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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핑커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6

6장 새로운 평화

by 칼란드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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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장 새로운 평화

세계 나머지 지역에서 전쟁의 궤적
집단 살해의 궤적
테러리즘의 궤적
천사들도 발 딛기 두려워하는 곳


5장에서 '긴 평화'를 얘기하면서 강대국들 위주의 전쟁궤적을 따라갔었는데 '세계 나머지 지역에서 전쟁의 궤적'은 그와는 따로 분리했습니다. 5장에서의 내용은 강대국들, 특히 유럽 국가들을 위주로 했었는데 기타 국가들의 경우에는 그에 포함시켜 분석하기에는 결이 달라서 따로 빼서 분석한 것 같아요. 그런데 그러한 것들을 다루다 보니 집단 살해와 테러리즘 등등을 포함시켜 하나의 장으로 만들었네요.


앞서서 핑커가 폭력이 감소하고 있다는 것을 계속 역사적 데이터와 증거를 보여주며 주장했는데요, 많은 분들도 느끼고 계시겠지만 실제로는 그에 대한 불신이 더 클 것 같습니다. 지금이 평화의 시대라는 것에 대해서도 비관론이 더 많은 것 같은데, 핑커는 이것도 미디어와 전문가들에 의해 조장되고 있다고 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전 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우울한 소식들이 뉴스에서 계속 보이고 있기 때문일 텐데요, 다른 나라의 그러한 소식을 들으면 우리와 관련이 없는 나라의 소식임에도 (사실 전 세계가 연결되어 있으니 관련이 없을 수는 없죠) 불안하기도 합니다. 더구나 우리나라는 아직 휴전 중이고 종종 북한의 도발 소식이 들려오니 더 예민할 수밖에 없겠죠.


그래서 6장에서 핑커는 그러한 비관론을 야기하는 세 가지 종류의 조직적 폭력에 대해서 설명하고자 합니다. 그 세 가지 폭력은 국제적 분쟁 (주로 국지적인), 집단 살해, 테러리즘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가 '긴 평화'의 시기라고는 하지만 폭력은 감소하는 양상을 보일지언정 여전히 잔존하고 있기에 '새로운 평화'라는 개념이 제시됩니다. 그러나 이 새로운 평화가 어느 정도의 폭력을 허용한다는 의미는 아닐 것이고 평화의 시대에서 그러한 폭력의 양상을 배제해서 보겠다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여기에서 집단 폭력은 전쟁(또는 무력 충돌), 공동체 간 분쟁(비국가 간), 일방적 폭력으로 구분하여 보았습니다. 전쟁은 우리가 알고 있는 말 그대로의 국가 간 전쟁이라고 볼 수 있지만 국가간이 아닌 국가 내에서 정부와 반란군 혹은 분리주의자들과의 전쟁, 즉 내전도 포함됩니다.


이러한 현대의 분쟁은 내전, 민병대, 게릴라, 준군사조직이 개입된 분쟁, 테러리즘을 포함한 것들이며 군인보다 민간인의 사상자수가 훨씬 더 많아지게 되었습니다. 특히나 전쟁 중 무차별적 대량살상무기 사용이나 집단 살해가 많아지면서 더 그렇게 된 듯합니다. 그리고 전쟁에서 간접적인 원인으로 인한 사망자수도 많은데 그러한 것들을 어떻게 포함시키느냐에 따라 통계치가 많이 달라지게 되죠. 좀 더 보수적으로 평가할 수도 있을 것이고 아니면 좀 더 느슨하게 평가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핑커가 인용하는 자료들은 아무래도 그의 주장에 맞는 것들을 위주로 했겠지만 그러한 데이터가 어떻게 취합되었고 또 해석되었는가에 따라 반박도 많이 받는 듯합니다. 실제로 핑커의 주장에 대해서 반박하는 것들의 상당수는 인용된 데이터들에 대한 것이기도 하니까요. 핑커는 이를 예상했는지 각 데이터를 소개할 때 그 데이터가 어떻게 취합되었고 어떤 한계가 있는지도 같이 언급하고 있지만 사실 그런 것들까지 다 감안해서 따라가기는 어렵기에 대체로는 결론만 보게 되는 듯합니다. 그런데 그 결론도 대체로는 정해져 있는 것 같죠. ㅋ


또한 기간을 설정하는 것도 데이터에 따라 기준이 달라지기 때문에 어떤 경우에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로 보는가 하면 1950년대 이후로 보기도 하고 혹은 냉전이 종식된 1980년대 이후의 데이터를 보기도 합니다. 이 부분도 주의해서 봐야 할 것 같아요


이어서 그는 그러한 분쟁과 관련해서 빈곤, 자원, 거버넌스가 어떤 관련이 있는지 살펴보았는데요, 우선 빈곤은 전쟁과 관련이 있는 듯 보이지만 비선형적인 관계를 보입니다. 또한 자원이 부와 평화로 이어지기보다는 분쟁을 더 격화시켰습니다. 식민지가 된 원인이기도 했고요. 거버넌스의 경우에는 전쟁의 발발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기도 했습니다. 이는 대체로 정치가 불안정하거나 혹은 독재, 비정상적 운영 등일 경우 전쟁이나 내전이 발생하기도 했죠. 거기에 강대국들이 개입함으로써 규모도, 피해도 더 커졌습니다. 중국, 한국, 베트남의 사례도 제시되었네요.




핑커는 냉전 이후 분쟁이 줄어든 이유로 칸트의 원리를 다시 제시합니다. 이는 민주주의, 개방경제, 국제기구였죠. 특히 개방경제와 평화유지군이 그러한 분쟁을 줄이는데 긍정적인 영향이 있음을 강조합니다. 하지만 내전 혹은 비국가 분쟁은 그렇게 감소한 것처럼 보이지는 않습니다.


이후 집단 살해로 넘어가는데요, 집단 살해 또는 대량 학살 얘기가 많이 나오고 있어서 상당히 거부감을 느끼셨을 것 같기도 합니다. 핑커는 그러한 집단 살해의 원인, 패턴, 역사적 궤적을 분석하고 있습니다.


집단 살해의 원인으로 근본적으로는 자아의 확장된 범위인 '우리'와 그 밖의 다른 무리들로 구분되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이는 <휴먼카인드>나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에서도 나온 내용이었죠. 그런데 그러한 구분이 혐오로 이어지고, 결국 비인간화와 폭력으로 이어집니다. 그런데 그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끔찍한 결과를 가져왔죠.


또한 편의상의 문제로 대량 학살을 하기도 했습니다. 이는 영토나 자원을 차지하기 위해 침략자들에 의해 자행된 것들이었는데요, 인류의 역사를 보면 그러한 것들로 점철된 시기가 있었고 지금도 그러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과거에는 그러한 것들이 잘못되었다고 느끼거나 죄책감을 갖지 않았다고 하니 인간이 얼마나 잔악한가 싶어요. 그러한 명목에는 종교나 이데올로기를 갖다 붙이기도 했고요.


이 책에 제시된 수많은 사례들은 우리가 잘 아는 것도 있지만 잘 알지 못했던 것들도 많은 것이 놀라웠어요. 그 수치 또한 놀라웠고요. 전쟁보다도 훨씬 많은 숫자였다는 것도요. 그런데 희생자들이 도덕적 혐오의 대상이었는지, 도덕적 분노의 대상이었는지에 대한 구분은 왜 필요했을까요? 전자를 비인간화의 결과, 후자를 악마화의 결과라고 했지만 그게 그거인 것 같아서요.


마오쩌둥에 대한 얘기도 계속 나왔었는데요, 프랑크 디쾨터가 쓴 '인민 3부작'에서는 마오쩌둥의 실정에 대해서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중국이 공산화되어 죽의 장막을 치고, 대약진시대 (또는 대기근시대, 핑커의 책에서는 Great Leap Forward라고 했는데 그게 뭔지 몰라서 찾아봤네요), 문화 대혁명 시기를 지나는 동안 수많은 사람들을 숙청하고 학살했고 또 굶주림으로 죽어갔었죠. 그래서 그 책의 내용들이 떠올랐습니다.


더욱이 유토피아 이데올로기는 공리주의를 내세웠다지만 소수를 위해 불필요한, 혹은 그에 반대하는 다수를 처리하게 됐고, 그러한 이데올로기가 제시하는 목적에 따라 계획적으로 처리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분쟁과 집단 살해도 20세기 중반 이후 감소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만 피크를 친 것이 워낙 커서 그러한 감소추세가 명확하게 보이진 않습니다. 그러한 피크를 제외하고 그 이후부터 본다면 들쭉날쭉할 것 같기도 합니다. 국제적으로 그러한 집단 살해를 금지하는 조약이 생겨났지만 실효성은 없어 보입니다. 최근까지도, 아니 지금도 그러한 것들이 자행되고 있으니까요. 어쨌든 그러한 집단 살해가 감소한 것도 국가 간 전쟁 혹은 내전이 감소한 것과 같은 요인들로 인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집단 살해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은 곳은 다음과 같은 여섯 가지의 위험 요인을 갖고 있다고 합니다.


1. 대량학살 전력

2. 정치적 불안정성

3. 소수민족 출신의 지배계층

4. 민주주의 저하

5. 경제적 개방성 저하

6. 배타적 이데올로기


특히 현재도 배타적 이데올로기가 그러한 갈등과 폭력을 부추기고 있는데 여기에는 마르크스주의, 이슬람주의, 반공주의, 민족주의 등이 포함됩니다. 그러나 그러한 이데올로기가 무조건 비판받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영향력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몇몇 사람들에 의해 재앙적인 일들이 있었는데 이는 히틀러만 그러한 집단 살해를 한 것이 아니라 언제든, 어디서든 그러한 일이 발생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먼저 '테러리즘의 궤적'에 대해서 얘기를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테러리즘은 비국가 행위자가 정치적, 종교적, 사회적 목적을 위해 비전투원을 표적으로 삼아 계획적으로 행하는 폭력으로 정의됩니다. 이는 공포를 이용해 불균형적인 정서적 피해를 입히는 비대칭 전쟁의 전술이에요. 트베르스키와 카네만과 같은 심리학자들은 위험 인식이 예측 불가능성과 재앙적 잠재력을 통해 이를 극대화하는 테러리즘과 같은 요인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는 사실을 밝혀냈습니다.


테러리즘은 전쟁이나 대량 학살에 비해 사망자 수는 적지만, 특히 9/11 테러 이후 공포와 피해의 비율이 왜곡되어 있습니다. 약 3,000명의 사망자를 낸 9/11 테러는 전형적인 테러리즘 패턴에서 벗어난 이례적인 사건으로, 공포가 고조되고 전쟁으로 이어져 미국과 영국의 사망자 수가 크게 증가했습니다.


여기에서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혹은 들어본 적이 있는 단체나 조직들이 많이 나왔어요. 하지만 역사적 데이터에 따르면 대부분의 테러리스트 단체는 실패하고 결국 모두 해체됩니다. 맥스 아브람스의 연구에 따르면 소수의 테러리스트만이 목표를 달성하며, 이들은 주로 민간인보다는 군대를 표적으로 삼는 경우가 많습니다.


테러리스트 그룹은 진전을 이루기 위해 고군분투하면서 종종 전술을 확대하여 더 유명한 희생자를 노리는데, 이는 대중의 반발과 정부의 단속 강화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이러한 테러리스트 그룹은 일반적으로 5~9년 동안 지속되며,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전술과 초점이 진화하지만 결국에는 몰락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또한 이슬람권에서 여론의 변화로 극단주의 행동에 대한 지지가 감소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는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에 대한 얘기도 나왔고 자살테러에 대한 얘기도 자세하게 나와 있었는데요, 자신의 목숨보다도 그런 극단적인 행동을 더 중요하게 여길 수 있는 이유에 대해서 얘기합니다. 결국엔 이타주의인데요, 거기에 진화생물학의 이론도 갖다 붙였네요. 특히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의 내용을 인용한 것 같은 (직접적인 얘기는 없었지만) 부분도 있어서 그걸 그렇게도 해석하는구나 싶었네요.


그런데 <휴먼카인드>에서는 그러한 테러리스트들은 '동료를 위해서 행한다'라고 했죠. 이것도 크게 보면 비슷한 의미가 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보는 관점의 차이가 아닐까 싶습니다.


테러리즘이 증가하고 있다는 인식에도 불구하고, 데이터에 따르면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과 같은 특정 지역 분쟁을 제외하면 테러리즘 사건은 감소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사실 그래프에서는 들쭉날쭉한 것으로 보이기는 했지만 이러한 패턴은 앞서 내전이나 집단 살해와 유사하게 보이네요. 특히 서유럽에서 테러리즘의 궤적은 증가와 감소의 패턴을 보이며, 이는 테러리즘의 위협에 대한 대중의 인식과는 다른 양상입니다. 또한 민간인에 대한 공격에 대한 여론의 변화와 지지 감소는 테러 단체의 쇠퇴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6장의 마지막은 '천사들도 발 딛기 두려워하는 곳'이라길래 무슨 내용이 있는지 궁금하셨을 텐데요, 사실 소제목에 비해 내용은 특별한 것이 없었고 오히려 기후위기는 이 책의 주제와 무슨 상관이 있나 싶었죠.


지금까지 6장에서는 냉전 종식 이후 전쟁, 대량학살, 테러리즘의 감소를 특징으로 하는 '새로운 평화'에 대해 설명하였습니다. 이러한 감소는 '오랜 평화'처럼 오래 지속되거나 '문명화 과정'이나 '인도주의 혁명'처럼 전면적이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평화가 계속 지속될까요? 핑커도 그건 모른다고 합니다. 그는 이 책의 목적이 과거와 현재의 사실을 설명하는 것이지 반드시 미래의 사건을 예측하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밝힙니다. 과학적 예측의 개념은 특히 대규모 폭력과 같은 단일 사건과 관련해서는 불확실할 수밖에 없으니까요. 결국 이러한 폭력 감소의 지속 가능성에 대한 불확실성을 인정하는 것이죠. 과거의 데이터를 기반으로 해서 현재를 이야기할 수는 있지만 그것을 외삽해서 미래를 예측할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사실 우리는 미래에 대한 예측을 더 궁금해하는데 말이죠.


폭력의 감소는 특정한 정치적, 경제적, 이데올로기적 조건에 기인하지만 그러한 것도 영구적인 것이 아니며 역전될 수 있음을 강조합니다. 특히 폭력의 맥락에서 권력-법률 분포의 특성을 반영하여 소수의 개인이 심각한 피해를 입힐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소제목에서는 주로 이슬람문화권에 대한 이야기를 주로 합니다. 그렇다면 '천사들도 발 딛기 두려워하는 곳'이 그곳일까요? 본문에서는 명확하게 나와있지는 않았는데 제가 놓친 것일지도 모르겠네요.


최근의, 아니 꽤 오래전부터 발생한 테러는 대부분 무슬림들에 의해 자행된 것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과연 이슬람 세계에서 폭력성이 더 높은 지를 통계적 데이터에 근거해서 보았지만 그러한 주장을 뒷받침하지는 못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이슬람 국가는 국민들의 정치적 권리가 제한되어 있고 종교와 국가 권력이 혼합되어 있는 경우가 많으며, 종교적으로, 또 관습적으로 상당히 엄격한 모습을 보입니다.


현재 여러 이슬람 국가의 대다수는 샤리아 법을 선호합니다. 찾아보니 이는 <코란>과 무하마드의 말에 근거해서 법을 집행하는 것이었네요. 정치를 그런 경전과 이슬람교 창시자의 말에 근거해서 한다니 전근대적인 것 같지만 그들에겐 그것이 절대적인 믿음이니 그것이 옳다고 믿었을 것입니다. 그러면서 무력을 사용하는 계파도 생겨났겠죠. 그러나 폭력을 지지하는 무슬림 단체는 크게 감소하고 있다고는 합니다.


과거 찬란하고 고도의 이슬람 문명을 보여주었던 그들이 왜 그렇게 되었을까요? 역사학자 버나드 루이스는 한때 그리스도교보다 더 세련되었던 이슬람 문명이 왜 이성 시대나 계몽주의 시대와 같은 진보적 운동을 경험하지 못했는지에 대해 설명합니다. 결국 정치와 종교가 분리되지 못한 것이 그 원인입니다. 결국 새뮤얼 헌팅턴의 <문명의 충돌>에서 얘기한 것처럼 서구 문화와 충돌하였고 그것이 지금까지 이어졌네요. 여담으로, <문명의 충돌>은 읽어볼 만한 책이긴 한데 국제학에서는 그다지 인정을 못 받나 봅니다.


또한 그러한 이슬람 국가들, 무슬림들이 앞으로는 어떻게 될 것인가를 얘기하지만 결론적으로는 큰 변화는 없을 것 같네요. 그리고 이슬람 국가들에 의한 전쟁은 일어나지 않을 것 같다고 하고요. 물론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은 현재 진행 중이지만 이건 그 배경이 좀 다른 것이니 논외로 해야겠지만요.




그러다가 핑커는 갑자기 세계 평화에 대한 잠재적 위협으로 핵 테러, 이란의 정권, 기후 변화를 꼽습니다.


대량살상무기를 이용한 테러는 완전히 다른 차원의 문제입니다. 수백만 명을 죽일 수 있는 공격은 이론적으로 가능할 뿐만 아니라 테러 통계와도 일치합니다. 테러리스트의 공격은 힘의 법칙 분포를 따르는데, 이는 극단적인 사건이 발생할 가능성은 낮지만 천문학적인 가능성은 없는 메커니즘에 의해 발생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핑커는 핵 테러의 발생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얘기하면서 사람들이 종종 그러한 확률을 과대평가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다섯 가지의 시나리오가 향후 5년 내에 발생할 가능성이 얼마나 되는지 조사한 결과를 보여주었죠.


참고로 핵무기에는 전략적 핵무기와 전술적 핵무기가 있습니다. 전략적 핵무기는 전략적 요충지 혹은 중요한 시설을 파괴할 목적으로 사용되며 주로 장거리미사일, 대형폭탄(일본에 투하된 것과 같은) 등 장거리용으로 이용되고, 전술적 핵무기는 전투에서 사용할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인데 주로 소형(그래도 폭발 시 임계질량은 넘는)입니다. 포탄이나 소형폭탄 혹은 소형미사일 등에 사용될 수 있어요. 그런데 핵 테러에 쓰일 가능성이 높은 것은 전술적 핵무기입니다. 전술적 핵무기는 아직 실전에서 사용된 적은 없습니다. 다만 관리를 잘못하면 테러리스트들에게 탈취될 가능성이 있고 그런 것들이 영화에서도 종종 등장하기도 했죠.


그리고 농축우라늄을 이용한 방식과 플루토늄을 이용한 방식이 주로 사용되는데요, 전자는 폭탄의 구조는 상대적으로 단순하지만 우라늄을 농축하기 위해 대규모 농축시설이 필요하고 수율도 상당히 낮아 임계질량을 얻기까지 오래 걸리는 단점이 있습니다. 후자는 핵원료를 상대적으로 더 쉽게 얻을 수는 있지만 (재처리 시설이 필요하지만요) 플루토늄의 특성상 폭탄의 구조는 좀 더 복잡해집니다. 각각의 장단점이 있어서 핵무기를 개발하려는 국가들은 두 가지 방식을 모두 시도합니다. 미국이 맨해튼 프로젝트로 핵무기를 개발할 때도 그랬었고요. (영화 <오펜하이머>를 보신 분들이시라면, 어항에 구슬 하나씩 넣는 장면을 기억하실 거예요)


또한 이란이 핵보유국이 될 가능성을 인정하면서도 그렇게 될 가능성이 또 그리 높지 않게 보는 것 같기도 합니다. 이란은 상당히 오랫동안 경제적인 제재를 받아 어려운 시기를 보냈던 것 같습니다. 현재 이란이 핵보유국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미국 등 강대국들은 이란의 그러한 시도를 저지한 것처럼 보입니다.


마지막으로 기후 변화가 세계 안보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하며, 기후 변화가 직접적으로 대규모 분쟁으로 이어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합니다. 기후 변화 얘기는 다소 생뚱맞아 보였는데 그것을 둘러싼 국가 간 갈등이 결국 폭력적인 양상으로 이어지지 않을까라는 우려에서 고찰해 본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결론적으로 그는 미래에도 분쟁과 테러 공격은 피할 수 없지만 전반적인 폭력 감소 추세는 지속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폭력적인 재앙은 여전히 존재하고 있고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여기까지 6장의 내용을 보았는데요, 6장까지 오는 동안 폭력의 역사적인 추세의 변화도 보았고, 대규모의 전쟁들 이후에 긴 평화, 새로운 평화가 어떻게 찾아오게 됐는지도 보았습니다. 상당히 방대한 내용이었고, 핑커가 많은 데이터를 자신의 주장에 대한 근거로 내세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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