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겠다'는 말이 국경을 넘을 때
과장된 말보다는 덜 말하고 넘기는 쪽을 선호하는 편이다. 그래서 수업 중 알게 된 표현 하나가 오래 남았다.
Umrl(a) bom od lakote.
직역하면 '배고파서 죽겠다'는 뜻이었다.
순간 조금 의외였다.
'죽겠다'는 말은 한국어에만 있는,
꽤 한국적인 과장이라고만 막연히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배가 고파도, 피곤해도,
더워도, 추워도,
어떤 감정에도 우리는 곧잘 '죽겠다'라고 덧붙여 말한다.
실제로 죽을 만큼은 아니면서도,
그만큼 그렇다는 뜻으로.
슬로베니아어에도 비슷한 표현이 있다는 사실이
조금은 뜻밖이었고, 그래서 반가웠다.
Umrl(a) bom [우므를(라) 봄]
- 나는 죽을 것이다.
od lakote [오드 라코테]
- 배고픔 때문에.
말만 떼어 놓고 보면 꽤 과한 문장인데,
듣기 제시문에서는 다들 별 반응 없이
자연스럽게 지나가는 눈치였다.
한국어의 '배고파서 죽겠다'처럼
이 문장도 당연히
실제의 죽음과는 거리가 멀었다.
식당에서 주문을 앞두고 툭 던지는,
조금 과장된 감정의 한 장면일 뿐이었다.
배가 고프다는 말,
빨리 뭔가 먹고 싶다는 마음,
그 정도의 간절함.
감정의 크기를 조금 더 크게 말하고 싶을 때,
그만큼 간절하다는 걸 전하고 싶을 때
쓰는 말이라는 점에서 그 방식은 생각보다 꽤 닮아 있었다.
나는 그 표현을 따로 적어 두고 한참을 되뇌었다.
그럼 이 말은, 배가 고플 때만 쓸 수 있는 걸까.
아파서 죽겠을 때, 피곤해서 죽겠을 때,
추워서 죽겠을 때도 이렇게 변형해서 사용해도 되는 걸까.
언어가 다르면 감정을 과장하는 방식에도 차이가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막상 들여다보니 '죽겠다'는 마음만큼은 국경을 꽤 쉽게 넘나드는 듯했다.
외워 두었다가 언젠가 정말 배가 고픈 날,
혹은 너무 피곤한 얼굴로
누군가에게 슬쩍 꺼내 보고 싶은 문장 하나.
스쳐 가는 문장 하나를 배웠지만,
그날은 언어를 넘어선 감각 하나를 함께 알아챈 날이기도 했다.
'죽겠다'는 말이 통하는 순간,
언어의 거리는 생각보다 쉽게 좁혀진다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