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장 인도주의 혁명
4장 인도주의 혁명
미신적 살해: 인간 제물, 마녀, 피의 비방
미신적 살해: 신성 모독, 이단, 배교에 대한 폭력
잔인하고 괴상한 처벌
사형
노예제
전제 정치와 정치적 폭력
주요국들의 전쟁
어째서 인도주의 혁명인가?
감정 이입과 생명 존중의 성장
문예 공화국과 계몽주의적 인도주의
문명과 계몽주의
피와 흙
4장 제목이 '인도주의 혁명'이라고 되어 있는데 원문으로는 ' The Humanitarian revolution'이네요. '인도주의'라는 것이 조금은 추상적인 의미이기는 하지만 인간의 공영, 혹은 박애를 의미하는 것으로 생각해 볼 수 있겠습니다.
앞서 3장까지는 인류의 역사에서 폭력의 양상이 어떻게 달라져 왔는지 인간의 본성에서 출발하여 평화화 과정과 문명화 과정까지 살펴보았어요. 이것이 시간에 따른 전개였다면 4장에서는 좀 더 시스템적인 측면에서 폭력의 양상을 보고 있습니다.
인간의 폭력성이 동물적인 본능에서 기인한 것일 수도 있지만 사실은 시스템적인 것이 더 컸던 것 같기도 합니다. 이는 인간이 집단을 이루면서부터 더 가속화되고 더 심화되었고요. 여기에 정치와 종교가 개입되면서 대량 살상으로 이어지는 비극도 있었습니다.
4장의 앞부분에서는 '미신적인 살해들'이 여러 가지 사례를 들어가며 구체적으로 나와 있는데요, 그 부분들을 읽기가 고역이었던 분들도 많으셨을 거예요. 이 책의 앞부분에서도 그러한 고문, 살해 내용들이 구체적으로 나왔었는데 그런 내용들이 곳곳에 많이 숨어 있는 듯합니다.
아무튼 그러한 미신들에는 미신 그 자체도 있지만 종교도 그러한 미신에 포함시켰네요. 특히 중세시대 이후 가톨릭 교회가 저지른 것들 (심문, 마녀사냥, 종교전쟁 등) 이 얼마나 많았는지도 새삼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미신과 종교에 의한 폭력들이 어떻게 사라지게 되었는지 그 과정을 집중적으로 살펴보았습니다.
더불어, 국가에 의한 폭력도 어떻게 변화했고 현재의 체계로 오게 되었는지도 살펴보았어요. 아직은 전반부만 읽어서 그 얘기가 다 나오진 않았지만요. 또한 노예제도나 사형제도처럼 과거에는 당연했고 또 정당화되었던 것들도 사람들의 인식이 바뀌게 되면서 점차 금지되는 쪽으로 변화되었습니다. 이것은 인권, 인도주의에 대한 관심이 증가했기 때문이며, 가히 '혁명'이라는 말이 붙을 정도였을 것입니다.
그러한 인권과 인도주의도 어느 날 갑자기 나온 것은 아니고 18세기부터 현재까지 지속적으로 발전해 온 것이고, 집단 또는 국가 차원을 넘어서 전 세계적으로 공통의 것이 되었습니다. 자세한 얘기는 4장의 뒷부분에서 나올 듯해요.
이번 장을 읽으면서 고대 왕국들의 통치와 폭력에 대해 새삼 느꼈어요. 저는 예전 여행에서 신라와 백제의 유적지들을 찾아다녔는데요, 특히 고분군들을 보면서 그 당시 지배계층과 피지배계층, 그리고 생명에 대한 인식 등도 생각했었네요. 이 책에서도 언급됐던 순장문화가 꽤 오랫동안 지속되었고 (신라에서는 마립간 시대에 대형고분 조성과 순장이 절정에 이르렀다고 하죠) 그것이 당연하게 여겨졌던 것을 보며 시스템의 무서움을 느꼈습니다. 무엇인가 잘못된 것이더라도 대다수가 그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면 그렇게 가게 되니까요.
비단 그것뿐만 아니라 여기에서도 나왔던 내용처럼 사람을 제물로 바치거나 희생하는 것들도 흔했죠. 이는 고대인들에게 죽음과 고통이 너무 흔해서 현대인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생명의 가치를 높게 평가하지 못했기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어쨌거나 어떠한 형태로든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이었다는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주술, 미신적 존재 혹은 신을 들먹인 것도 순수한 목적이라기보다는 결국엔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것으로 보이니까요. 또는 맹목적인 신념일 수도 있고요.
마녀사냥에 대한 자세한 얘기는 제가 이전에도 몇 번 언급했던 마빈 해리스의 <문화의 수수께끼>에서도 자세히 언급되어 있는데요, 거기에는 마녀사냥에 대한 흥미로운 내용도 있었습니다. 왜 일반 여성들이 마녀로 몰리게 되었는가 하는 이유가 있었어요.
지금 생각하면 어처구니없는 일이지만 마녀사냥은 수백 년 동안 유럽을 휩쓸었고, 18세기까지도 지속되었다는 것이 놀랍습니다.
어쨌거나 그러한 제도적이고 미신적인 폭력은 지적인 능력의 향상 (집단지성이겠죠), 그리고 인간의 삶과 행복에 대한 가치 평가가 높아지면서 점차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뒤에 인도주의 혁명으로 이어지게 된 것이고요.
계몽주의와 자연과학의 시대에 대한 얘기가 좀 나오고 이후에는 국가의 형성과 국가가 자행하는 폭력에 대한 관점에 대한 이야기도 나옵니다.
관련해서 사형제도에 대한 이야기도 있는데요, 과거에는 단순 절도에 의해서도 사형이 집행되었고 그 방법도 잔인했고 공개적이었지만 지금은 사형이 선고되는 죄목도 제한적이며 사형 방법도 좀 더 고통을 줄이는 쪽으로 바뀌어가고 있으며 그나마도 사형이 실제로 집행되는 경우도 거의 없어졌습니다. 사형제도가 폐지된 국가들도 많고, 우리나라처럼 실질적으로 사형을 집행하지 않는 국가들이 대다수죠. 그럼에도 사회는 이전에 비해서도 잘 돌아가고 있다고 하고요. 다만 핑커는 여전히 미국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인식을 보여주네요. ㅎ
사실 사형제도에 대해서는 국민정서상으로는 필요악에 더 가까운 것 같아요. 대체로 존속돼야 한다고 생각하고, 흉악범들에 대해서는 사형을 시켜야 한다는 의견들이 더 많은 것 같으니까요. 이는 피해자에 대한 형평성 측면에서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어쩌면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여전히 그러한 시스템적인 폭력에 대한 정당성이 자리 잡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노예제도도 인간 역사의 비극 가운데 하나입니다. 이는 인류 역사와 계속 같이 했던 것 같은데요, 고대부터 전쟁포로를 노예로 삼는 건 당연했고, 노예상들이 아프리카인들을 잡아간 것도 끔찍한 일이었죠. 그 과정에서 수천만 명의 아프리카인들이 사망했다고 하고요. 그러한 것은 성경에 의해 정당화되기도 했고, 옹호하는 입장도 많았습니다. 결국 노예제도는 인도주의적인 동기에 의해 폐지되었지만 미국처럼 전쟁의 과정을 겪기도 했습니다. 순탄한 과정은 아니었죠. 그러나 노예제도는 사라졌지만 사람들의 인식 속에서는 여전히 계급에 대한 것이 남아있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것은 단순히 신분에 의한 것이라기보다는 자본주의적인 요소들도 관여하는 것이지만요.
부채 속박(?)의 경우에는 노예제도의 다른 측면으로 제시되었는데요, 빚을 갚지 못하는 경우에도 노예가 되거나 감옥에 가거나 처형되기도 했다죠. 지금은 부채 속박도 법률로 금지되고 채무자의 권리도 보호해 주는 쪽으로 되었지만요.
마지막으로 국가와 국가가 자행하는 폭력의 형태에 대해서도 언급됩니다. 2장에서 국가의 형성으로 인류가 평화의 시대로 접어들었다고 했지만 국가에 의한 또 다른 형태의 폭력이 나타났다고 했는데요, 여기에서는 그것을 좀 더 구체적으로 언급합니다.
사회학자 막스 베버는 '정부는 정당한 폭력 사용에 대한 독점권을 가진 기구'라고 했습니다. 본질적으로 폭력을 실행하도록 설계된 기구라는 것이죠. 그 폭력은 범죄자들과 침략자들에 대한 억제책으로 예비된 것이지만 수천 년 동안 대부분의 국가들은 그러한 억제책을 보이는 대신 폭력의 행사에 열중했습니다. 국가가 가진 그 폭력의 정당성은 왕 또는 소수의 지배계층에 의해 집중되거나 남용되기도 했습니다. 그러한 것이 전제정치죠.
그러한 것들도 계몽사상과 민주주의에 힘입어 국가 조직의 구성도 더 체계적으로 되었으며 권력을 분산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선거를 통해 질서 있고 평화로운 방식으로 권력을 이양하도록 했죠. 그러한 것이 국가에 의한 폭력의 자행을 감소시키고, 더 나아가 사회 전반의 폭력도 감소시키는 역할을 했을 것입니다. 정부뿐만 아니라 민간에까지 권력이 분산되면서 서로 견제가 되도록 했으니까요.
앞서 종교와 국가 등의 권력에 의해 미신적 살해와 제도적 폭력이 성행하게 되었음을 보여주었는데 그러한 폭력의 최고봉은 단연코 전쟁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러한 전쟁은 국지적인 것부터 세계대전에 이르기까지 규모와 양상, 기간이 상이했지만 서로를 죽인다는 점에서는 동일합니다. 특히 국가가 성립된 이후에 그러한 것이 더 빈번해졌고 규모가 커졌죠. 여기에 종교가 개입되는 경우도 많았고요.
물론 이러한 전쟁에 반대하는 평화주의자들의 움직임도 있었고, 퀘이커교도처럼 종교적인 이유로 반대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의 인식이 전쟁보다는 평화를 바라는 쪽으로 가게 된 듯합니다.
이에 칸트는 <영구 평화론>이라는 글을 작성했습니다. 여기에서 그는 항구적 평화를 위한 여섯 개의 예비단계와 세 가지의 원칙을 제시했는데요, 그는 인간의 본성에 대한 강한 믿음이 있었기에 이런 낙관적인 주장을 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것은 또한 민주주의를 전제로 하고 있기도 하죠.
비록 칸트의 이론이 그대로 받아들여져 실현된 것은 아니지만 그를 비롯해서 계몽주의 사상가들이 주장한 내용들을 바탕으로 민주주의가 탄생하고 발전하게 되었고, 칸트의 생각은 이후에 다른 형태로 증명되었습니다. 그는 시대를 앞서간 사상가였던 것이죠. 그리고 영구적인 평화는 아니더라도 긴 평화의 시대를 맞이했다고 합니다. (과연 긴 평화의 시대가 맞을까 싶지만요)
그런데 과거의 그 폭력성은 어떻게 갑자기 사라지게 된 것일까요? 물론 개개인의 내면에는 그러한 폭력성이 남아 있을 수 있지만, 사회적으로 그리고 제도적으로 행해지던 폭력들의 양상을 보면 이전에 여러 도표에서 보였던 대로 계속 감소하거나 혹은 어떤 것들은 완전히 사라지기도 했습니다.
핑커는 그러한 이유로 '인도주의 혁명'을 제시한 것이지만 그럼 무엇이 그 인도주의 혁명을 촉발시켰는가 하는 것이 그의 관심사인 듯합니다.
일단은 문명화 과정이 그러한 이유라고 합니다. 또한 다른 사람에 대한 태도의 변화, 예절 등이 타인에 대한 존중과 배려를 높이는 효과가 있었을 것으로 봅니다. 위생에 대한 것도 작용했을 것이고요.
그리고 삶이 향상되고 삶의 질이 나아지면서 다른 이들에 대한 관용도도 높아졌을 거라고 보기도 합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 핑커는 경제력으로 대표되는 삶의 질이 꼭 그러한 효과를 가져왔을 것이라고 하지는 않습니다. 역사적으로 보거나 혹은 여러 사례로 봤을 때도 맞지 않는 것들이 더 많으니까요.
더욱이 산업혁명 이후의 출판기술의 발달은 사람들로 하여금 지적인 수준을 향상했고, 소설이나 회고록 등을 통해 다른 사람들의 감정을 더 느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공감력도 향상되었습니다. 독서혁명과 문해력 수준의 향상을 통해 인도주의 혁명이 촉발되었고, 핑커는 이것을 가장 중요한 요인으로 보고 있습니다.
또한 과거에도 서신이나 출판을 통해 서로의 생각을 나누고 교류하였는데 이는 현대에 와서는 더 복잡해지고 치밀해졌습니다. 모임의 경우에도 더 거대해지고 복잡해졌지만 과거보다 더 효율적으로 운영됩니다. 직접 모일 필요도 없이요. 그래서 과거처럼 살롱이나 커피하우스에 모여 얘기를 나누기보다는 디지털 문명을 통해 가상의 공간에서 그러한 것들을 나누고 있습니다. 전 세계가 하나로 연결(세계 도시)되어서요. 이로 인해 거대한 공동체를 이루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공동체들에 의해 우리 사회는 방향성을 갖게 되기도 하고요.
그러나 인간의 이성에 대한 믿음, 과학기술의 발달 등이 우리를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고 있는가에 대해선 회의적일 수도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타인에 대해서도 나와 같은 인간이라는 생각을 갖지만, 그러면서도 여전히 차별과 혐오를 갖고 있습니다.
공감의 확대와 포지티브섬에 의한 평화화 노력은 둘 다 인간의 본성으로 자리 잡았지만 우리는 아직 그것들을 바탕으로 사회를 설계하고 유지해 나갈 만한 능력이 부족합니다. 그러면서 핑커는 본인의 저서인 <빈 서판>에 나온 인간의 본성에 대해서 언급하는데요, 어쨌거나 인간은 외부로부터 여러 가지 것들을 받아들여 조합적인 체계를 구성한다고 했습니다. (<빈 서판>에 그러한 내용을 본 것 같긴 한데 잘 기억이 나지는 않습니다...)
문명화와 계몽주의가 폭력이 감소된 이유라는 설명을 계속 하기는 했지만 설득력은 좀 부족해 보입니다. 그러나 이에 대한 내용들은 뒤에서 계속, 좀 더 구체적으로 언급될 것이라는 얘기를 합니다.
그리고 반-개화, 반-계몽운동처럼 그러한 흐름을 거부하는 움직임들도 있었네요. 그들은 세계주의도 거부하며, 폭력이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보지도 않습니다. 그러한 사조는 예술에 영향을 끼쳤고, 정치적 이념이 되기도 했습니다. 이는 폭력이 감소하는 추세에 역행하는 것이라 끔찍한 비극들을 낳기도 했습니다. '피와 흙'으로 대표되는 호전적 민족주의는 민족 간 갈등을 조장했고, 군국주의와 사회주의 역시 갈등을 폭력과 투쟁을 정당화하기도 했습니다.
인도주의 혁명은 역사적인 폭력 감소에 중대한 영향을 미쳤지만 전제주의와 이데올로기의 등장은 인류 역사의 또 다른 페이지들을 써나가게 되었습니다.
여기까지가 4장의 내용이었어요. 그는 인도주의 혁명의 바탕이 된 계몽주의와 문명화, 평화화 노력들에 대해 상당히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는 듯 보이는데요, 이에 대해선 보는 시각에 따라 달라질 수 있을 듯합니다. 사실 저는 인간의 이성과 본성에 대한 믿음이 별로 없는 편이라서 그런지 그렇게 수긍이 되는 편은 아니었습니다. 그래도 무슨 말을 하려는 지는 이해했지만요.
그리고 계몽주의에 대해선 <통섭>에서 부정적으로 얘기했던 것들도 떠오르네요. 그때 무슨 얘기들을 했는지도 다시 살펴봐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