한 연구를 주로 하였다. 그러니 우주는 그의 전문 분야이자 가장 아는 분야일 것이고,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이 아는 바를 알려주고 싶었을 것이다. 


그는 특이하게도 우주에 대해서 단지 '여섯 개의 수'로 설명하고자 하였다. 이 수는 우주와 관련된 중요한 상수들이다. 물론 이 상수들만으로 우주를 설명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왜냐하면 상수는 수식이나 방정식 등에서 비로소 의미를 갖기 때문인데, 그러한 식들을 비전문가가 접근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을 수도 있을 듯하다. 하지만 여기에서는 그러한 상수가 정밀하게 조율되어 있기 때문에 우주와 지구와 우리가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 책의 목차는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옮긴이의 말 - 밤하늘 아래에서 우주의 기원과 진화를 생각한다

머리말 - 우주를 지배하는 심오한 힘들

1. 세계를 지배하는 여섯 개의 수

2. 우리의 현주소 1: 행성과 별과 생명

3. N, 우주의 중력

4. 별, 주기율표, 그리고 ε

5. 우리의 현주소 2: 우리 은하 너머

6. 섬세한 우주 팽창 조율기: 암흑 물질과 Ω

7. 우주팽창의 액셀레이터:우주상수 λ

8. 우주는 매끄럽지 않다: Q

9. 우리의 현주소 3: 지평선 너머

10. D: 3차원, 그리고 그 이상

11. 우주는 여러 개일까?


제목대로 여섯 개의 수에 대해 설명하는 챕터가 여섯 개 있고, 사이사이에 우주에 대한 설명이 들어간다. 이러한 내용은 종합적으로 우주에 대한 최신 지견을 소개하고 있지만 사실 이 책이 나온 지도 거진 20년 정도 되었기 때문에 그 이후에 밝혀진 사실들에 대해서는 반영이 안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책에서 소개하는 것은 20세기에 밝혀진 것들이고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이기 때문에 알아두면 향후 우주나 물리학과 관련해서 도움이 될 것이다.




여섯 개의 수에 대해서 간략히 설명하자면 다음과 같다. 


N: 전기력과 중력의 상대적인 세기. N=10^36 (10의 36승)

전기력이 중력보다 N배 강하다는 의미다. N이 이보다 작다면, 즉 중력이 더 크다면 별의 생성이 더 용이해졌을 것이고 현재와 같은 우주도 더 빨리 만들어졌겠지만 그만큼 수명도 짧아졌을 것이고, 지구와 같은 행성에서 진화가 일어나기에는 부족한 시간이었을 것이다. 반대로 N이 더 크다면, 즉 중력이 작아진다면 인류와 같은 복잡한 생명체가 나타나지는 못했을 것이다. (이 부분은 조금 이해가 안 되기는 했다)


ε: 수소가 헬륨으로 핵융합될 때 에너지로 전환되는 질량의 비. ε=0.007

우주에서 가장 가벼우면서도 가장 가벼운 원소는 수소이고, 그다음이 헬륨이다. 별에서는 수소를 원료로 핵융합을 일으켜 헬륨으로 변환시킨다. 우리의 태양도 마찬가지다. 헬륨 이후에도 별의 생애를 통해 (수축하거나 폭발하거나) 더 무거운 원소로 핵융합이 일어나지만 기본적으로는 수소에서 헬륨으로의 핵융합이 일어나야 이후의 과정도 가능해진다. 이때 ε의 값이 중요하다. 이로 인해 현재와 같이 자연계에 존재하는 원소들과 그 비율이 ε이 이보다 작다면 핵융합은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고, 이보다 크다면 우주에 수소가 남아 있지 못했을 것이고, 수소를 기반으로 한 물질들 (물이나 유기물등)은 생성되지 못했을 것이다.


Ω: 임계밀도에 대한 실제밀도의 비. Ω=0.04

우주는 팽창하고 있는데 언제까지 팽창할지는 모른다. 더불어 우주의 밀도(입자의 수)는 증가하고 있고 어느 임계에 이를 때까지는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다가 임계에 이르게 되면 중력이 작용하여 팽창이 멈추고 수축하거나 혹은 붕괴하게 될 것이다. 그러한 임계밀도는 제곱미터 당 원자 다섯 개 정도라고 하는데, 현재의 Ω=0.04라고 한다. 이는 앞으로도 계속 팽창할 것임을 의미한다. 하지만 우주를 관측해 보면 실제밀도가 측정되는 것보다 더 높을 것으로 예상되는데 이는 암흑물질 때문이다. 우리는 암흑물질에 대해서 아무런 정보가 없다. 


λ: 아인슈타인의 우주상수. λ=6.2201 ×10^-40 N·m^-2·kg^-2·s^-1

아인슈타인이 우주의 팽창을 부정하기 위해 일반상대성 이론에 도입한 상수이며 진공의 에너지 밀도를 나타낸다. 그동안은 이 상수에 대해 논란이 있었으며, 아인슈타인의 실패작이라고 불리었으나 이후에 재조명되었다. 또한 1998년에 상수값이 측정되었는데 거의 0에 가까운 값이었지만 0은 아니었다. 이는 반중력이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하며 우주가 가속 팽창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그러한 반중력의 정체는 알려져 있지 않으며, 암흑에너지일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우주는 암흑에너지가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우주의 팽창은 λ값에 의해 조절되는데 만약 λ가 더 컸다면 우주의 팽창이 더 가속되어 은하와 별이 제대로 형성되지 못했을 것이다.


Q: 은하의 구조를 와해시키는 에너지와 전체 정지 질량에너지의 비. Q= 0.00001

이 상수는 언뜻 이해하기가 어렵지만 쉽게 말하면 반응도를 나타내는 상수라고 할 수 있겠다. 별이나 은하들은 중력에 의해 결합되어 있는데 만약 그러한 중력을 능가해서 그 구조를 와해시킬 수 있는 에너지가 가해진다면 그 구조는 흩어져 소멸하게 될 것이다. 이때의 에너지와 그 구조의 전체 정지질량 에너지의 비를 Q로 나타낸다. Q가 현재보다 작게 되면 구조를 와해시키는 에너지가 작아지므로 별이나 은하가 형성되지 못했을 것이고, Q가 이보다 크게 되면 반응이 격렬해져서 별이나 은하가 거대해지다가 대다수가 블랙홀로 되었을 것이다.


D: 우주의 공간 차원. D=3

우리가 사는 세계는 3차원이다. 이는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 외의 다른 차원이 존재할 수는 있지만 우리는 인지할 수 없다. 그러나 초끈이론에서는 10차원(시공간 11차원)을 말하기도 한다. 이는 아직은 이론적일 뿐이지만 그 이상의 공간 차원에 대한 가능성을 제시한다. 하지만 3차원 세계이기에 우리가 존재할 수 있다.




책을 읽을 때는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정리해 보려니까 쉽지 않다. 이러한 내용 속에 현재 우주론의 핵심적인 내용들이 담겨 있지만 그것들의 의미가 압축되어 있기 때문에 이해가 어려울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현재의 우주가 존재할 수 있는 것은 공교롭게도 이 상수들이 현재와 같은 값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각각에서 상수값의 변화에 따른 예상되는 결과를 언급하긴 했지만 예상이긴 해도 그 값들의 조율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알 수 있다. 아주 정밀하게 조율되어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지만, 사실 그것은 결과론적인 이야기다. 어쨌거나 그 값이기 때문에 현재 상태가 된 것이니까. 하지만 더 정확하게 얘기하자면 우리는 현재의 상태를 측정한 것뿐이다. 그리고 아주 먼 미래에는 어떻게 될지 모른다. 그러나 적어도 지구나 태양계가 멸망하기 전에 우주가 수축하거나 우리 은하가 블랙홀이 되는 일 같은 것은 없을 것이다.


그리고 이들 상수에 대한 이야기 이외에 '우리의 현주소'라는 부가적인 챕터를 통해 우주에 대한 이야기를 덧붙이고 있는데 여기에서는 별과 행성이 어떻게 생성되는가에 대한 이야기와 별의 일생, 빅뱅이론, 특수 상대성 이론, 핵물리학에서의 표준모형 등에 대한 소개도 하고 있다. 


마지막 챕터에서는 다중우주에 대한 언급도 하고 있다. 어쩌면 우리의 우주 말고 다른 우주가 있을 수도, 혹은 있었을 수도 있는데 그러한 우주에서는 저 상수들이 다른 값을 가졌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우리 우주와는 다른 운명을 맞이했을 것이다.


저자는 일반 독자들이 이해하기 쉽게 설명한다고는 했지만 사실 난이도가 어느 정도일지 모르겠다. 나는 과학도서들을 읽을 때 '이 정도를 문외한인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데, 물론 관심이 있어서 찾아 읽는 것이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다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개인적인 소감은, 이 책도 일반인들에게는 조금 어려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다. 그 개념을 잡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마틴 리스가 대가이기는 하지만, 대중서를 쓰는 것은  또 별개의 능력인 것 같다. 학술적인 부분이 좀 더 강조되다 보니 전반적으로 건조한 느낌으로 전개된다. 하지만 그게 이 책의 가치나 흥미를 떨어뜨릴 만큼은 아니디. 이 책은 역시나 읽어볼 만하고, 흥미롭다. 우주물리학에 관심이 있다면 추천할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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