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도 시대의 흐름이리라
올해 들어 두 가지에 주력하고 있다. 바이브 코딩과 논문 쓰기다.
회사에서 내가 하는 일이 꽤 다양한 편인데, 그중에서도 데이터를 통계 분석하는 일이 많다. 업무상으로도, 연구 목적으로도. 간단한 것은 엑셀로 처리하지만, 복잡해지면 코딩을 하게 된다. 주로 R이나 MATLAB을 써왔는데, 통계학과를 다닐 때 대부분의 통계 패키지를 배우긴 했어도 결국 실제로 손이 가는 건 엑셀, R, MATLAB 정도였다.
요즘은 AI로 대략적인 결과를 먼저 확인하고, 바이브 코딩으로 짠 파이썬 코드로 정밀하게 검증하는 방식을 쓰고 있다. 물론 AI 분석도 내부적으로는 파이썬이 돌아가는 것이지만, 외부 유출이 금지된 데이터는 AI에 올릴 수 없으니 직접 코드를 돌려야 한다.
바이브 코딩이 일반화되면서 코딩의 진입 장벽이 많이 낮아졌다. 개발자는 물론이고 코딩을 전혀 모르는 사람도 원하는 결과를 낼 수 있는 시대가 됐다. 물론 결과물의 수준 차이는 여전히 존재하지만.
사실 코딩을 꽤 오래 접해온 편이다. 초등학생 때 8비트 컴퓨터로 시작했으니 벌써 40년이 넘었다. 접해본 언어만 해도 BASIC(8비트, GW, Quick), Pascal, Assembly, FORTRAN, C, C++, Python에 MATLAB, R, IDL, SAS까지 꽤 된다. 그렇다고 코딩을 잘하는 편은 아니다. 취미로, 혹은 업무와 연구 필요에 의해 그때그때 해온 것이 전부라, 이른바 주먹구구식 막코딩에 가깝다. 대학 진학 때 컴퓨터 관련 학과를 가고 싶었지만 스스로 역량이 부족하다고 판단해 공대 다른 학과를 선택했다. 그래도 학부와 대학원 내내 프로그래밍에서 완전히 손을 놓지는 못했다.
그런데 AI는 나보다 코딩을 훨씬 잘하고, 오류가 생겨도 알아서 해결하며, 말로 요구사항을 전달하면 거의 자동으로 만들어낸다. 복잡한 경우엔 계획서 수준의 명세가 필요하기도 하지만, 그 정도면 충분하다. 코드 내부를 들여다보면 전문가 눈에는 문제가 보이겠지만, 적어도 나보다는 낫다는 점만은 분명하다.
덕분에 개인적으로 필요한 프로그램이나 스마트폰 앱을 직접 만들어 쓸 수 있게 됐고, 부서 내 업무 공유용 프로그램을 만들었더니 반응도 좋았다. 오랫동안 생각만 해왔던 것들도 이제는 하나씩 실행이 가능해졌다. 데이터 수집이 어려워 미뤄두었던 것들도 수월해졌고, 후처리도 훨씬 간편해졌다. 업무량 자체는 오히려 늘었지만, 효율이 올라가면서 체감 부담은 줄었고, 하나씩 해결해 가는 재미도 생겼다.
분석 도구가 다양해지고 도움받을 수 있는 것들이 많아지니 논문 쓰기도 예전보다 한결 편해졌다. 가장 시간을 많이 잡아먹던 문헌 조사는 물론, 레퍼런스 정리, 초안 작성, 결과 분석까지. 영문 작성도 AI 쪽이 더 나은 편이라 솔직히 많이 의지하게 된다.
지난 2년간 사이버대 문예창작학과를 다니느라 논문 쓰기에는 거의 손을 놓고 있었다. 대신 다양한 장르에 걸쳐 글다운 글을 실컷 써봤다는 점은 나름의 소득이었다. 그러나 SCI 논문 실적 압박은 그 기간에도 계속됐고, 스트레스가 적지 않았다. 이제는 본업으로 돌아와 논문에 집중하기로 마음을 잡았다.
그동안 연구 주제로 잡아두었던 것들을 다시 꺼내 검토하고, 일부는 이미 수행 중이다. 과거에 리젝 됐던 논문들도 다시 들여다볼 생각이다. 이를 위해 유료로 이용 중인 AI 도구들—Gemini Pro, Claude Pro, Liner, Manus, Scite 등—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
대학원 시절부터 지금까지, 논문 쓰기는 고행에 가까웠다. 한때는 재미를 느낀 적도 있었지만, 지금은 다시 그 재미가 돌아온 것 같아 다행이다. 대단한 연구도, 높은 IF의 저널도 아니다. 내 분야는 워낙 마이너 해서 IF 3을 넘는 저널도 많지 않고 대부분 1~2 수준이지만, 그래도 괜찮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히 해두고 싶다. AI에게 논문을 대신 써달라고 하고 제대로 검토도 없이 제출하는 방식은 취하지 않을 것이다. AI의 도움을 받되, 내 기존 작업 방식의 연장선에서 활용하는 정도로. 어느 선까지가 적절한지 명확한 기준은 없지만, 결국 나름의 기준과 양심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아울러, 학계에서 AI로 인한 혼란은 이미 시작됐다. 논문을 제출하는 쪽도, 피어리뷰를 하는 쪽도 AI를 돌리다 보니 리뷰 시스템의 신뢰성 자체가 흔들리고 있다. 유령 레퍼런스 문제, 논문의 신뢰성 문제, 오픈액세스 확산으로 인한 게재료 급등까지. 연구자들의 실적 압박을 볼모로 출판사만 배를 불리는 구조가 언제까지 지속될지 모르겠다. 내가 이 일을 그만두기 전까지는 유지될 것 같긴 하지만.
그래도 지금 할 수 있는 것, 해야 하는 것에 집중하며 올해를 달려볼 생각이다. 연말에는 조금 더 뿌듯함을 느낄 수 있기를 바란다.
p.s. VS Code와 Claude Code를 연동해 사용 중이고, Antigravity에서도 Claude 모델을 활용하고 있다. 만족도는 높은 편이다. 코딩에서는 Claude가 압도적이라는 느낌이 드는데, 다만 Claude Pro를 사용 중임에도 사용량 제한이 있어 아껴 쓰게 된다. Antigravity의 Claude 모델은 구글에서 돌아가기에 Claude 사용량 차감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