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네켄, 애니깽, 그리고 검은 꽃
작년 11월, 인천 월미도에 있는 한국이민사박물관을 찾았다. 야외전시장에는 '에네켄 기계 전시관'이 있었는데, 에네켄 모형과 섬유 추출 기계 실물이 전시되어 있었다. 그것을 보면서 마음이 좀 아팠다. 슬픈 역사의 단면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소설 <검은 꽃>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에네켄은 주로 멕시코에서 자라는 용설난의 일종이다. 섬유질이 강해 예전부터 밧줄 등을 만드는 데 이용했고, 술을 빚는 데도 쓰였다. 그 술이 바로 테킬라다.
수요가 많아지면서 멕시코에서는 대규모 농장을 조성해 재배했지만, 손이 많이 가는 작물인 만큼 값싼 외국 노동력을 들여오고자 했다.
구한말, 정확히는 1904년 말~1905년 초 대한제국 시기에 민간 업체(대륙개발회사)가 '묵서가'(멕시코의 당시 표기)로 이민 갈 사람들을 모집했다. "4년만 일하면 큰돈을 벌 수 있다"는 감언이설에 넘어간 다양한 계층의 사람 1033명이 1905년 3월, 영국 상선 일포드호에 몸을 실었다.
항해 중 두 명이 이질로 목숨을 잃고, 아기 한 명이 새로 태어나 멕시코에 닿은 사람은 총 1032명이었다.
선실에서의 생활도 참혹했지만, 멕시코에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던 것은 노예 생활에 가까운 중노동이었다. 에네켄은 크기도 크거니와 잎이 날카롭고 가시가 있어 다루기 까다로운 식물이었다.
사기 이민 사실이 밝혀지자 대한제국 정부는 멕시코 이민 사업을 즉각 중단시켰고, 이 이민은 단 한 번으로 그치게 되었다. 설상가상으로 을사늑약으로 대한제국의 외교권마저 박탈당하면서, 멕시코 정부는 한인들을 더욱 무시하게 되었다. 아무도 그들을 보호해 주지 못했다.
당시의 이주 기록과 한인들의 노동 기록은 지금도 상세하게 남아 있어 한인 이민사 연구의 중요한 사료가 되었고, 문학과 예술 작품의 소재가 되기도 했다.
1988년 김상열 작가는 희곡 <애니깽>을 썼다. '애니깽'은 당시 한인들이 에네켄을 부르던 말이자, 그들 자신을 일컫는 명칭이기도 했다. 이 희곡은 대학로에서 연극으로 공연되었고 뮤지컬로도 만들어졌다. 1990년에는 김선영 작가가 동명의 소설 <애니깽>을 썼고, 1996년에는 이를 원작으로 한 영화 <애니깽>이 제작되어 대종상 최우수영화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나는 이 영화를 본 적은 없지만 제목만 알고 있었다.
그리고 2003년, 김영하 작가가 소설 <검은 꽃>을 출간한다. 내가 김영하 작가의 작품 중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작품이다.
두 작품을 비교하면 인물 설정이나 줄거리에서 유사성이 눈에 띈다. <검은 꽃>이 기존 작품을 표절했거나 참고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것도 그 때문이다. 이에 대해 김영하 작가는 "기존 작품이 아닌 사료를 바탕으로 했다"라고 밝히고 있으며, 현지답사까지 다녀왔다고 한다. 그래도 석연찮은 구석이 없지 않지만, 작품 전체를 놓고 보면 결이 확연히 다르다.
기존의 <애니깽>이 '여러 군상들이 멕시코로 건너가 얼마나 힘겹게 살았는가'에 초점을 맞춘다면, <검은 꽃>은 초반부는 비슷하게 출발하지만 서사를 훨씬 더 넓게 펼쳐 '국가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까지 이른다. 민족주의적 정서나 신파에 머물지 않는다는 점에서 유사성 논란을 비껴갈 수 있었을 것이다.
김영하는 이 소설을 통해 나라를 잃은 사람들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국가라는 울타리가 사라졌을 때 사람들은 어떻게 변해가는지, 기존의 계급과 차별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그리고 인간의 본성은 극한 상황에서 어떻게 드러나는지를 치밀하게 보여준다. 그러다 보니 각 인물들의 변화와 결말에 더 집중하는 구조가 된다.
또한 과테말라 내전(혹은 독립운동)에 말려든 한인들의 이야기는 역사적 사실에 허구를 가미한 것이다. 그들은 이국땅에서 조선 독립의 꿈을 이루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현실에서 그들은 그저 용병에 가까울 따름이었다.
여담이지만, 이 책은 첫 부분이 뒷내용과 이어지는 구조라 다 읽고 나서야 앞부분이 제대로 이해된다. 처음에는 꽤 당혹스럽게 느껴질 수 있다.
처음에는 제목을 보고 '에네켄의 꽃색이 검은색인가?' 싶었는데, 그건 아니었다.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꽃이다. 검은색이 주는 우울함과 죽음의 느낌도 담겨 있지만, 김영하 작가에 따르면 여러 계층과 군상의 뒤섞임, 어느 곳에도 뿌리내리지 못하는 현실, 잃어버린 이상향 같은 의미도 함께 담겨 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이 소설은 민족주의적 시각을 걷어내고 인류 보편적인 주제와 실존주의적 관점을 담았기에 해외에서도 인정받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검은 꽃>에서는 '애니깽'이라는 명칭을 쓰지 않고 '에네켄'이라는 말만 일관되게 사용한다. '애니깽'은 작가의 말이나 해설에서만 등장했던 것 같은데, 그제야 기존의 <애니깽>과 이 작품의 연결고리를 알 수 있었다.
p.s. 멕시코 이민만이 아니라 하와이 사탕수수 농장으로 건너간 이민자들의 삶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노예제도 폐지 이후 노예의 대체재로 외국 노동자들을 수입했던 것이니까.
아래는 최초의 하와이 이민자들의 사진이다. 한국이민사박물관에는 당시 이민자들의 삶과 한이 담긴 전시물들이 많다. 월미도를 찾을 일이 있다면 한 번쯤 들러볼 만한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