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류가 시험받는 자리

평가되는 자리 앞에서, 나는 말을 늦춘다

by 슬로하라


필요하지만 절실하지 않은 언어들 속에 머물기로 한 이 선택은, 생각해 보면 나 혼자만의 문제는 아니다. 사람들 사이로 들어가는 순간, 이 태도는 다른 방식으로 흔들리기 시작한다.


외국인 친구들과의 만남에서도 나는 늘 한 발을 빼고 있다. 그들이 나에게 건네는 태도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더듬거리며 겨우 내뱉는 부족한 내 한 마디를 기꺼이 기다려 주고, 내가 알아들을 수 있을 만큼 속도를 조절해 주고, 더 쉬운 단어로 다시 말해 준다. 그것은 분명한 배려이고, 호의다.


그래서 더 조심스러워진다. 나는 그들의 말을 전부는 아니지만, 일상의 흐름 정도는 따라가며 생각보다 많이 듣고 있다. 웃어야 할 지점과 고개를 끄덕여야 할 순간도 안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내가 말해야 할 차례가 왔을 때다.


질문 하나를 받으면, 말은 바로 나오지 않는다. 머릿속에서 뜻을 한 번 옮기고, 문장을 다시 배열하고, 말해도 괜찮을지를 잠깐 가늠한다. 그 사이에 생기는 짧은 공백. 그리고 어렵사리 꺼낸 문장 뒤에 종종 따라오는 말들이 있다.


"너 영어 많이 늘었다."

"전보다 훨씬 좋아졌어."


그 말이 어떤 뜻인지 안다. 잠깐은 다행이라는 마음이 먼저 스친다. 그러나 이내, 내가 방금 무엇을 말했는지는 흐려지고, 얼마나 잘 말했는지가 앞에 남는다. 대화의 일부라기보다, 언어의 수준을 보여 준 사람이 된 기분. 그 예민함이 늘 조금 불편하게 남는다.


그래서 나는 자주 듣는 쪽으로 물러선다. 말하지 않아도 되는 다수의 자리는 비교적 안전하다. 실력이 덜 드러나며, 평가의 기준 위에 올라서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그 자리에 오래 머물면 또 다른 감정이 생긴다.


내 감정과 이야기를 다른 언어로 옮기려다, 문장은 종종 끝까지 가지 못한다. 완성되지 못한 채 멈추거나, 설령 쉬운 말이라 해도 틀릴까 싶은 불안이 남아 말은 입가에만 맴돌다 이내 삼켜 버리게 된다. 그 침묵에서 또 다른 미안한 마음이 차오르며, 또 한 번 망설이게 된다.


모국어가 아닌 언어를 쓴다는 이유만으로, 왜 나의 말이 늘 평가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지. 그 질문은 아직 정리되지 않았다. 다만 분명한 건, 나는 그 평가의 시선 앞에서 자꾸 한 발을 물러서고 있다는 사실이다. 능숙해 보이기보다는, 쉽게 설명되지 않는 쪽을 택하면서.


어쩌면 이것은 언어의 문제가 아니라 태도의 문제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언어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부정하지 않는다. 다만 그 언어가 나를 증명해야 하는 도구가 되는 순간을 경계한다. 언어로 닿지 않은 그 관계 안에서조차 나를 잃어버릴 것 같다는 예감이 먼저 든다.


지금의 나는, 말이 조금 부족한 상태로 남아 있는 쪽을 택한다. 완성된 문장보다 더듬거리는 말을, 능숙한 대답보다 늦은 침묵을 허락하는 자리. 그 불안정한 위치가 아직은 나에게 더 정확하다.


여전히 이 언어들 안에 있다. 다만 앞으로 밀고 나가기보다, 관계와 말 사이에서 자주 멈춘다. 그 멈춤이 망설임으로 읽힐지라도 한 가지는 분명하다.


나는 이 언어들 앞에서, 나를 너무 빨리 요약당하지 않기 위해 한 발 물러서 있다.


zadrževanje.




이전 18화체류하는 언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