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 두 달여 동안 고대 그리스와 로마, 그리고 근현대의 철학서들을 읽었다.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 에피쿠로스 등 벼르던 완역본 원전들도 독파했다. 조만간 러셀의 <서양철학사>도 읽을 예정이다. 머릿속에 산발적으로 흩어진 개념들을 한 번쯤 정리할 필요를 느껴서다.
왜 철학인가. 사춘기 시절부터 철학에 관심이 있었고, 삶과 죽음에 대한 고민은 늘 나를 따라다녔다. 그래서 중고등학생 때도 <데미안>이나 <싯다르타>, <파우스트>, <시지프스 신화> 같이 철학적 사유가 짙은 책들을 즐겨 읽곤 했다.
여러 종교에 관심을 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불교를 기반으로 기독교(개신교와 천주교), 도교까지 접했으나 지금은 무교로 남았다. 결국 '종교가 나를 구원하지 못한다'는 결론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나는 종교를 부정하기보다 각 종교 나름의 의미와 목적을 인정하는 편이며, 굳이 따지자면 무신론보다는 범신론에 가깝다. 신이 있으면 있는 것이고, 없으면 없는 것일 뿐.
10대와 20대의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이 사회를 어떻게 바꿀 것인가'에 주력했다면, 30대 후반부터는 '실존의 문제를 어떻게 바라보고 극복할 것인가'가 주된 관심사가 되었다. 그리고 40대 후반이 된 지금은 '이 세상은 실재하는가?'라는 보다 근본적인 문제에 천착하게 되었다. 어쩌면 이 질문이 '인간은 어떤 존재인가'를 포함한 모든 철학적 난제를 함축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과학자들이 연구에 심취할수록, 혹은 나이가 들수록 종교나 철학에 빠지게 되는 이유를 이제는 알 것 같다.
애당초 '형이상학(metaphysics)'이라는 말도 원래는 '자연학(physics) 책 뒤에 있는(meta) 책'이라는 뜻이었으나, 점차 자연과학으로 설명 불가능한 영역을 다루는 학문을 의미하게 되었다고 한다. 동양에서도 주역의 "형이상자위지도(形而上者謂之道), 형이하자위지기(形而下者謂之器)"라는 구절에서 그 어원을 찾기도 한다. 형체보다 상위의 것을 '도(道)'라 한다니, 결국 철학은 '도를 아십니까?'로 귀결되는 것일까. 비단 농담만은 아니다.
만약 내가 이과가 아니라 문과를 선택했다면 철학과에 갔을지도 모른다. 혹은 대학원 진학 때 '기(器)'가 아니라 '도(道)'에 좀 더 뜻을 두었다면 과학철학을 전공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과거에도 현재도 '기(器)'에 더 관심을 두고 있기에 후회는 없다. 철학은 업(業)으로 삼기보다 사유의 즐거움으로 남겨두는 편이 낫다고 생각하기에.
그렇더라도 '실존주의'와 '실재론'은 앞으로도 나의 주된 화두가 될 것이다. 최근 읽은 마르쿠스 가브리엘의 '신실재론 3부작'이나 카를로 로벨리의 <양자역학의 관계적 해석> 등을 떠올려보면, 이런 문제들은 고민한다고 해서 답이 나오는 게 아님을 안다. 자연과학도 철학도 근원적인 '왜?'에 대한 명쾌한 답을 줄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끊임없이 답을 찾아 나갈 것이다. 그것은 인류가 수천 년간 고민해도 알 수 없었던 문제다. 때로는 종교라는 이름으로 단순화되어 맹목적 믿음을 강요받기도 했지만, 결국 인간의 사고는 그 모든 시행착오를 거치며 확장해 나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