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요하지만 절실하지 않은 말들에 대하여
나는 언어가 필요하긴 하지만, 그 언어가 나를 증명하는 도구가 되기를 원하지는 않는다.
그래서인지 요즘의 언어는 늘 조금 애매한 자리에 놓여 있다. 없으면 곤란하지만, 그렇다고 절실하다고 말하기에는 어딘가 망설여지는 상태. '필요하지만 절실하지 않은 언어들'이라는 말이 지금의 온도에 가장 가깝다.
지금의 언어는 체류에 가깝다. 도달하기보다는 머무르는 쪽에, 정리하기보다는 흩어진 채로 두는 쪽에 가깝다. 말이 느슨해진 자리에 오히려 나의 현재가 남아 있는 것 같다. 속도가 느릴 뿐, 방향이 어긋난 것은 아니다.
이곳에서 지내며 말이 전혀 필요 없는 자리는 없다. 마트에서도, 엘리베이터에서도, 병원에서도, 수업에서도, 현관문을 열고 나가는 순간부터 말은 늘 앞에 놓여 있다. 문제는 말이 없어서가 아니라, 말이 잘 되지 않는 순간들이다. 그럴 때마다 나는 말을 더 밀어붙이기보다는 한 발 늦춘다. 틀리지 않기 위해서라기보다, 굳이 나를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쪽을 택하게 된다.
그러니 겉으로 보면 변화가 잘 보이지 않는 시간일지도 모르겠다. 단어가 눈에 띄게 늘어난 것도 아니고, 문장이 갑자기 유창해진 것도 아니다. 수업은 듣고 있지만 체감은 느리고, 앞으로 가고 있다는 확신보다 제자리로 오래 머물러 있다는 정체감이 먼저 든다.
영어 역시 비슷하다. 필요하다는 건 알고 있지만, 그 필요가 나를 갈증으로까지 밀어붙이지는 않는다. 외국어 앞에서 늘 절실했던 사람은 아니었고, 잘하는 사람을 기준으로 나를 몰아넣지도 않았다. 그래서 더 해야 한다는 말 앞에서 나는 자주 한 발을 빼고 서 있다. 그게 회피인지 선택인지는 아직 판단하지 않으려 한다.
나는 다만 속도를 올리지 않고 있다. 그 선택이 때로는 불안과 의심을 함께 데려온다는 걸 알면서도. 언어를 통해 얼마나 해냈는지를 보여 주려는 방향으로는 오래가지 않으려고 애쓰는 중이다. 변화가 눈에 잘 띄지 않는 하루들 속에서, 나는 오히려 말 앞에 오래 머문다.
이곳에 와서 처음 몇 해 동안은 단어 하나, 문장 하나를 입 밖으로 꺼내는 것조차 두려웠지만, 지금의 나는 적어도 배움에서 멀어지고 있지는 않다.
분명한 건, 나는 지금 '갈증 없는 배움'의 한가운데에 있다는 사실이다. 목이 말라서 달려가는 배움이 아니라, 굳이 달리지 않아도 곁에 두고 싶은 배움. 성과로 환원되지 않아도 괜찮은 배움이다.
언어가 유용한 도구라는 사실을 부정하고 싶은 건 아니다. 다만 그 유용함이 곧바로 성과나 숙련으로 증명되어야 한다는 기준에는 오래 머물지 못한다. 어떤 언어는 삶을 확장시키고, 어떤 언어는 생존을 돕고, 어떤 언어는 기회를 만든다. 하지만 모든 언어가 같은 방식으로 나를 밀어붙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 언어가 허락하는 속도 안에 머물며, 다소 어정쩡해 보여도 포기하지 않고 오래 내딛을 무게를 쌓아가고 싶다.
설명되지 않아도 괜찮고, 결과로 환산되지 않아도 사라지지 않는 시간. 지금의 나에게 언어는 그런 방식으로 체류하고 있다.
다만 이 체류의 태도, 즉 말의 속도를 늦춘다는 선택은 언제나 타인의 시선 앞에서 시험대에 오른다.
'그래서, 언제까지?'라는 질문을 조용히 마주하게 되는 순간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