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제가 전자잉크(eink) 패널의 원리에 대해서 글을 쓴 적이 있었는데요, 오랜만에 관련된 글을 작성해보려고 합니다. 이북리더 기기에 입문하시는 분들 혹은 자세한 원리를 모르는 분들을 위해 가급적 쉽게 설명해 보려고 하지만 제가 관련 전공은 아니고, 제가 이해한 대로만 쓰는 것이라 틀린 부분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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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보는 전자잉크 패널의 내부는 이렇게 생겼습니다. 맨 위쪽에 보호판이 있고, 그 아래에 양쪽으로 전극이 걸려 있습니다. 위쪽 전극은 투명한 것 같아요. 전극 사이에 매우 작은 마이크로캡슐이 단층으로 꽉 차 있어요. 캡슐 안에는 오일과 계면활성제가 채워져 있고, '전기영동입자'라고 부르는 흰색 알갱이와 검은색 알갱이가 들어 있습니다. 캡슐은 폴리머층에 고정됩니다.
흰색 알갱이는 주로 이산화티타늄(TiO2)이고, 검은색 알갱이는 주로 탄소입니다. 여기에 미세한 폴리머로 코팅해서 표면이 전하를 띠게 만듭니다. 특허에 의한 대로 한다면, 흰색은 양전하, 검은색은 음전하를 갖도록 하는 것이죠. 이 코팅 기술이 전자잉크 기술의 난제 중 하나입니다. 전하를 더 잘 띠도록 하면 좋겠지만, 이게 화학적으로 되는 것이라 전하량이 아주 작거든요.
위쪽에 음의 전압이 걸리게 되면 (사실은 기준 전압이 걸리고, 하부의 픽셀 전극으로 전압을 조절합니다) 흰색 알갱이가 위에 있고, 검은색 알갱이는 아래에 놓이게 됩니다. 이때 흰색 알갱이가 검은색 알갱이를 가리게 되어 하얗게 보입니다. 우리가 보는 것은 주로 이 상태입니다. 실제로 이산화티타늄은 반사율이 높아서 종이처럼 하얗게 보이는 효과가 좋다고 합니다. 우리가 패널 바탕이 하얗게 보이기를 바라지만, 그 차이는 여기에서 비롯됩니다.
반대로 위쪽 전극에 양의 전압이 걸리게 되면 흰색 알갱이는 척력에 의해 아래로 밀려나고, 검은색 알갱이는 인력에 의해 위로 올라오게 됩니다. 그래서 검은색으로 표현이 되는 것이죠.
일단 이동한 후에는 오일의 점성이 있어서 그대로 있고, 전기가 끊어져도 이 상태를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습니다. 이론적으로는 화면이 전환되지 않는 한 전력 소모가 없습니다. (패널 자체만 봤을 때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이 점성이 알갱이의 움직임을 방해하는 요소가 되기도 합니다. 여기에서 또 다른 난제가 발생합니다. 점성이 너무 높아도, 너무 낮아도 안 되거든요. 그래서 오일의 점성을 최적화하기 위한 테스트를 계속하고 있는데 패널이 나올 때마다 조금씩 달라지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카르타 패널의 종류가 달라지는 것은 이 차이이기도 합니다)
또한 외부 조명이 충분할 경우에는 이산화티타늄이 충분한 반사율을 보여주지만 광원이 부족하면 앞쪽에서 빛을 비춰서 반사광을 만들어내야 하는데요, 그래서 프런트라이트가 필요하게 됩니다. 뒤에서 빛을 비춰주는(백라이트) LCD와는 다르죠. 결론적으로는 종이책처럼 빛을 반사해서 보여주는 것이라 그렇습니다. 반사광이라 눈에 피로가 적은 것이기도 하고요. 참고로, 프런트라이트인데도 눈이 피로해지는 건 프런트라이트 빛이 우리 눈에 직접 들어오기 때문이고요.
전극에 전기장을 가해주는 것은 맨 아래에 있는 TFT인데요, 픽셀 전극이라고도 합니다. 여기에서 미세하게 전기장을 변화시키면서 그 위에 있는 캡슐 내 알갱이를 움직일 수 있는 것이죠. 이 픽셀 전극에서 해상도가 결정됩니다. 많은 분들이 착각하시는 부분이 저 마이크로캡슐 하나가 해상도를 결정한다고 생각하시는 것인데요, 그것은 아니고 한 픽셀 전극 위에 놓이는 캡슐의 수는 랜덤입니다. 하지만 캡슐 크기 자체가 30~50마이크론 정도라 매우 작고 촘촘하게 배치돼서 픽셀 당 캡슐의 수가 랜덤이라고 해도 통계적으로는 거의 비슷한 수라고 볼 수 있어요.
현재 전자잉크의 가장 좋은 해상도는 300 dpi인데요, 이는 인쇄물과 비슷한 수준이고, 인간의 눈으로 식별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수준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기술적으로도 가장 높은 단계까지 왔기 때문에 효용성 측면에서 이북리더용 전자잉크에서 이보다 더 좋은 해상도를 만들어도 잘 쓰지는 않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왜냐하면 이보다 해상도가 높아지면 제어하기가 매우 힘들어지고 가격만 올라가니까요. 전기적으로도 그렇지만, 물리적, 화학적 단계의 불확실성까지 고려해야 하니까요. 하지만, 400~600 dpi 패널도 개발되어 있다고는 합니다. 가격이 문제겠지요.
이러한 TFT는 주로 유리판 위에 놓이게 됩니다. 유리가 가장 안정적이고 또 절연체이기도 해서 그런데요, 단점은 잘 깨진다는 것이죠. 그래서 이러한 단점을 보완하고자 TFT의 아래판(백플레인)을 플라스틱(폴리이미드)으로 만든 것도 있습니다. 바로 모비우스 패널인데요, 이는 10인치 이상의 패널 일부, 그리고 13인치 패널에서 사용됩니다. 과거 소니 제품에서도 이런 플라스틱 기반 패널이 사용된 적도 있다고 하지만, 현재 Eink 사 제품 중에서는 모비우스 패널만 이에 해당하는 듯해요. 그래서 모비우스 패널을 사용한 10인치 이상 제품은 상대적으로 튼튼하고 액정이 깨질 위험이 적습니다. 또한 무게가 가벼워지는 장점도 있죠.
그러나 플라스틱을 모든 제품에 다 적용하기에는 공정이 너무 까다롭고 단가가 올라갑니다. 결국 어차피 비싼 제품이 아니라면, 저가의 제품에서는 이렇게 만들 수 없는 것이죠. 여담으로 이북리더에서 패널 가격은 30~70% 정도를 차지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대화면일수록 당연히 패널이 더 비싸지고, 그 이면에는 이런 이유도 있습니다.
그럼 TFT 백플레인이 잘 안 깨질 수 있도록 케이스도 튼튼한 것으로 해 주고, 라미네이팅도 잘하고, 잘 만들어주면 될 것 같은데 제조원가 때문에 그렇게 안 해주는 것은 아쉽습니다. 무게 때문이기도 하고요. 튼튼하게 만들어주면 이북리더도 더 안심하고 사용할 수 있을 텐데요.
전자잉크 사용자들의 가장 큰 불만은 '느린 속도'와 '화면 깜빡임'입니다. 이는 앞서 언급했던 대로 전자잉크가 가진 물리적 한계 때문입니다.
캡슐 안의 오일은 점성을 갖고 있으며 온도에 민감합니다. 추운 곳에서 화면이 느려지는 이유는 오일이 끈적해져 알갱이의 이동을 방해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알갱이가 이동하다가 미처 다 가지 못하고 남으면 '잔상'이 생깁니다. 이를 깨끗이 지우기 위해 화면 전체를 검은색과 흰색으로 교차시키는 '리프레시' 과정이 필요하며, 최신 기기들은 리갈(Regal) 알고리즘 등을 통해 이 깜빡임을 최소화하고 있습니다. 리프레시 기술은 전자잉크의 하드웨어와 별개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최근에는 컬러 전자잉크 기술도 발전하고 있죠. 대표적으로는 칼레이도 방식과 갤러리 방식을 들 수 있어요.
칼레이도 방식은 현재 가장 많이 이용되는 방식인데요, 패널의 앞부분에 컬러필터를 넣어서 색을 표현하는 방식입니다. 캡슐 내에서 움직이는 건 흰색과 검은색 알갱이로 동일합니다만, 컬러필터에 의해 색이 보인다고 인식하는 것이죠. 컬러필터는 2x2 격자방식으로 되어 있고, 각각 R, G, B, W(또는 G)로 되어 있어서 해당 필터에 흰색 알갱이가 올라오면 그 색으로 보이고, 모든 필터에 흰색 알갱이가 올라오면 '가산혼합'에 의해 흰색으로 보이게 됩니다. (정확하게 같다고는 할 수 없지만, 모든 빛이 합쳐지면 백색광이 되는 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해 볼 수 있겠네요. 우리 뇌가 그렇게 인지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것을 설명하려면 좀 복잡해서 (빛의 투과와 반사, 흡수 등을 고려해야 해서요) 나중에 다시 정리해 볼게요. 아무튼 2x2 격자 방식을 쓸 수밖에 없어서 해상도는 1/4 (한쪽 방향으로는 1/2)이 감소하게 됩니다. 흑백이 300 dpi인 해상도가 컬러는 150 dpi로 줄어드는 이유입니다. 또한 필터층으로 인해 흑백패널에 비해 좀 더 어둡게 느껴지고, 2x2 격자 방식이라 더 자글자글하게 느껴집니다.
갤러리 방식은 현재 상용화는 되어 있지만 화면 전환이 너무 느리고 고가라 아직 이북리더용으로 쓰기는 어렵습니다. 이는 캡슐 내에 색상을 가진 네 개의 입자(C, M, Y, W)를 직접 움직이는 방식이라 더 선명하고 고해상도로 색 표현이 가능합니다. 그런데 각 입자를 정밀하게 제어하기 위해선 각 입자의 전하 극성뿐만 아니라 전하량도 다르게 해야 하는데요, 대략 강한 양전하, 약한 양전하, 강한 음전하, 약한 음전하 등 네 가지로 구분해서 각각 제어한다고 하네요. 이 제어 방식이 매우 까다롭고 천천히 진행되어하기 때문에 화면 전환이 느린 것인데요, 기술적 난제가 해결되고 쓸만한 수준까지 얼마나 더 걸릴지는 모르겠어요. 갤러리 패널에 대해서도 나중에 다시 정리해 볼게요.
이렇듯 전자잉크는 물리적, 화학적, 전기적 작용을 모두 고려해야 하는 매우 까다로운 기술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데요, 그러다 보니 패널 가격 자체가 높습니다. 그리고 기술적인 발전이 더딘 것 같지만 난제들을 개선해 나가고 있습니다. 다만 사용자들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할 따름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