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세'는 일본어 'くせ' 혹은 '癖'에서 유래한 단어로, '버릇'이나 '습관'을 의미한다. 우리나라에서는 특히 '고치기 어려운 나쁜 습관'이나, '무의식적으로 반복되는 나쁜 습관'에 쓰이는 경우가 많아 부정적인 뉘앙스를 내포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주로 스포츠에서 많이 쓰지만, 음악이나 예술 분야에서 쓰기도 한다.
한편, 음악이나 공연 예술에서는 '쪼'라는 표현도 있다. 이것 또한 '고치기 어려운 습관'을 의미하지만, '쿠세'처럼 부정적인 뉘앙스만 있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개성이나 특징을 표현할 때 쓰기도 한다. 그래도 부정적인 느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글에도 '쿠세'나 '쪼'가 있을까? 물론 그렇다고 생각한다.
어떤 작가는 글을 쓸 때 문단을 특정한 접속사로 시작하기도 한다. 어떤 작가는 일상적으로 잘 쓰지 않는 단어를 즐겨 사용한다. 어떤 작가는 비슷한 문장을 반복한다. 작가의 여러 작품의 구조가 유사한 경우도 많다. 문체, 대화체 등에서도 작가의 쪼가 드러난다. 이러한 것들은 좋게 말해 작가의 '스타일' 혹은 '개성'이라고 하지만, 득이 될 수도, 독이 될 수도 있다.
매번 비슷한 느낌이라 자기 복제 같기도 하고, 마치 그러한 것들이 작가의 정신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듯한 생각마저 들기도 한다. 때로는 신선한 느낌을 주지만, 그 작가의 여러 작품을 읽다 보면 금세 식상함을 느끼게 되기도 한다.
나는 문학 작품을 포함해서 글을 읽을 때, 어느 한 가지가 거슬리기 시작하면 글 전체에 대한 몰입도가 떨어지고, 확 깨지기도 한다. 특히, 작가의 쿠세가 드러날 때 그렇다. 번역본의 경우에는 번역자에 따라 그런 느낌을 받기도 하는데, 번역자의 쿠세가 원작의 가치마저 훼손하는 것이다.
내 글에도 쪼는 잘 모르겠지만, 쿠세는 있다. 어느덧 내게 달라붙은 딱지 같은 것들. 그래서 유연함과 담백함을 떨어뜨리는 것들.
글을 쓸 때마다 습관적으로 쓰는 표현이 있고, 불필요하게 들어가는 군더더기와 품사, 문장 성분들이 있다. 글을 깔끔하고 간결하게 쓰고 싶지만, 자꾸만 불순물이 섞인다. 뿐만 아니라 내가 써 놓은 글도 읽다 보면 무슨 말을 하고자 했는지 알 수 없게 되는 경우도 많다. 해야 하는 이야기와 하고 싶은 이야기가 뒤섞여서 그렇다. 그러한 나의 쿠세는 단어, 문장, 문단, 그리고 글 전체로까지 확장된다. 글을 쓸 때의 어떤 강박감이 글 전체를 누르고 있다는 생각도 든다.
글을 쓸 때 그러한 문제점을 인식하고 최대한 피하고자 하나 여유를 두고,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어느새 글이 흐트러진다.
이 또한 계속 연습을 함으로써 고쳐 나가야 하는데, 그렇게 고칠 수 있다면 '쿠세'라고 하지도 않았겠지. 그래도 글을 쓸 때마다 의식하고, 반복해서 읽으며 수정하고, 고쳐 나가야겠다. 설사, 그러한 과정에서 무미건조하고, 개성이 없는 글이 되더라도 거기서부터 다시 시작하면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