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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핑커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1

서문, 1장 낯선 나라

by 칼란드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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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제가 활동하는 네이버 e북카페에서 진행했던 '함께읽기' 소모임의 발제 내용을 정리한 것입니다. 저는 이 책을 원서로 읽었기에 번역본과는 용어나 인용된 문장의 차이가 있을 수 있으며, 목차는 번역본의 목차를 참고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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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낯선 나라

선사 시대
호메로스 시대 그리스
히브리 성경
로마 제국과 초기 기독교계
중세 기사들
근대 초기 유럽
유럽과 초기 미국의 명예
20세기


우선 서문부터 1장까지 읽어보겠습니다. 특히 서문은 꼭 읽어 보셨으면 해요. 스티븐 핑커가 이 책을 왜 쓰게 되었는지, 그리고 어떤 방식으로 전개하고 서술할 것인지를 미리 밝혀두었기 때문에 스포가 될 수도 있지만 책을 따라가는데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래는 서문의 내용을 제가 번역하여 인용한 것입니다.


이 책은 인류 역사상 일어난 일 중 가장 중요한 일에 관한 것입니다. 믿거나 말거나 (대부분의 사람들이 믿지 않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오랜 시간 동안 폭력은 줄어들었고, 오늘날 우리는 우리 종의 존재에서 가장 평화로운 시대에 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확실히, 그 감소는 순조롭지 않았습니다. 폭력을 제로로 낮추지 않았고 그 추세가 계속될 것을 보장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전쟁을 치르는 것부터 아이들의 뺨을 때리는 것까지 수천 년에서 수년에 걸친 규모로 볼 수 있는, 명백한 발전입니다.
폭력의 역사적 궤적은 삶을 어떻게 살아가는지 뿐만 아니라 삶이 어떻게 이해되는지에 영향을 미칩니다. 오랜 시간에 걸친 인류의 분투가 우리를 더 좋게 만들었는지 아니면 더 나쁘게 만들었는지에 대한 개념보다 우리의 의미와 목적의식에 더 근본적인 것은 무엇일까요? 특히 개인주의, 세계주의, 이성, 과학의 힘에 의한 가족, 부족, 전통, 종교의 침식에 대해 우리는 어떻게 현대성을 이해할 수 있습니까? 우리가 이 전환의 유산을 어떻게 이해하느냐에 따라 많은 것이 달라지는데, 우리가 우리의 세계를 범죄, 테러, 대량학살, 전쟁의 악몽으로 보느냐 아니면 역사의 기준으로 볼 때 전례 없는 수준의 평화적 공존으로 축복받는 시기로 보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폭력의 경향에 대한 산술적 기호가 긍정적인가 부정적인가의 문제는 인간의 본성에 대한 우리의 개념과도 관련이 있습니다. 생물학에 뿌리를 둔 인간 본성의 이론들은 종종 폭력에 대한 운명론과 연관되어 있고, 마음이 '빈 서판'이라는 이론은 진보와 연관되어 있지만, 제가 보기에 그것은 반대입니다. 우리의 종이 처음 생겨나고 역사의 과정이 시작되었을 때 우리는 어떻게 자연스러운 삶의 상태를 이해할 수 있을까요?


스티븐 핑커는 이 책을 통해 역사적으로 폭력이 감소해 왔음을 보이고자 했습니다. 사실 그것이 이 책의 주제이자 전부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왜 감소했는지까지는 명백하게 밝히지 못하는 것이 한계이기는 하지만 그것이 여러 가지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임을 얘기하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 수많은 근거자료와 통계데이터를 인용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자료들 때문에 전체적인 분량이 많아졌지만 그가 자신의 주장을 내세우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때로 그러한 자료들은 정량적이지 못하고 정성적이기도 하고, 다소 왜곡된 해석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가 강조하는 것은 긴 시간의 흐름에 따라 (시간 척도도 일정하지 않지만) 폭력이 감소해 온 경향성이지, 그 기간 동안 폭력의 강도와 빈도의 오르내림 자체를 논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또한 그 추세가 유지될 것인지,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지 정확히 예측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그러한 추세가 외삽으로 계속 이어질 것이라고 희망적인 결론을 내립니다.




이 책의 제목인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The better angels of our nature)'는 원래 에이브러햄 링컨의 말이라고 합니다. 링컨은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가 우리를 협력과 평화로 나아가게 한다고 하였습니다. 이는 저자가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기도 했을 것입니다.


이 책에서는 여섯 개의 '경향', 다섯 개의 '내적 악마', 네 개의 '더 나은 천'사, 다섯 개의 '역사적 힘'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각각에 어떤 내용들이 있는지는 차차 따라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1장은 '낯선 나라'라는 제목으로 되어 있습니다. 여기에서는 거진 기원전 8천 년경부터 1970년대까지의 폭력성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역사순으로 보기 위해 선사시대부터 고대 그리스, 고대 히브리, 로마제국, 중세, 근대, 현대에 이르는 이야기를 아우르고 있지만 사실 그것들을 같은 범주로 아우르기는 어려웠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폭력은 개인 혹은 집단의 생명을 앗아갈 정도로 심각했고, 어떤 것은 생명에는 지장이 없으나 정서적인 폭력이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가 이야기하고자 했던 것은 우리 생활엔 그만큼 폭력이 만연해 있었고, 문화의 일부였으며, 때로는 그것을 당연하다고 생각하면서 지내왔다는 것입니다.


1장을 보면서 다소 당혹스러움을 느끼셨을 수도 있을 듯해요. 일단 폭력에 대한 묘사가 많고 황당한 내용들도 많이 나오는데요, 이 책의 명성에 대해 기대를 하셨다가 뭔가 두서없이 전개되는 듯해서 그럴 수도 있을 듯합니다 게다가 인류 역사의 거의 대부분의 기간을 1장에 함축적으로 넣는 바람에 왠지 이후의 시대와는 균형이 안 맞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고요. 또한 객관적인 근거도 많이 부족해 보였습니다.


물론 2장 이후에 이에 대한 좀 더 자세한 내용들이 나오기는 합니다. 그러니 1장에서는 인간들에게 폭력성이란 어떤 의미였는지를 파악하는 정도로 생각해 주시면 될 듯합니다. 그래서 아직은 이 책에 대한 섣부른 판단을 보류하시는 것이 좋을 듯해요. 그냥 옛날이야기 읽듯이 가볍게 읽으셔도 좋을 듯합니다.


아무튼 선사시대부터 집단 간 전쟁이 있었고, 대량학살이나 개인에 대한 살상도 빈번했을 것이라는 건 짐작할 수 있습니다. 어떤 법도, 원칙도 없었던 사회였고, 합리적인 사고라는 것이 없었을 테니까요. 그리고 어떤 식으로든 전쟁은 명분이 있었고, 다들 그것을 당연하게 생각했었습니다.


그러나 합리적인 사고가 있다고 해서 인간이 폭력성을 통제할 수 있거나 그러부터 자유로울 수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때론 그 폭력성을 미화하기도 한 듯하니까요. 그것은 특히 명예와 관련하여 부작용을 많이 낳기도 했습니다. 고대에서부터 그랬지만 명예를 위해 결투를 하거나 혹은 죽이는 경우도 많았으니까요.


폭력은 단지 전쟁이나 명백하게 겉으로 드러난 것만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종교에서도 그러한 것이 당연한 듯 포함되어 있었고 그것을 정당화했습니다. 스티븐 핑커는 기독교를 비롯해서 종교에 대해서도 비판적인 견지를 보이고 있는데요, 마치 리처드 도킨스를 보는 것 같기도 합니다. 특히나 성경에 기록된 살상에 대한 것만 해도 120만 명 정도라니 놀랍네요. 하긴, 기독교(가톨릭 및 개신교 포함)의 역사를 보면 기독교가 평화의 종교가 아니라는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사실 평화의 종교라는 것은 존재할 수가 없는 듯해요.


또한 호메로스의 작품이나 셰익스피어의 작품에서도 폭력은 주된 대상이었고, 그림 형제의 동화가 잔혹한 내용을 담고 있다는 건 익히 알려진 사실이기도 하죠. 심지어 아이들 자장가에서도 잔인한 내용들이 많이 담겨 있었는데 그러한 것들이 근현대까지 별다른 거부감 없이 받아들여져 왔던 것이었어요. 또한 여성, 어린이에 대한 차별과 억압도 일상이었죠.


하지만 문화의 일부였고 당연했던 것들도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바뀌기는 했습니다. 이젠 더 이상 사적인 복수나 결투가 (가끔 뉴스에 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일반적이지 않고 표면적으로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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