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보다 온도로 기억된 크리스마스

환대로 먼저 닿은 마음

by 슬로하라


말이 모자라도, 마음만큼은 충분한 크리스마스. 함께 먹고 웃는 일만으로도 환대가 전해지던 밤.


작년 이맘때, 크리스마스를 앞둔 주말 저녁의 일이다.


수업에서 만나 친구가 된 콜롬비아에서 온 D는

한국 가수와 영상, 언어에까지 관심이 많았고 자연스럽게 한국 음식에도 호기심을 보였다.


그녀는 슬로베니아인 시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었고,
남편의 잦은 업무 출타로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은 편이었다.


홀로 타지에서 지내는 시간이 많은 그녀를 가끔 우리 집에 초대했다. 한국 드라마를 보며 궁금해하던 몇 가지 한국 음식을 구할 수 있는 재료로 준비해 만들어 준 적이 몇 번 있었다.


그러곤 그녀의 시부모님들도 맛볼 수 있게 조금씩 손에 들려 보내주었는데, 그게 고마우셨던 건지 크리스마스를 앞둔 주말에 나와 남편을 집으로 초대해 주셨다.


그보다 앞서 동네의 작은 축제 행사에서 그녀와 함께 나온 시부모님을 처음 뵌 적이 있었다. 이후로도 마트에서 그녀의 시어머니인 V 여사와 종종 마주쳤다. 그때마다 어설픈 슬로베니아어로 짧은 인사만을 나누곤 했다. 크리스마스엔 마침 그녀의 남편도 긴 출타를 마치고 돌아오던 시기였다.


인도네시아인 E의 집에 차를 마시러 간 적은 있었지만, 어른의 가정집에 초대를 받는 일은 사뭇 다른 긴장을 동반했다. 조금은 벅차고 조심스러운 마음으로 계단을 올랐다.


이윽고 열린 문으로 가장 먼저 들어선 건, 따뜻한 환대였다.

가족들의 함박웃음과 포근한 집안의 내음이 말보다 먼저 우리를 안아 주는 것 같았다.


시아버지인 S 아저씨는 듬직한 체격으로 우리를 안아 주었는데, 몇 번 뵌 적 없는 횟수가 무색하리만큼 반가이 안아주는 그 품에서 정말 큰 어른에게 안긴 듯한 환영의 진심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거실에는 영화에서 본 듯 익숙하면서도 낯선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중앙에 자리한 크리스마스트리와 각양각색의 성탄 장식들,

작은 오르골들이 조용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식탁 위에는 슬로베니아의 음식들이 차례로 놓였다.


직접 만든 소시지롤빵과 프로슈토, 햄,

얇게 썬 고기와 치즈,

식전에 나누는 작은 안주들.


크리스마스라는 말이 가장 먼저 식탁 위에 놓인 듯했다.


와인과 함께 음식들의 이야기를 함께 건네주었지만,

그 이름을 온전히 붙잡기에는 내 언어는 아직 충분하지 않았다.


뒤이어 차례로 내어 주신 음식들 역시 어떤 건 집에서 직접 만들었다고 했고, 어떤 건 크리스마스에 빠지지 않는 거라 했다.


어느 하나 허투루 내놓지 않은 정성을, 우리는 함께 먹고 있었다.


슬로베니아 사람들의 식문화를 알려 주고 싶으셨다던 그 감사한 마음이, 따뜻한 접시들마다 고스란히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 설명들은 슬로베니아어와 영어가 뒤섞인 채 한참을 테이블 위를 오갔다. 고개를 끄덕이며 알아듣는 만큼만 웃고, 알아듣지 못한 부분은 접시 위의 맛으로 대신 이해했다.


말로 표현할 수 있는 언어에는 분명 한계가 있었지만,
흥겨운 자리에서 이어지는 웃음과 맛있게 먹는 기쁨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충분히 전해졌다.


누군가 내 접시가 비어 있는 걸 보고 자연스럽게 음식을 더 덜어 주고, 와인이 비면 말없이 잔을 채워 주었다.


그날의 대화는 문장보다 몸짓에 가까웠고, 언어보다 온도에 가까웠다. 그럼에도 그날 내가 배운 것은 새로운 단어 몇 개가 아니라 함께 먹고, 웃고, 머무르는 법이었다.


언어가 부족해도 마음이 먼저 닿을 수 있다는 걸.


Vesel božič. [베세우 보지취]

해피 크리스마스!

이전 14화배고파서 죽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