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파는 상점> 심사평 및 수상자 인터뷰 내용을 보고
김선영 작가의 <시간을 파는 상점>을 오디오북으로 들었다. 알고 있던 작품이기는 했지만 이 작품 또한 선뜻 손이 가지 않았다. 하지만 오디오북이라면 별로 부담은 없을 듯하여 들어본 것이다.
소설의 내용에 대해서는 이 글에서는 언급하지 않으려 한다. 하지만, 내가 더 집중해서 들었던 것은 책 뒤에 같이 실린 심사평과 당선소감, 그리고 작가 인터뷰 내용이었다.
이 작품은 '제1회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상 수상작'이라는 타이틀이 붙어 있다. "자음과 모음"은 출판사 이름이자 이 출판사에서 펴내는 계간 문예지의 이름이기도 하다. 일반문학 도서도 출판하지만, 청소년 대상 도서 출판에도 주력하고 있다. 그런 취지에서 청소년문학상과 같은 공모전을 개최한 것이다.
이 공모전은 2011년에 처음 시작되었고, 그 첫 번째 당선작이 이 작품이다. 이 작품을 당선작으로 선정한 이유도 있었지만, 다른 출품작들에 대한 간략한 언급도 있었다. 다른 작품들은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를 보면, 상대적인 비교가 될 듯하다.
공모전 당시, 주최 측은 청소년문학에 대한 이정표가 될만한 작품이 출품되기를 기대했던 듯하다. 하지만 대다수의 작품이 수준 미달이었고, 심사위원들은 그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했다. 그러한 심경이 심사평에 잘 표현되어 있다.
사실 아동문학과 청소년문학은 정말 쉽지 않다는 것을 지난 학기 <아동문학창작세미나> 수업을 통해 절실히 느꼈다. 솔직히 말하면, 나도 아동문학이나 청소년문학을 만만하게 생각했었다. 딸아이를 키우면서 겪었던 일들, 그리고 아이에게 읽어주었던 동화책이나 소설책들을 통해 어느 정도 역량은 있지 않을까 생각했던 것이다.
그래서 중간고사 대체과제로 단편동화를, 기말고사 대체과제로 청소년 단편소설을 제출했다. 두 작품 모두 아이를 키우면서 경험했던 일들을 바탕으로 허구로 재구성한 것이었다.
하지만 최종 성적은 내 기대에 훨씬 못 미치는 B+였다. 그 성적을 보고 한동안 너무 멍했다. 내가 쓴 것이 그렇게 엉망이었나 싶어서. 교수님께 메일을 보내서 내가 쓴 작품에 대한 평가를 부탁해볼까 싶기도 했지만, 결례일 것 같아 그냥 내 수준이 그 정도인 것으로 받아들이기도 했다. 중간고사 대체과제는 합평 시간에 토론을 했기에 대략 짐작은 했지만, 아무래도 기말고사 대체과제로 제출한 청소년 단편소설이 문제였을 듯하다.
아동문학의 범주는 생각보다 너무 넓다. 아동과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기에 대상의 폭은 좁지만, 동시, 동화, 청소년문학, 그리고 대부분의 문학 장르를 아동/청소년용으로 맞춘 것이기 때문에 장르 자체가 제한적이라고 하기는 어려운 것이다. 그러다 보니 합평 시간에도 동시가 가장 많았지만, 나처럼 단편동화를 제출한 경우도 있었고, 드물게 청소년소설을 제출한 학생도 있었다. 그리고 합평 시간에 서로의 작품에 대해 신랄하게 비판을 했었다. 정작 자신의 작품이 평가를 받을 때는 감정이 상했겠지만.
위 도서의 심사평에서도 언급됐지만, 사람들이 아동/청소년문학을 너무 쉽게 생각하고, 수준 낮은 작품들이 양산되어 유통됐다는 지적이 있었다. 아이를 키워본 경험으로, 그런 얘기를 쓰면 먹힐 것이라는 안일한 생각이 그런 뒤틀린 시장을 만든 것이다. 특히나, 아동도서는 부모들이 사주는 경우가 많기에 어느 정도 수요가 보장된 시장이기도 하다. 거기에 '권장도서'라는 타이틀까지 달면 더 그렇고. 심지어 공모전까지 그런 양상이 이어진다.
물론 내가 읽어본 동화나 청소년소설 중에도 좋은 작품이 많았지만, 인기 있는 작품의 경우에도 '이게 왜 인기가 있지?' 싶은 것들이 있었다. 아무리 주관적인 판단이라고 하더라도, 문학성이나 작품성이 떨어지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런 생각은 나만 가진 것은 아닌 듯하다.
그러나, 다른 사람의 작품에 대해서는 그런 비판을 하면서도 정작 내가 쓰는 글에 대해서는 좋은 평가를 기대했다는 것이 부끄러웠다. 나 역시 그런 안일함으로 과제를 했던 것이 아닌가 싶어서. 다시 쓴다고 해서 그보다 더 좋은 작품을 썼을지는 모르겠지만 지금과 같은 마음가짐이라면, 적어도 글을 쓰면서 고민은 더 하게 되지 않았을까 싶다.
심사평 못지않게 당선자 인터뷰 내용 또한 생각할 거리를 안겨 주었다. 인터뷰를 주도한 이상권 작가도 많이 알려진 아동문학작가인데, 해당 공모전의 심사위원을 맡기도 했었다. 그래서인지, 인터뷰의 내용이 상당히 날카로웠고 아동/청소년문학계에 대한 일침도 가했다.
무엇보다 아동/청소년 문학은 대상인 아동, 청소년의 이야기를 담아야 하는데 어른들의 시각과 생각이 주를 이루는 것이 대부분이라는 얘기는 합평 수업 때도 자주 나왔던 내용이다. 수업을 담당하셨던 교수님 (아동문학작가이기도 하다)께서는 그 점을 매우 답답해하셨다.
그런데 당선자 김선영 작가는 성인소설로 등단한 기성작가였다. 그런데 소설에 대한 고민을 하다가 청소년소설로 방향을 전환했던 것인데 그는 청소년 소설이 '자신에게 딱 맞는 옷을 찾은 기분'이라고 했다.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왜 그런지 이해할 수 있다.
아래의 말은 작가의 말을 그대로 옮긴 것이다. 내가 직접 쓰는 것보다는 인용하는 것이 더 좋을 듯하다.
전 일반 문학(?)을 성인문학이라고 칭한 것 같습니다. 제 출발은 성인문학이었습니다. 그런데 성인문학은 쓸수록 어렵다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왜 어렵다고 생각하는가, 스스로에게 물었죠. 범위가 없기 때문에 어려운 것이었어요. 저는 그렇게 무한대의 무언가를 담기에는 좀 그릇이 작은 편인가 봅니다. 어느 정도의 규제와 규범이 있을 때 더 자유로움을 느끼죠. 그래서 그런지 소설을 쓸 때마다 스스로에게 규범을 가하는 것 같았어요. 각이 선 제복을 입고 허리춤에는 칼이나 총이라도 차고 쓰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 즐겁다기보다는 힘든 작업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성인문학을 함으로써 제가 말하고자 하는 것을 다양하게 담을 수 있다는 생각은 했지만 어쩐지 분에 넘치는 옷을 입고 있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더군요. 등단하고 그런 생각이 들었으니 참 감이 늦은 편이죠. 오히려 등단 후에 저의 색깔을 객관적으로 보게 된 셈입니다. 그래서 좀 방황을 했습니다. 저에게 맞는 옷이 무엇일까, 하는 물음이 늘 뒷덜미를 잡고 늘어지더군요. 작년에 첫 소설집을 내자, 이제 내가 내놓은 출사표에 대한 책임은 어느 정도 했다는 생각이 들면서 내 성향에 맞는 것은 청소년문학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제 성향이 청소년문학과 맞겠다는 말을 종종 듣고 있었거든요. 그렇다고 청소년문학이 그릇이 작다거나 규제와 규범이 있다는 것은 아닙니다. 개인적으로 제 문장이나 성격과 잘 맞는다, 정도입니다. 청소년 소설에 대해서는 생각만 굴뚝같았지 그것도 쉽게 시작되지 않더군요. 무언가를 시작할 때 왜 이리 도움닫기를 오래 하는지……. 제가 청소년문학에 관심 가질 무렵에는 국내 청소년문학이 거의 전무한 상태였습니다. 몇몇 선생님들이 계셨지만 지금처럼 활발하지 않았죠. 가망성이 많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렇게 생각에만 머무르고 있던 차에 청소년문학에 대한 국내 관심도가 증폭되기 시작하고, 지금은 신인은 물론 성인문학과 아동문학을 하시는 분들도 대거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생각만 하다 그 시기를 놓쳐버렸다는 조급함도 생겼습니다. 치열하게 쓰지 않으면 어디에도 참여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 한 가지, 요즘 청소년 소설의 분위기는 대개 시니컬, 시크, 삭막, 드라이하다는 낱말이 절로 떠오를 정도로 건조하며 냉랭합니다. 요즘 청소년들의 성향이기도 하다는 생각은 하지만 작품을 읽는 독자로서 오히려 상처받을 정도였습니다. 악의적이고 잔인한 경우는 차치하고, 가족이나 주변 사람들에 대한 냉소적인 묘사는 과연 그러한지 되묻고 싶을 정도였습니다. 요즘 우리나라에서 발표되는 청소년 소설의 분위기는 대체로 이와 비슷한 분위기와 구도를 가지고 있습니다. 실제로 요즘 아이들이 이러한가, 따스함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이렇게 냉정한가, 되묻곤 했습니다. 마침 청소년기를 지나는 제 아이들이 있었고, 그 친구들의 얘기를 들어봐도 꼭 그렇지만도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경쟁 구도로 몰아세우는 사회가 몰염치하고 비인간적인 것이지, 그들은 그 속에서 따뜻함으로 숨을 쉬며 위로하고 격려하는 모습을 더 많이 보였습니다. 어른들이 만들어놓은 제도 속에서 그들 나름의 숨통을 만들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그들의 숨통을 더 넓혀줄 수 있는 청소년 소설이 필요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문제를 일으키는 청소년도 많지만 문제를 안고 있되 표현하지 않고 묵묵히 견디는 아이들도 있으며 그들에게 따뜻함으로 다가가 위로해주고자 하는 친구들도 많다는 것을 그리고 싶었습니다. 또래의 연대의식이 가장 강력한 힘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들 자신의 에너지를 한번 믿어보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습니다. 경쟁과 속도를 요구하고 1등만 인정하는 사회에서 99%의 아이들을 위해 작가는 과연 무엇을 해야 할까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외국의 청소년 소설을 보면 상당히 그릇이 크다는 생각을 종종 하게 됩니다. 청소년의 세계지만 그것 또한 우리 사회의 축소판이기 때문에 아이들을 통해 사회의 모순을 보여주기도 하고, 철학적인 테마를 다루는 경우도 볼 수 있었습니다. 무조건 선호하는 것은 아니지만 외국 작품이 훨씬 다양하고 스케일이 크다는 것은 국내 소설의 현주소를 객관적으로 바라봐야 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개인적으로 우리나라의 청소년 소설이 훨씬 더 다양한 것을 담을 수 있는 그릇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져봅니다. 청소년문학의 일반적 특징으로는 주인공이나 등장인물을 청소년으로 상정한다거나 독자층이 청소년인 경우라고 볼 수 있는데, 이처럼 표면적인 것을 제외한 모든 것은 활짝 열려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작가 스스로 청소년문학이라는 타이틀에 얽매여 말하고자 하는 바를 제한한다면 같은 자리를 맴도는 결과밖에 나오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제야 아동문학창작 합평 수업에서 내가 놓친 것이 무엇인지, 얼마나 안일했는지를 깨닫게 되었다. 작품보다는 그러한 심사평과 인터뷰를 읽은 것이 내게는 더 큰 소득이었다.
내가 다시 동화나 청소년소설을 쓰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언젠가는 다시 도전해 보고 싶은 생각도 든다. 그때는 지금의 마음을 잘 되새겨서 진부하거나 그저 그런 이야기를 쓰지는 말아야겠다. 쉽지는 않겠지만, 그것이 작가의 자세가 아닐까.
하지만 분명한 것은, 아동문학, 청소년문학도 그 나름의 매력이 있고, 의미가 있다는 점이다. 특히 자라나는 아이들, 청소년들이 무엇을 보고 생각하는지를 함께 할 수 있기에 더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