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장 문명화 과정
3장 문명화 과정
유럽의 살인율 감소
유럽의 살인율 감소에 대한 설명
폭력과 계층
세계의 폭력
미합중국의 폭력
1960년대의 비문명화
1990년대의 재문명화
2장까지, 우리는 인간은 본래 폭력적인 성향을 갖고 있으며, 국가의 설립과 문명화 과정을 통해 평화의 시대로 들어섰다는 것을 보았습니다. 물론 많은분들께서 지적하셨듯이 그것은 개인간 혹은 소규모의 그룹간 폭력의 감소였고, 국가나 권력에 의한 폭력이 새롭게 나타났기 때문에 폭력의 전이에 가깝다는 생각은 듭니다.
또한 문명화가 진행되었다고 해서 폭력이 일시에 감소하는 것도 아니고 그것도 어떠한 양상이 있었을 거라 생각되죠. 3장은 그러한 문명화 과정에서 폭력이 어떻게 감소하였는지를 보여줍니다. 특히 중세시대부터 근대시대까지 다루고 있어서 그 시기를 중점적으로 살펴보게 될 것 같아요.
그런데 이 책의 서술 방법에 대해서 벌써 지치셨거나 포기하신 분도 계실까요? 사실 이 뒤로도 계속 이런식이라 좀 지루하기는 합니다. 그리고 상당히 디테일하게 들어가는 부분도 있고, 통계자료도 많이 인용하고, 과하다 싶을 정도로 인용이 되는 부분들도 있기는 해요. 그러한 부분들은 적절히 조절하시면서 보시는 게 나을 듯해요.
3장에서는 노버트 엘리아스의 저서 <문명화 과정>에 나왔던 내용들을 바탕으로 얘기합니다. 그래서 3장의 제목도 그와 동일하게 했나 봅니다. 물론 그 책의 내용뿐만 아니라 많은 자료들을 인용하고 있는데요, 특히 살인사건 사망자의 자료를 인용한 것들이 많습니다. 핑커는 그러한 자료들을 인용하고 분석해서 종합적인 결론을 이끌어 내려고 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는 인간의 본성 중에서도 특히 폭력의 역사에 대한 메타분석이라고 볼 수 있을 듯해요.
더불어, 이 책에 나오는 그래프들은 세로축이 로그스케일로 되어 있는 것들이 많습니다. 그렇기에 로그스케일에 익숙하지 않으신 분들께선 보실 때 좀 더 주의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그래프에서 보이는 것보다 실제로는 좀 더 드라마틱한 감소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거든요.
일단 런던의 경우에도 그러한 살인사건 사망자도 감소한 것이 뚜렷하게 보였고, 다른 유럽 국가들에서도 비슷한 양상을 보였습니다. 13세기와 비교하면 20세기에는 거진 1/100 이하로 감소한 것처럼 보이죠. 하지만 유럽 국가들의 경우 모두 비슷하게 감소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이나 이탈리아의 경우에는 그런 감소추세가 더 늦게 보였죠. 그것은 중앙집권화된 국가 체계와도 연관이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살인의 패턴에 있어서도 친족에 대한 살인보다 남성 대 남성 (자신과 관계없는 다른 남성을 살해하는) 살인의 비율이 더 빠르게 감소했습니다. 이는 친족 살인의 경우 사례는 적으나 지속적으로 발생했던 반면 남성 대 남성의 경우에는 사례가 훨씬 많았기에 그렇게 뚜렷한 감소 추세가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는 살인의 목적성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이네요.
그당시의 살인은 앞서도 얘기했듯이 결투에 의한 것이기도 했고, 봉건제 아래 만연했던 폭력의 모습이었기도 합니다. 계급에 의한 폭력, 농민들의 다른 농지에 대한 습격, 그리고 평민/농노들에 대한 폭력 등이 보였습니다. 그림으로 나온 농노들의 삶을 보면 참 힘들어 보입니다.
그런데 예법서 얘기는 좀 어이가 없지 않았나요? 에라스무스가 썼다는 예법서도 그렇고, 지금으로서는 당연한 것들을 마치 부모가 어린 아이에게 알려주듯이 그렇게 하나하나 알려줬어야 했다니, 폭력의 감소에 대한 논의를 떠나 시대의 변화가 많이 느껴집니다. 하긴, 그러한 예절이라는 것도 십수 년 안에도 변할 수 있는 것이니까요.
그래서 폭력의 감소는 그렇게 습득된 금기와 예절 덕분이기도 할 것입니다. 이는 칼의 사용에 대해서도 적용되었고, 폭력에 대해 전반적으로 부정적인 인식을 갖게 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한 것이 문명화 과정의 진정한 의미였겠죠.
또한 리바이어던, 즉 법률이나 처벌 때문만은 아니고 사람들에게도 폭력에 대해 거부하고 억제하는 양상도 생겨난 것 같아요. 엘리아스는 거기에 프로이트의 이론을 적용하려 했지만 사실 그건 좀 억지였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도 우리가 무의식적이든 의식적이든 그러한 폭력의 사용을 억제하려 했다지만 그것이 사실인지, 그리고 왜 그렇게 되었는지는 뒷부분에서 좀 더 논의될 것 같습니다.
봉건제가 무너지고 좀 더 강력한 왕권이 등장하면서 살인에 대해서도 크게 두 가지 변화가 있었네요.
한가지는 살인이 더 이상 단순히 개인간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그런데 살인사건에 대해 그것이 불법적인 행위이긴 하지만 예전에는 피해자들에 대한 민사재판만 있었다는 건 좀 의아했어요. 영국의 헨리 1세 때 와서야 살인을 국가에 대한 범죄로 규정하고, 왕의 권위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여진 것도 패러다임의 변화네요. 그러면서 형사재판을 위해 살인사건에 대한 수사가 좀 더 확실하게 이루어지게 되었습니다.
다른 한 가지는 경제 혁명입니다. 이는 positive sum (이건 뭐라고 번역되었죠?)으로 인해 폭력에 대한 동기가 변화되었고, 특히 사람들 사이에 협동심, 공감, 신뢰, 감사 등의 마음도 더 커졌을 것입니다. 이는 8장에서 다시 자세히 살펴보게 될 것 같아요.
리바이어던과 상업의 결합, 즉 국가와 돈은 상호 작용해서 문명화 과정을 더욱 이끌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로 보여진 것이 수 백년간의 기간동안 보여진 폭력의 감소 추세입니다.
하지만 그런 강력한 통치체계가 미미했더라도 분쟁을 비폭력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방안도 있었습니다. 사람들 사이의 그러한 암묵적 규범은 어느 정도까지는 작용할 수 있지만 결국에는 리바이어던의 역할에 맡겨질 수 밖에 없다고 얘기합니다.
문명화 과정이 폭력의 감소에 대한 설명을 해 주지만 아직 설명되지 못하는 것들도 있습니다. 계층간 차이와 일부 개발도상국가에서 나타나는 양상이 그랬습니다.
계층에서는 수 세기 전에는 부자들, 귀족들도 폭력적이었다는 얘기를 합니다. 특히 14~15세기에는 남성 귀족의 26%가 폭력으로 사망했다니, 귀족의 삶도 순탄치는 않았군요. 하지만 이러한 계층의 폭력의 감소가 더 드라마틱하게 이루어져 유럽의 폭력이 감소하는 양상의 주된 이유가 되기도 했습니다.
오늘날에도 그런 계층 차이를 갖다 대기는 좀 조심스럽기는 하지만, 엘리트와 중산층에서 폭력이 감소한 반면 하층계급에서는 여전히 폭력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이는 사적인 복수 때문인데, 교육과 도덕성, 폭력에 대한 억제성 등이 결핍되어 나타나는 것으로 보이지만 사실은 그들이 법체계에 대해 부정적이거나 적대적이기 때문입니다. 법은 여전히 '가진자'들의 편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개발도상국가들이나 일부 국가들에서도 폭력이 만연한 양상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이는 정치적인 이유, 지형적인 이유, 군벌과 독재, 내전, 마약, 탈문명화 등 내부적인 문제 (혹은 외부적인 요인)에 기인합니다. 비록 전세계적으로도 폭력이 감소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렇게 국소적으로 높은 폭력범죄율이 나타나기에 여전히 이 세계는 폭력적이라고 보일 수도 있을 듯합니다.
그런면에서 보면 핑커가 주장하는 것은 일단 거시적인 양상은 이해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어느 시점에서부터는 그 추세가 계속 지지부진하거나 혹은 들쭉날쭉하는 양상을 보인다는 느낌도 지울 수가 없네요. 이는 어쩔 수 없는 듯해요. 지금 시기는 어떤 계통적 원인이 작용해서라기보다는 (물론 그러한 영향은 분명 있습니다) 무작위성이 더 큰 것 같으니까요. 그것이 더 불안한 이유겠지요. 우리나라에서도 때때로 나타나는 강력 범죄들 때문에 세상이 흉흉하다고 생각하는 것처럼요.
앞서 세계의 폭력이 계속 감소하는 추세이긴 했지만 지역에 따라 차이가 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양상의 다소 특수한 사례로서 미국을 든 것 같네요. 핑커는 캐나다 사람이긴 하지만 미국에서도 활동을 했었고, 미국인 독자들이 많아서 따로 언급한 것 같기도 하고요.
미국의 경우에는 19~20세기에도 살인율이 유럽이나 영국 수준으로 떨어지지도 않았고, 감소하는 양상을 보이지도 않았습니다. 이는 미국이 하나의 국가라기보다는 여러 자치주의 연방이기 때문에 한가지 특성만을 보이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미국의 경우에는 인종과 지역을 구분해서 봐야 할 필요가 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에도 지역간 정서 차이가 있는 것처럼 미국에도 지역간(남북간) 그러한 차이가 있는데요, 이는 남북전쟁 이전부터 깊이 박혀있는 것 같아요.
주에 따라서는 유럽과 비슷한 양상을 보이는 곳들도 있는데 대체로 북부가 좀 더 그렇고요, 남부의 경우에는 좀 더 살인율도 높고 좀 더 폭력적으로 보입니다. 북부는 법을, 남부는 명예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고요. 북부와 남부에 정착한 민족들이 다르기도 하고, 주된 산업도 달랐습니다. 하지만 이는 인종의 차이와는 또 별개로 나타납니다. 동북부 도시들의 경우에도 문명화 과정이 지그재그로 나타났어요. 이는 미국의 역사와도 관련이 있습니다.
미국은 이민자들이 세운 나라이고 정복과 여러 과정을 통해 영토를 확장해 나간 나라입니다. 또한 그 과정에서 폭력적인 것들이 많이 발생했죠. 특히 서부개척 시대의 무법천지에 가까운 상황은 지금은 그저 서부영화의 로망처럼 보여지기도 하지만 실상은 더 끔찍했을 듯합니다.
그런데 미국의 역사나 요즘의 미국을 보면 피에테르 스피에렌버그가 했다는 '미국에 민주주의가 너무 일찍 왔다'는 말이 수긍이 됩니다. 민주주의로 시작한 나라이지만 미국의 민주주의란 무엇일까를 생각하게 되니까요. (그래도 우리나라보다는 나은건가라는 생각도 듭니다만)
그리고 북부인과 남부인의 기질적 특성을 혈액 채취해서 보는 실험은 과연 신빙성과 타당성이 있는 걸까요? 이런 것도 과학적이라고 할 수 있는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변수가 너무 많고, 실험의 정확도를 보장할 수 없으니까요. 편견만 심어줄 것 같은데 아무튼 그런 실험도 하는 것이 의아하긴 했습니다.
인종간 차이에 대해서는 그렇게 구체적으로 나오진 않았지만 인종간 차이는 사실 경제력의 차이, 사회문화적인 차이가 있기 때문에 그 자체로 보기에는 어려울 것 같아요. 또한 백인과 흑인만 있는 것이 아니라 동양계, 인도계, 남미계 등 다양한 인종들이 있는데 그러한 사람들에 의한 영향은 고려되지 않았고요.
핑커는 여러가지 분석을 통해 미국에서의 폭력의 양상을 해석하는 것이 어려운 이유를 보여주었지만 다소 이분법적인 해석이 된 것 같기도 합니다. 통계적으로 분석하기는 어렵고 정성적인 얘기만 했지만, 결국에는 미국은 그냥 사회가 복잡해서 그런가보다 싶어요. ㅋ
그런데 미국뿐만 아니라 유럽에서도 1960년대에는 폭력이 급증한 양상을 보였습니다. 1960년대에 이러한 비문명화가 일어난 원인을 찾아보았는데요, 주로 미국의 경우를 중심으로 얘기하고 있네요. 하지만 다른 나라에서도 비슷한 상황이었을테니 이를 전세계로 확장해도 무방할 듯 합니다.
이는 모든 인종과 성별에 영향을 미쳤지만 흑인 남성의 경우에 가장 극적으로 나타났다고 하네요. 거의 모든 분야에서 나타난 현상이기도 하고요.
이러한 반전이 나타난 이유로 우선 2차 세계대전 이후의 베이비 붐을 들 수 있는데 그때 태어난 아이들이 청소년기, 청년기를 맞이하면서 통계적으로 그렇게 보였다고 하는군요. (범죄 붐이 베이비 붐의 메아리였다고요...) 그게 그렇게 이어질 수 있다는 생각을 하는 것은 좀 억지스러운 듯 보였어요.
엘리아스와 핑커가 얘기한 문명화 과정이 이 시기에 들어서는 제대로 작동하지 못한 이유가 정부의 통제가 없어서라거나 상업과 전문화에 기반한 경제력의 퇴보 때문은 아니었죠. 대신 가치관의 변화와 반문화 때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사회는 계급이 점차 사라지면서 평준화되었고 (물론 암묵적인 계급은 존재한다고 보여지지만요), 오히려 하층계급의 상승 욕구가 커졌습니다. 문화에서도 기존의 틀을 파괴하고 자기표현과 억제에 대한 저항들이 많이 나타났죠.
이러한 결과로 '평화와 사랑'의 시대를 표방했던 1960년대가 오히려 폭력과 방종의 시대가 되었던 것이네요. 미국에서도 히피문화가 성행했고, 월남전 반대 시위도 이어졌습니다. 이는 유럽에서도 비슷한 양상을 보였고, 일본에서도 그랬던 것 같아요. 폭력은 집단적이기보다는 개인적인 수준에서 발생한 것이기는 하지만 그러한 폭력이 미화되고 미덕인 것처럼 포장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다가 1990년대 들어서는 전세계적으로 갑자기 살인율이 감소하기 시작합니다. 살인율뿐만 아니라 범죄율도 감소합니다. 이때는 또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요?
이번에도 인구통계적인 얘기를 먼저 하는데요, 앞서 문제가 되었던 베이비붐 세대가 이젠 중장년층이 되면서 안정화되었습니다. 그런데 1990년대는 2차 베이비붐 (1970년대생들)들이 청소년기, 청년기를 맞이하는 시기이고 그 인구가 적지는 않았을텐데 단순히 그렇게 볼 수 있나 싶네요.
그리고 1973년에 '범죄 등 원하지 않는 임신으로 인한 경우 임신중절을 허용한다'는 결정과 관련하여 이것이 범죄율과 얼마나 관계가 있을까 싶었어요. 오히려 이러한 합법화가 범죄율을 높였을 수도 있었다고 하지만 사실은 무관하다고 생각되거든요. 이 얘기를 좀 길게 하긴 했는데 핑커도 그러한 관계를 보여주고 싶어서라기 보다는 이런 얘기를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자신이 보기에도 그건 아니다라고 하고 싶었던 것 같네요.
핑커는 1990년대의 재문명화가 리바이어던이 더 체계적으로 발전했으며, 1960년대의 반문화가 다시 문명화과정으로 복원되었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리바이어던은 더 스마트해지고 효과적이 되었다고 하지만, 여기에는 함정이 있을 수 있습니다. 많은 범죄자들을 잡고 감옥에 가둔다고 해도 그것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즉 투옥율이 최적화되는 지점 이상에서는 더 이상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죠. (그러나 이는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과는 좀 차이가 있습니다)
또한 잘 알려진 '깨진 유리창 이론'으로 인해 경찰력도 증가되었는데 이러한 것이 범죄율을 실제로 낮추었는가에 대해서는 (앞서 <휴먼카인드>에서도 언급되었지만) 회의적입니다. 부분적인 성과는 있었더라도 결국 그것은 실패했다고 봐야 할테니까요. 이는 범죄의 근본 원인을 찾아 제거하는 것이 아닌 법의 집행만으로 해결하겠다는 근시안적 정책의 실패이기도 합니다.
무엇보다 1990년대에는 규범의 변화로 인해 폭력이 감소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 같네요. 문화도, 사회적인 분위기도, 정책도 새로운 단계의 문명화에 접어들면서 전반적으로 온건하고 평화로운 시대를 맞이하게 되었다는 것이죠. 여기에는 사람들의 자발적인 변화도 있고, 정책적인 부분도 있었습니다. 법과 규칙을 지켜야 한다는 인식의 보편화와 다른 사람, 조직과의 관계에 있어 상호주의와 공정성을 중요하게 생각하게 되기도 했습니다.
이는 엘리어스가 '감정 통제의 통제된 탈통제'라는, 다소 말장난 같은 표현을 한 것과 울터스가 제3의 천성이라고 부르는 것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것을 바탕으로 우리는 현재까지 왔네요.
뭔가 알듯 모를듯 하며 3장까지 마쳤는데요, 아무튼 폭력이 감소해오는 추세에서도 이렇게 반전되는 시기가 있기도 했었고 이는 여러가지 원인에 의한 것이라는 애기를 하려는 것 같네요. 그런데 이러한 시기가 단지 그 때 한 번 뿐이었을까요? 긴 시기로 보면 추세가 보이더라도 단기간 (이렇게 한 세기씩 보면) 그 안에서도 지그재그처럼 보이는 것들도 있었을 것 같아요. 어쩌면 주기성이 있을 수도 있겠고요. 왜냐면 인간의 역사는 계속 돌고 도니까요.
물론 문명화의 모멘텀이 작동하기에 계속 어느 방향으로 끌고 가겠지만 그에 저항하는 저항력도 상존하기에 그 두 가지 힘이 어떻게 작용하느냐에 따라 1960년대와 같은 현상은 앞으로도 나타나지 않을까 싶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