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전자책

E Ink사는 어떻게 전자잉크 시장을 장악했나

E Ink사가 이북리더용 전자잉크 패널 시장을 독점하게 된 과정

by 칼란드리아

이북리더에 관심을 갖고 계신 분들이라면 이북리더에 들어가는 전자잉크(용어는 다양하지만, 여기에서는 '전자잉크'로 통일할게요) 패널이 거의 대부분 대만의 E Ink 사 제품이라는 것을 잘 알고 계실 것입니다. 사실상 이북리더용 전자잉크 패널을 독점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서 왜 이 독점이 무너지지 않는지 의아해 할 수도 있습니다. 보통 '시장이 너무 작고 수요가 적어서 돈이 안 되니까'라고 얘기를 합니다. 맞는 말입니다. 그게 가장 크죠. 하지만 그 외에도 몇 가지 이유가 더 있습니다. 재미 삼아 그에 대한 이야기를 해 보려고 합니다.




E Ink 사의 정식 명칭은 'E Ink Holdings'입니다. 이 회사의 전신은 PVI (Prime View International)라는 LCD 제조업체였어요. 그런데 LCD를 만들던 회사가 어떻게 전자잉크 패널 시장의 강자가 되었을까요?


이야기는 1970년대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1970년대에 '전기영동기술'이라는 것이 개발되었습니다. 이는 액체 속에 전하를 띤 입자를 넣은 뒤 외부 자기장이 걸어주면 입자가 이동하는 현상이었습니다. 우리가 아는 전자잉크의 기본 원리라고 할 수 있죠. 하지만 액체 속에 입자를 고르게 분산시키는 것이 어려워서 입자가 뭉치거나 아래에 가라앉거나 잘 움직이지 않는 문제가 있어서 상용화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1990년대 중후반, MIT 미디어랩의 조셉 제이콥슨 교수를 비롯한 연구자들은 입자를 수백 마이크로미터 크기의 마이크로캡슐 안에 가두는 방식을 발명하여 입자의 안정성을 높였습니다. 이 '캡슐화 기술'이 현재 전자잉크의 기술적 표준이 된 것이죠. 처음에 그들은 이 전자잉크를 '라디오페이퍼(RadioPaper)'라고 불렀습니다.


그들은 특허를 내고, 이 기술을 바탕으로 1997년에 E Ink라는 회사를 설립합니다. 우리가 아는 그 E Ink 회사의 원조입니다. 원래는 미국 회사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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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력을 가지긴 했지만 그것을 생산할 시설이 없었고, 특히 TFT 쪽에서 기술적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전자잉크 패널에서 FPL (Front Plane Laminate; 마이크로캡슐이 코팅된 필름)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TFT와 백플레인이거든요. (전에 제가 올린 글을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특히 TFT는 전자잉크의 해상도를 결정하게 되며, 전자잉크가 잘 작동하도록 하는 핵심 부품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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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 Ink사는 패널의 양산을 위해 대만의 PVI와 협력하게 되고, 여기를 통해 양산에 성공하게 됩니다. 두 회사의 이해타산이 맞아떨어진 것이죠. 그렇게 두 회사가 기술 개발에 힘쓰며 전자잉크 패널을 생산하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2009년에 글로벌 금융위기가 닥쳐오자 E Ink는 파산 위기를 맞게 됩니다. 이때 PVI가 E Ink를 전격 인수합니다. 그러면서 본사를 아예 대만으로 옮겼고, PVI라는 회사명도 E Ink Holdings로 바꾼 것이죠. 이제 E Ink는 대만 회사가 되었습니다.


그들은 애당초 MIT에서 전자잉크를 개발한 특허도 갖고 있었지만, 개발 및 양산 과정에서 엄청난 수의 파생 특허를 냈습니다. 정확하게는 모르겠지만 특허가 대략 수천 개가 된다고 하네요. 리프레시 기술 등이 이에 포함됩니다.


그로 인해 MIT에서 낸 특허는 기간이 만료되었지만, 그 파생 특허로 인해 다른 업체들이 전자잉크 시장, 특히 이북리더용 전자잉크 시장에 뛰어들지 못하는 구도를 만들었습니다.




사실 경쟁사가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E Ink사가 캡슐화 기술을 기반으로 전자잉크를 사용화했다면, SiPix라는 회사(1999년 미국에서 설립)는 벌집형 격자구조를 이용한 기술(마이크로컵)로 전자잉크를 개발했습니다. 이는 하전입자가 들어가는 컨테이너를 캡슐이 아닌 육각형 격자로 만든 것이었죠. 구조적으로는 더 안정된 형태였습니다.


SiPix는 초기에는 대만에 공장을 설립하고 독자적으로 소량 생산하다가 점차 주문량이 증가하자 대만의 LCD 제작업체인 AU 옵트로닉스 (AUO)와 손잡고 양산에 들어갑니다. 이때 생산된 패널 중에 국내에서는 아이리버의 스토리 시리즈에 들어간 것도 있습니다.


그러다가 AUO는 SiPix의 지분을 늘려나갔고, 결국에는 자회사로 편입시켰습니다. AUO 역시 차세대 패널은 전자잉크가 될 것이라고 본 것이죠.


하지만 그들의 예측은 빗나갔고, LCD를 대체해 나간 것은 OLED였습니다. 결국 2012년에 AUO는 SiPix를 E Ink에 매각하게 됩니다. 이때 E Ink의 독점 체제가 비로소 완성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아시는 분도 계시겠지만 국내에서는 LG디스플레이(LGD)와 삼성디스플레이(SDC)에서도 전자잉크를 개발한 적이 있었습니다. 전자잉크가 디스플레이 시장의 미래가 될 것이라 본 것이죠. 하지만 두 회사의 개발 방식은 좀 달랐습니다.


LGD는 2010년대 초반에 독자적인 기술로 플렉시블 전자잉크를 개발한 바 있습니다. 이어 2010년대 중반에는 컬러 제품 개발에 주력한 적도 있었죠. 당시 저는 LGD 전자잉크 개발팀에 지인이 있어서 관련된 내용을 조금 들을 수 있었습니다. 조금 지나면 상용화될 것이라고 했었어요. 컬러는 어떤 방식이었는지는 자세하게는 모르겠습니다. LGD로서는 흑백은 경쟁력이 없고, 그나마 컬러에 승부수를 던져볼 생각이었던 것 같아요. 하지만 컬러 전자잉크 패널 개발은 쉽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개발팀도 소규모였고, 회사에서도 아주 마이너였어요.


게다가 앞서 언급한 대로 OLED 시장이 급부상하면서 LGD는 전자잉크 개발을 접고 OLED에 집중하게 됩니다. 이 전략은 LGD로서는 성공적이었지만, 전자잉크 개발 쪽에서는 아쉬움이 많이 남습니다. 이 개발팀의 일부는 (제 지인을 포항 해서) 중국 본토로 가 거기에서 전자잉크 개발을 이어 나갔습니다. 안 좋게 보면 기술 유출이지만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죠.


SDC의 경우에는 기존 방식과 다르게 '전기수화(EWD)' 방식이라는 기술을 가진 리퀴비스타를 2011년에 인수하여 전자잉크 기술을 개발하고자 했습니다. 이 회사는 네덜란드 회사였는데요, EWD 방식은 입자 대신 기름과 물을 섞어서 전기장을 가해주면 물이 이동하는 방식을 이용한 것입니다. 장점은 화면 전환이 더 빠르고 더 밝다는 점입니다. 게다가 전자잉크처럼 눈의 피로도도 적으면서 색 표현력도 좋았죠. 기존 LCD가 액체결정의 분자배열을 바꿔 빛을 굴절시킨 후 컬러필터를 통해 나오는 방식이라 더 어둡고 느렸거든요. 그러니 SDC에서도 LCD의 대체 기술로 EWD를 눈여겨본 것이죠.


역시나 시장은 녹록지 않았습니다. 무엇보다 EWD 방식은 기술적으로 구현하기 어려웠고, 수율이 낮았습니다. 시장성이 많이 떨어지게 된 것이죠. 결국 SDC 역시 2013년에 리퀴비스타를 아마존에 매각하고, AMOLED에 주력하게 되었습니다. SDC 기술자 중에서도 일부는 중국에 간 듯합니다.


중국으로 넘어간 LGD나 SDC의 기술은 특히 TFT와 백플레인 쪽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중국에도 BOE나 CSOT 같은 전자잉크 회사가 있는데요, 사실 이들은 FPL은 E Ink에서 공급받고, TFT만 생산해서 붙이는 방식으로 전자잉크 개발을 했습니다. 그만큼 FPL 생산기술이 까다로운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죠. 또한 E Ink가 독점할 수밖에 없는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아마존은 왜 EWD 기술을 가지려고 했을까요? 2000년대 중반 아마존은 킨들을 출시하고 엄청난 히트를 쳤지만, 패널을 비롯해서 부품의 상당 부분은 다른 회사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특히, 킨들로 동영상까지 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기존 LCD 방식의 '파이어' 대신 EWD를 이용한 기기를 만들고자 했던 것이죠.


아마존이 인수한 리퀴비스타는 다시 네덜란드에 연구소를 세우고 아마존의 자본력을 바탕으로 연구를 계속합니다. 하지만 5년이라는 시간이 지나는 동안 LCD와 OLED 기술이 더 발전하면서 EWD는 경쟁력을 상실하게 되었습니다. EWD 역시 기술이 더 발전했지만 장점이 없어졌으니까요. 결국 아마존은 2018년에 리퀴비스타 연구소를 폐쇄하고 독자적으로 전자잉크 패널을 만들려던 계획을 포기합니다. 대신 E Ink와 협력하기로 한 것이죠.


그렇다고 해서 아마존이 삽질했다고만 볼 수는 없습니다. 리퀴비스타의 기술 중에 일부분, 특히 컬러 구현 기술은 E Ink의 제품에 도입되었거든요. 또한 리퀴비스타의 프런트라이트 기술은 킨들에 적용되기도 했습니다. 킨들의 균일한 프런트라이트 품질은 리퀴비스타 덕분입니다.


아마존은 그러한 기술을 E Ink와 공유했습니다. 사실 E Ink의 성장에는 아마존의 힘이 컸다고 할 수 있거든요. 전 세계 이북리더 시장의 60% 이상, 미국 내 85%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아마존의 영향력은 절대적이었습니다. 킨들은 100% E Ink 제품을 사용합니다만, 오히려 아마존이 '갑'인 입장이었습니다. 사실상 E Ink는 제품 개발을 아마존의 요구에 맞추어 할 수밖에 없었고, 신제품 개발 시 아마존에 우선적으로 독점 공급하게 되었습니다.


예로, 300 dpi의 10.2인치 카르타 패널을 킨들 스크라이브에 6개월~1년 간 독점 공급하다가 나중에서야 다른 회사에게도 공급하기 시작했죠. 신제품, 특히 고스펙 패널의 경우에도 킨들에 우선 적용하는 방식이 되었고, 같은 패널 (예를 들어 칼레이도 3)이라고 해도 킨들에 들어가는 제품은 아마존의 요구에 맞추어 더 개선하였습니다. 이것이 '킨들 컬러소프트'입니다.


E Ink 입장에서는 그것이 회사 이익과 제품 개발에 도움이 되기 때문에 마다할 이유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렇게 아마존-E Ink 카르텔이 E Ink의 시장 독점을 결정짓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말씀드린 바를 정리해 보자면 E Ink의 독점은 흐름 상 막을 수 없는 것이었네요.


1. MIT에서 시작된 전자잉크 원천 기술 보유. 시작부터 현재까지 원탑

2. 수천 개에 달하는 특허 보유 및 기술력

3. 인수를 통해 경쟁사 제거 (SiPix 등)

4. 경쟁사의 전자잉크 기술 개발 포기

5. 아마존의 든든한 지원 및 안정된 시장 점유


이렇듯 초기부터 앞서 나가던 E Ink를 따라잡기에는 어려워졌습니다. 정말 획기적인 새로운 기술이 나오지 않는다면 앞으로도 E Ink의 독점은 계속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그런데 그거 아세요? E Ink의 최대 매출은 이북리더용 패널이 아니라 마트 등의 전자레이블에서 나온답니다. 전 세계 전자레이블 시장의 9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고 하네요.


*출처: 제가 원래 알고 있던 것+인터넷 검색+지인의 말+구글 제미나이 프로 3.0 문답을 이용하여 직접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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