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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핑커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2

2장 평화화 과정

by 칼란드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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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장 평화화 과정

폭력의 논리
인류 선조들의 폭력
인간 사회의 종류
국가와 비국가 사회에서 폭력의 비율
문명의 불만스러운 점


2장에는 폭력의 논리, 인류 선조들의 폭력, 인간 사회의 종류, 국가와 비국가 사회에서 폭력의 비율, 문명의 불만스러운 점 등 다섯 개의 소제목이 있었습니다.


1장에서는 선사시대부터 현대사회에 오기까지 우리가 얼마나 폭력에 노출되어 있었는가를 말해주었지만 사실은 좀 막연했고, 그냥 서술식으로만 나열되었던 느낌이었습니다. 더불어 좀 잔인한 내용들도 많았죠.


2장에서는 그러한 폭력을 어떻게 통제해 왔고, 평화를 유지하려고 했는가에 대한 논의가 주가 되었습니다. 이는 폭력을 감소시키기 위했던 노력의 초기 단계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2장에서도 다소 폭력적인 내용들이 나오고, 내용도 좀 혼란스럽게 보입니다. 저도 이걸 읽긴 했지만 어떻게 정리를 해야 할지 조금 난감하더라고요. 특히나 이제 본격적으로 여러 가지 그래프를 보여주면서 '이렇게 차이가 난다', '이렇게 감소했다'는 얘기를 하니까 그냥 그런가 보다 하게 되기도 하고요.


여기에 나온 데이터들은 대부분 다른 학자들이 발표했던 것들을 같은 단위로(인구 10만 명 당) 통일시켜 나타낸 것들이고, 전쟁으로 인한 사망자만 포함하거나 혹은 기타 다른 폭력사태로 인해 사망한 것들을 포함하기도 하는 등 내용을 잘 확인해봐야 하는 것들이 좀 뒤섞여 있었어요. 그러한 통계 자료가 많아 좀 지루하게 느껴질 수는 있는데 대략적인 흐름, 그리고 수치에 대한 감 정도만 잡으면 될 것 같아요.


2장의 앞부분에서는 다윈과 홉스 얘기로 시작하네요. 자연 상태에서의 삶에 대해 다소 냉소적인 시각을 보여주기 위한 듯한데요, 그럼에도 그들이 가졌던 통찰력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인간들의 폭력의 기원 역시 그들이 분석했던 결과로부터 출발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얘기합니다. 그리고 그 뒤로는 사실상 홉스에 대한 언급만 되는 듯합니다.




인간의 본성에서 우리는 경쟁(competition), 소심함(diffidence), 영광(glory) 등 세 가지 주요한 싸움의 원인을 발견합니다. 이익을 얻기 위해, 안전을 위해, 명성을 얻기 위해 공격하게 만드는 것이죠. 이것은 2장 전반에서 언급됩니다.


그중에서 경쟁은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에 나왔던 생존기계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생존을 위해 경쟁하고 경쟁자들을 밀어내야 하는 건 어쩌면 숙명이라는 것이죠. (그래도 여기에서는 '유전자가 이기적이다' 따위의 얘기는 안 하네요. 오히려 그런 잘못된 해석의 가능성에 대한 주의를 주었습니다)


소심함은 홉스 시대에는 '부끄러움' 보다는 '두려움'을 의미했고, 이는 경쟁에서 야기된 것이었습니다. 또한 서로 대치되는 상황에서의 '홉스의 함정'은 많이 얘기됐던 건데 토마스 셸링이 처음 언급한 것이었나 봅니다. 홉스의 함정을 피하기 위해선 억제 정책이 필요했습니다.


억제 정책은 '보복하고자 하는 위협의 신뢰성' (저는 이 부분의 해석이 좀 애매했었습니다)이 핵심입니다. 상대방을 공격하고자 할 때 상대방이 억제 정책을 제시할 경우 그것이 타당하다면 공격을 피할 수도 있겠죠. 하지만 이런 억제 정책은 깨지기 쉽고 사소한 이유로도 침략의 빌미가 됩니다. 그러한 이유를 홉스는 '영광 (glory)', 더 일반적으로는 '명예(honor)', 더 정확하게는 '신뢰성(credibility)'이라고 했던 것이었습니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홉스는 무정부상태에서의 인간은 야만적이고 폭력적이므로 이를 통제할 수 있는 '리바이어던'의 필요성을 강조했습니다. 이는 정부라고 볼 수도 있고, 군주라고 볼 수도 있겠죠. 이 리바이어던은 폭력 사용에 대한 독점권을 갖습니다. 이를 통한 폭력의 억제는 공격자, 피해자, 방관자로 이루어진 삼각형으로 설명됩니다.


반면 루소의 이론은 인간의 상태에 대한 희망을 주는 관점과 확신을 갖고 있으며, 정치적으로 올바른 인간 본성의 교리가 되었습니다. 홉스와 루소는 이렇게 서로 대비되는 양상으로 많이 비교되는데요, 둘 중 어느 것이 맞다 틀리다 할 수는 없지만 저는 그래도 루소 쪽에 좀 더 편을 들어주고 싶습니다. 반면 핑커는 루소의 주장에 대해서는 거부하는 듯합니다.




그런데 1장에서 잠깐 언급되기는 했지만 인류의 폭력의 기원은 어디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하는 것일까요? 원시 시대의 폭력은 어떠했을까요?


이를 고찰하기 위해 영장류의 모습을 살펴보았는데 침팬지 얘기와 보노보 얘기는 이전의 다른 책들에서도 봤던 거라 이젠 익숙하기도 하네요. 인간은 침팬지보다는 보노보와 좀 더 가까울 거라고들 생각하지만 핑커는 인간에게는 침팬지와 같은 속성이 있으며(침팬지에 더 가까우며), 보노보도 처한 환경에 따라 공격적이 될 수 있음을 얘기합니다. 그리고 '길들여짐'에 대한 언급도 잠깐 있었고요. 사실 인간이 어디에 더 가까운가 하는 것은 그다지 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어쨌거나 인간은 그들과는 다른 동물이니까요.


원시 인간의 폭력성에 대해서 화석 또는 두개골을 통해 분석하려는 시도도 있었지만 그것은 그다지 유의미한 결과를 주지는 못한 듯합니다.


통제가 없던 시기에 인간은 과연 평화롭고 조화롭게 살아가는 '고귀한 야만인'이었는지, 아니면 침팬지의 예에서 봤듯이 폭력적인 존재였는지는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폭력이 없었다고 할 수는 없겠죠.


20만 년 전에 호모 사피엔스가 출현했고, 1만 년 전에 신석기시대와 농업 혁명이 있었습니다. 보통 1만 년을 기준으로 그 이전과 이후의 시대로 나누는 경우가 많은데요, 그 이전을 수렵-채집 시대, 이후를 문명 시대로 구분하기도 하지만 이는 명확하게 구분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그 사이 어디에선가 모호하게나마 경계는 있었을 것이고, 이 책에서도 편의상 그냥 수렵-채집 시대와 국가(또는 그와 유사한 형태)가 세워진 시기를 구분하고 있습니다.


폭력의 역사를 시간순으로 살펴볼 때, 이는 단순히 시간의 흐름에 따라 폭력의 정도가 달라진(감소한) 것이 아니라 사회적 조직 방식이 달라졌기 때문으로 보는 것이 타당합니다. 또한 그러한 조직 방식에 따라 그 시점은 다르게 나타날 수도 있습니다.


약 5천 년 전에 성립되기 시작했던 국가들은 초기 단계의 리바이어던이라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한 국가, 통제력에 의해 폭력이 억제되었으며, 이를 비문명(원시적)에 대한 통제의 논리로 삼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근대 유럽 국가들의 제국주의가 그러한 논리에 바탕을 두고 있었죠.


핑커는 국가 이전 사회가 종종 매우 폭력적이었다는 것을 암시하는 민족지학적, 고고학적 출처의 증거를 제시합니다. 여러 인류학 연구 및 유골 유적과 같은 다양한 출처의 데이터를 검토하였고, 비국가 사회에서 폭력 사망률이 높다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앞서 말한 대로 인구 10만 명 당 그러한 폭력으로 인해 (전쟁이나 습격, 기타 무력의 사용) 사망하는 숫자를 추산하였는데, 이 부분에서는 다른 책들에서도 반론이 제기되거나 지적된 것들이 있기도 했습니다. 원시시대에는 정확한 통계가 없기 때문에 대체로 간접적인 추정이었기 때문에 정규화하는 과정에서 그 오차가 크게 발생할 수도 있을 듯합니다. 그도 그러한 한계를 알고 있고, 그에 대해서 인정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 부분을 보니까 체감적으로 와닿더라고요. 요즘 우리 사회를 이 수치로 환산하면 어느 정도가 될지 궁금했습니다.


이 숫자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하기 위해, 인류 역사상 가장 안전한 곳인 21세기 전환기 서유럽에서는 매년 10만 명당 1명의 살인율이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1970년대와 1980년대의 최악의 시기에는 10만 명당 10명 정도의 살인율을 보였고, 디트로이트와 같이 악명 높게 폭력적인 도시에서는 10만 명당 45명 정도의 살인율을 보였습니다. 만약 당신이 그 정도의 살인율을 가진 사회에 살고 있다면, 당신은 일상생활의 위험성을 알게 될 것이고, 그 비율이 10만 분의 100으로 올라가면서, 폭력은 당신에게 개인적으로 영향을 미치기 시작할 것입니다: 당신이 백 명의 친척, 친구, 그리고 가까운 지인이 있다고 가정할 때, 10년의 시간 동안 그들 중 한 명은 아마 살해될 겁니다. 만약 이 비율이 10만 명당 1,000명으로 치솟았다면, 당신은 1년에 한 명 정도의 지인을 잃게 될 것이고, 당신 자신이 살해당할 가능성이 더 높을 것입니다.




어쨌든 원시시대에는 집단 간 갈등과 개인 간 폭력으로 인한 사망률이 높은 경우가 흔했습니다. 그러다가 중앙 집권 국가의 설립과 법치주의는 폭력을 크게 감소시켰고, 국가는 적법한 무력 사용을 독점하고 내부 침략을 처벌하며 비국가 사회의 삶을 특징짓는 끊임없는 부족 간의 전쟁을 줄였다고 하였습니다. 현대 사회와 비교해 보더라도 국가 이전 사회의 폭력 비율은 가장 폭력적인 현대 국가의 폭력 비율보다 높다고 주장합니다.


결국 그가 2장에서 '평화화 과정'이라고 했던 것은 국가의 설립, 통치 체제의 등장이라고 볼 수 있겠네요. 핑커는 국가의 설립에 대해 우호적인 입장을 취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이는 루소의 주장이나 <휴먼카인드>에서 봤던 원시공산주의 사회에 대한 견해와 정반대 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핑커는 그러한 '고귀한 야만인'은 선택적이거나 잘못 해석된 증거에 의존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문명이 발달하고 국가가 설립되었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그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들도 많죠. 일단 무력충돌, 즉 전쟁의 규모 자체가 커졌으니까요. 또한 국가의 통제가 어디까지 정당화될 수 있는가 하는 것도 문제입니다. 권력을 가진 자들에 의한 횡포도 그렇습니다. 그러한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되기까지 정말 오랜 시간이 걸렸고요. 물론 아직도 해결이 된 것은 아닙니다.




분량이 많지는 않은 듯한데 내용을 이해하는데 조금 어려움이 있었고 (원문으로도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더라고요), 데이터가 많다 보니 논문을 읽는 기분도 들었습니다. 그런데 사실 이 책 자체가 좀 그렇습니다. 그러니 2장에서의 방식을 염두에 두시고 이후의 내용들도 따라가 보시면 될 듯합니다. 그렇다고 데이터 하나하나에 너무 연연하시기보다는 대략적인 양상만 이해하셔도 될 것 같아요. 물론 자세한 내용을 살펴보셔도 좋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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