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내는 일과 맞이하는 일에 대하여
인사는 마음의 크기보다 관계의 온도를 더 많이 드러내는 말 같았다.
새해를 맞았다는 말이 그다지 실감 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새해 인사를 어떻게 해야 할지부터 생각하게 됐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새해 인사를 건네는 일에는 늘 약간의 망설임이 따른다. 너무 익숙해서 더 덧붙일 말이 없어 보이는 문장인데, 막상 누구에게 보내려 하니 손끝에 멈추는 시간이 길어졌다. 결국 선택의 문제였고, 그 고르는 숨 사이에서 이 말이 얼마만큼의 진심으로 닿을지 자꾸 생각하게 됐다. 나는 그 어떤 진심의 계단에 서서 그들에게 인사를 건네는 것일까.
새해 인사를 누구에게까지 건네야 할지도 같은 고민이었다. 오래 연락하지 않은 사람들, 안부를 묻지 않아도 되는 사이들, 보내지 않는 인사가 곧 외면은 아닐 텐데, 괜히 마음이 먼저 괴로워졌다. 그 경계를 하나하나 떠올리다 보니 인사는 마음의 크기보다 관계의 온도를 더 많이 드러내는 말 같았다. 그래서 올해는 닿는 곳에만 건네기로 했다.
연말을 앞두고 들은 소식들이 가볍지 않기 때문이기도 했다. 친척 어른께서 힘겹게 마지막 여정을 다하고 계시다는 안타까움을 전해 들었고, 기다리던 결혼 소식을 알려 온 언니도 있었으며, 이곳에서 만난 친구는 갑작스럽게 자매를 잃어 급히 고국으로 돌아갔다. 자신의 일을 위해 고향으로 잠시 떠난 친구도 있었고, 나는 반려견을 맞이했다.
보내는 일과 맞이하는 일이 겹쳐 있는 시기였다. 기쁨과 상실, 이동과 정착이 한 해의 끝에 동시에 놓여 있었다. 그래서인지 새해 인사가 단순한 의례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말이 과연 이 모든 시간을 지나온 사람들에게 충분한 말일까, 하는 생각이 자꾸 들었다.
미사여구를 덧대는 순간 진심이 오히려 흐려질 것 같았다. 한 해의 무사안일을 빌어주는 말이 새해의 언어를 대신할 수 있는지도 확신이 없었다.
그러다 문득, 올해는 무엇을 보내고 이루느냐보다 무엇을 맞이하느냐가 더 중요해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보냄보다 맞이가 더 많은 해였으면 좋겠다고. 아주 평범한 인사지만, 지금의 나에게는 그 정도면 충분했다.
그렇다고 보냄이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고 싶은 건 아니었다. 여전히 보낼 것들은 많고, 어쩌면 잘 보내는 일이 먼저일지도 모른다. 다만 올해는 무엇이든 급하게 밀어내기보다는 제자리에 놓아 보내고 싶다는 마음이 더 크다. 물건도 그렇고, 관계도 그렇고, 마음도 그렇다. 비워야 한다는 말보다는 지금의 나에게 맞지 않는 것들을 조금 정리해 두고 싶다는 쪽에 가깝다.
동시에 맞이해야 할 것들도 분명해졌다. 커서 다시 새롭게 처음 겪는 반려의 시간들, 그리고 뒤늦은 결심에 아직은 바람에 머물러 있는 또 다른 생의 맞이까지. 그래서인지 보내는 일과 맞이하는 일이 서로 반대편에 있는 것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잘 보내는 일은 잘 맞이하기 위한 준비 같았고, 잘 맞이하려면 먼저 숨 쉴 자리를 비워 두어야 했다.
아직 정리되지 않은 마음으로 새해를 맞이한다. 다만, 서두르지 않겠다는 마음 하나만은 분명히 쥐어 본다. 올해는 무엇을 더 얻고 바꿀지보다 무엇을 함부로 흘려보내지 않을지를 조금 더 생각하게 될 것 같다.
그렇게, 잘 보내는 일과 잘 맞이하는 일 사이에 잠시 서 있다. 숫자는 바뀌었지만, 보내는 일과 맞이하는 일은 계속된다. 아직은 다 정리되지 않은 채로.
새해를 맞았다.
Srečno novo leto.
[스레츠노 노보 레토]
행복한 새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