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빠르게 요약하지 않기 위해

나를 닫지 않기 위해 언어에 머무는 시간

by 슬로하라


요즘 나는 문장을 자주 곱씹고 있다. 한 번이라도 입 밖으로 흘러나왔나, 혹은 흘려보낼 뻔했던 말들. 끝까지 말하지 못해 공중에 남은 문장들, 너무 쉽게 정리될까 봐 일부러 삼킨 말들이다. 이 언어를 배우는 시간도 그와 닮아 있다.


무엇을 배우고 있는지, 얼마나 늘었는지, 어디까지 왔는지를 묻는 질문 앞에서 나는 자주 말을 늦춘다. 설명이 생기는 순간, 지금의 상태가 너무 빨리 닫혀 버릴 것 같다는 예감이 먼저 들기 때문이다.


얼마 전 '맞이하다'라는 말을 슬로베니아 단어로 알려줄 일이 있었다. 계절과 시간을 맞이하는 dočakati, 사람을 환대하며 받아들이는 sprejeti, 인사로 맞이하는 pozdraviti. 그리고 가장 자주 눈에 익은 단어, dobrodošli. 확신은 없었다. 찾아보고 나온 설명을 그대로 믿고 가져온 말들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 단어들이 하나의 뜻으로 겹쳐졌다. 맞이한다는 건, 무언가를 성취하거나 설명해 내는 일이 아니라 그 자리를 열어 두는 일이라는 쪽으로.


Dobrodošli는 길가나 마트 등 표지판에서도 자주 접하는 단어였다. '어서 오세요' 같은 인사를 뜻한다. 그저 여기까지 와도 괜찮다고, 이미 환영받고 있다고 말해 줄 뿐이다. 말보다 먼저 자리를 내어 주는 언어. 그래서인지 나는 이 언어를 배우고 있다기보다, 이 언어가 허락하는 속도 안에 머물고 있다는 느낌을 자주 받는다. 더듬거려도 되고, 결론이 없어도 되고, 성취나 성장 같은 말로 나를 요약하지 않아도 되는 상태.


증명하려는 것도 아니고, 의미를 굳이 생산하려는 것도 아니다. 다만 너무 빨리 정리되지 않기 위해, 아직 말이 되지 않은 문장들 곁에 조금 더 머물고 싶을 뿐이다. 쉽게 요약될 수 있었던 감정들, 흘려보내도 무방했을 말들, 알아들었지만 반응하지 않기로 했던 순간들까지 포함해서. 그래서 요즘의 나는 문장을 모은다기보다 문장에 머문다. 한 번 스쳐 지나갈 수 있었던 언어의 표면에서 조금 더 시간을 쓰는 쪽을 택한다.


어쩌면 나는 지금, 나를 빠르게 요약하지 않기 위해 이 언어에 머물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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