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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칼란드리아 Apr 02. 2024

애나 렘키 <도파민네이션>

쾌락 과잉 시대에서 균형 찾기


<도파민네이션>은 최근에 꽤 많은 사람들이 보고 있는 책인 듯하다. 나도 관심을 갖고 있었는데 구독서비스들에도 올라와 있어서 부담 없이 읽을 수 있었다. 분량도 그리 많지 않고 내용도 그리 어렵지는 않았다. 


그런데 일단 제목부터 한 마디 하자. 제목에서 왜 띄어쓰기는 안 한 건가? 나는 한글제목만 보고는 이게 도파민과 관련된 작용을 의미하는 한 단어인 줄 알았다. 하지만 영문 제목은 'Dopamine Nation'이다. 즉, '도파민 국가' 혹은 '도파민 네이션'으로 띄어 써야 맞을 텐데 굳이 한 단어처럼 만들었다.


이 제목은 아마도 국가적으로 도파민 중독 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주로 미국의 얘기가 되겠지만 우리나라나 다른 나라의 상황도 특별히 다르지 않은 듯하다.


여기에서의 도파민은 잘 알려진 대로 중추신경계의 신경전달물질이자 호르몬이고, 주로 쾌감을 느끼도록 한다. 그러한 도파민은 쾌락을 느낄 때도 분비되지만, 고통을 느낄 때도 그것을 이겨내도록 하기 위해 분비되기도 한다. 


저자는 뇌에 저울이 있어서 쾌락이 많아지면 반대급부로 고통이 늘어나고, 고통이 많아지면 반대급부로 쾌락을 증가시킨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자신에게 적당한 통증을 가하면 다시 쾌락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보았다. 그렇다면 그것이 그가 말한 '균형 찾기'인가?


이 책에서는 쾌락과 고통 양쪽 측면을 모두 다루지만 도파민 -> 쾌락 -> 중독이라는 측면에서 보고 있는 듯하다. 그러다 보니 이 책을 읽는 사람들은 중독의 측면에서 해결책을 얻고자 하지 않았을까?


하지만 이 책에 언급된 사례들은 다소 당혹스럽다. 일단 첫 장의 사례부터 당혹스럽다 못해 엽기적이기까지 한데 제목부터 '자위 기계를 만드는 남자'다. 저자가 이것을 제일 처음에 배치한 것은 좀 더 관심을 유도하고 싶어서였겠지만 일반적이지 않고 극단적인 사례라 과연 이렇게 시작하는 것이 맞는가 싶다.


또한 약물 중독이나 마약 중독, 알코올중독과 같은 사례들도 중요하게 다뤄지고 있다. 반면 스마트폰 중독이나 디지털 중독은 언급은 하지만 상대적으로 덜 심각하게 다뤄지는 듯하다. 물론 치료가 필요한 만큼 심각한 중독증상에 비하면 일상적인 가벼운 중독은 덜 심각하게 느껴질 수는 있겠지만 낮은 심각성의 높은 빈도 역시 문제가 있지 않은가.


게다가 저자는 정신의학 및 중독의학 전문의로서 환자들을 내담 한 사례들을 많이 실었지만, 저자 스스로도 그런 중독성의 문제를 경험한 적이 있기에 그러한 사례도 같이 수록했다. 그러나 저자의 이야기는 너무 사변적이라 차라리 하지 않는 편이 더 나았을 것 같다. 전반적으로 책의 신뢰도를 떨어뜨린다.




저자는 '나와 중독을 이해하는 7단계'라는 것을 'DOPAMINE'의 한 글자씩을 이니셜로 하는 방법으로 만들었다. 이는 다음과 같다.


D는 데이터 Data: 너 자신을 알라

O는 목적 Objectives: 핑계 없는 무덤 없다

P는 문제 Problems: 중독의 악영향을 찾아라

A는 절제 Abstinence: 30일의 인내

M은 마음챙김 Mindfulness: 고통 들여다보기

I는 통찰 Insight: 진짜 나와 대면하기

N은 다음 단계 Next Steps: 중독 대상과 새로운 관계 맺기

E는 실험 Experiment: 중독과 친구가 되는 법


그러나 도파민이라는 단어에 억지로 끼워 맞춘 느낌이라 별로 와닿지도 않고 얼마나 실효성이 있는지는 모르겠다. 게다가 여전히 좀 막연하다.


또한 다른 처방이라고 내놓은 것들도 그 실효성이 의문이다. 예를 들어 5장의 '자기 구속'에서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접근법을 제시하고 있다. 이는 앞서 자위기계를 만들었던 환자의 사례를 바탕으로 제시한 것이지만 다른 환자에 대해서도 유사한 접근법을 제시하기도 하였다.


물리적 자기 구속 : 쓰레기통에 버리고 그 쓰레기통마저 버려라

순차적 자기 구속 : 시간제한과 결승선

범주적 자기 구속 : 넓은 그물을 쳐라


유혹이 될 수 있는 것을 모두 버리고, 유혹으로부터 관심을 돌리며 연관시킬 수 있는 작은 것도 허용하지 말 것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그런 것이 의지만으로 가능한 것일까? 이 또한 문제의 심각성에 비해 너무 단순화하고 가볍게 보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도 들게 한다. 


한편으로는 그러한 심각한 중독자들로부터 얻어진 결론을 일반화해서 약한 정도의 중독증을 가진 사람에게도 적용하려는 모습도 보인다. 어느 쪽이 됐든 그러한 방법은 그 적절성에 의문이 든다.


물론 중독 증상이 있을 때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다는 뭐라도 해보는 것이 낫기는 하다. 그것은 의지가 수반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덧붙여, 자신의 상황에 대해 다른 사람에게 솔직하게 이야기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본인의 문제뿐만 아니라 대인관계를 개선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수치심을 느끼되 파괴적 수치심이 아니라 (이는 중독을 강화시킬 수 있음) 친사회적 수치심을 통해 그러한 악순환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고 말한다. 이 과정에서 필요한 것이 솔직함이다. 




이 책에서는 중독을 의학적 측면에서 쉽게 설명하려고 하였으며 특히 중독에서 도파민의 작용을 구체적인 예시와 함께 보여주고자 하였다. 또한 쾌락뿐만 아니라 고통에서도 도파민이 중요한 작용을 한다는 것을 일깨워주었다.


그러나 이 책에 나온 내용들은 객관적인 증거가 있는 것이 아니라 본인의 추측성 주장이거나 사견이 더 많아 보인다. 또한 인용된 내용들 중 상당수는 잘못된 내용들이거나 이제는 더 이상 통용되지 않는 이론들이기도 하다. 통계의 경우에도 잘못되었거나 과장되게 표현된 것들이 보인다. 문제는 그것들이 편파적이기까지 하다는 점이다.


결국 저자는 이 책에서 전문가의 입장에서 도파민과 중독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하였으나 오히려 전문가로서의 능력과 자질을 의심하게 만드는 모습을 보였다. 또한 그가 제시하는 것들은 의학적인 효용성의 입증이라기보다는 그가 억지로 만들어낸 것들에 가까워 보인다. 이는 자기 계발서 등에서 흔히 보이는 형태다.


쾌락과 중독에 대해 경고하고 그 심각성을 일깨워주려는 시도는 좋았다 해도 그 접근방법이나 해결책의 제시는 미흡한 점이 많이 보인다. 독자가 이 책을 통해서 새롭게 얻게 될 유용한 지식은 그다지 많지 않을 듯하다.  단지 저자가 얘기하려는 바가 무엇인지 이해하고, 스스로를 돌아보며 문제가 있는지 경각심을 갖는 것 정도가 의미가 있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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