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기술의 발전이 서사의 형식과 스타일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 것인가?
디지털 기술의 발전이 서사에 어떤 영향을 미치며, 서사를 어떻게 변화시킬 것인가? 하지만, 이는 단순히 서사뿐만 아니라 스토리텔링의 관점에서도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다.
'서사'는 사건을 전개하고 구성하는 방식, 즉 이야기의 골격을 의미한다. 문학을 비롯해 연극, 영화, 다큐멘터리, 심지어 신문이나 뉴스와 같은 논픽션 분야까지 폭넓게 적용되는 개념이다. 반면, '스토리텔링'은 이 서사를 어떻게 더 효과적으로 전달할 것인가에 대한 전략과 기법을 포함한다. 이야기를 구조화하는 것이 '서사'라면, 그것을 실질적으로,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과정이 '스토리텔링'인 것이다.
디지털 기술의 발전은 이러한 스토리텔링 방식에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디지털 스토리텔링'이라는 개념도 일반화되었다. 이는 기존의 이야기 전달 방식 위에 디지털의 상호작용성, 비선형 구조, 멀티모달 표현 등을 덧붙인 새로운 방식으로, 이야기의 형식과 내용 양쪽에서 기존의 한계를 넘어서고 있다.
그러나 기술의 발전 속도에 비해 스토리텔링과 서사의 진화는 상대적으로 더디다. 인간의 표현 방식은 점점 더 다양해지지만, 그것을 내면화하고 진정성 있게 구현하는 데에는 시간이 필요하다. 이는 이른바 '테크니컬 푸시(technical push)' 현상의 한 예라 할 수 있다.
이 간극을 좁히기 위한 노력 중 하나가 인공지능(AI)을 활용한 콘텐츠 창작이다. AI는 누구나 작가, 창작자가 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고, 전문가와 비전문가의 경계를 무너뜨린다. 하지만 여기에는 함정이 있다. 기술이 만든 이야기들은 종종 '껍데기'에 그칠 수 있다는 점이다. 겉으로는 그럴싸해 보이지만, 정작 중요한 알맹이 - 진정성과 감동, 인간의 고유한 시선 - 가 빠져 있는 경우가 많다. 이는 결국 허상이 허상을 재생산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이는 단지 기술의 한계 때문만은 아니다. 기술의 평준화 시대에 콘텐츠, 즉 서사의 차별화 시대가 된 것이다.
기술은 평등하게 주어질 수 있지만, 진짜와 가짜, 깊이 있는 이야기와 얄팍한 이야기의 차이는 여전히 분명하게 드러날 것이다. 누구나 작가가 될 수 있는 시대가 되었지만, 모든 이가 '좋은 이야기'를 만드는 것은 아니다. 결국 이야기의 진정한 힘은 그것을 만드는 사람의 사유와 경험, 내면의 깊이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나는 그 힘을 믿는다.
또한, 기술은 개인의 고유한 서사를 더 큰 시스템 안으로 흡수하려는 경향이 있다. 알고리즘이 개개인의 이야기를 유사한 패턴으로 묶고, 차별화보다 수렴을 추구하게 된다면, 우리는 다양성을 잃고 균일화된 이야기만을 생산해 낼 것이다. 이는 서사의 획일화를 의미하며, 어쩌면 디스토피아적 미래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새로운 시대의 문법에 적응해 나갈 것이다. 디지털 시대의 서사는 더욱 다채로워지고, 새로운 형식과 매체가 등장할 것이다. 그러나 그 변화 속에서도 진정성의 가치는 변하지 않을 것이다. 진짜 이야기만이 줄 수 있는 감동은 결코 가짜로 만들어낼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앞으로 어떤 서사를 만들어갈 것인지, 그것이 우리의 이야기를 어떤 방식으로 이어갈 것인지는 여전히 우리 자신에게 달려 있다.
* 이 글은 <영상서사론> 수업 중 "디지털 기술의 발전이 서사의 형식과 스타일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예상하는가?"라는 주제의 토론 내용으로 작성한 것을 옮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