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말에 들어선 날
작년에 세종학당 교원 양성과정을 지내며, 슬로베니아 친구 두 명을 알게 되었다. 과정이 끝난 뒤에 가끔 메시지를 주고받던 사이였는데, 얼마 전 한 친구에게서 연락이 왔다. 한국어 토픽 시험을 준비하고 있는데, 가능하다면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온라인에서 만나 도와줄 수 있겠느냐는 조심스러운 부탁이었다.
그렇게 시작한 수업이 어느덧 몇 주가 지났다. 화면 너머에서 가벼운 안부를 나누고, 그녀가 어려워하는 단어와 문장의 맥락을 설명해 주고, 발음을 잡아 주는 시간들이 이어졌다. 가르친다고 말하기에는 조심스럽고, 함께 정리해 나간다는 표현이 더 맞는 시간이었다. 그러다 지난 주말, 그 친구와 만났다.
그날 우리는 그녀의 나라에서, 나의 모국어로 대화를 나눴다. 그 사실이 아주 생경했고, 그래서 더 설렜다. 내가 있는 이 동네에서, 내가 종종 가는 해산물 식당에 앉아 한국말로 수다를 떨고 있다는 그 장면 자체가 자꾸만 낯설게 느껴졌다.
음식이 나왔고, 우리는 자연스럽게 '맛있다'는 말을 주고받았다. 그러다 그녀에게 물었다. 이런 상황에서 식사 후 직원이 음식이 어땠는지 묻는 질문에 대한 대답, 혹은 좋다는 표현을 어떻게 말하면 제일 자연스러우냐고. 내가 알고 있던 말은 Zelo dobro였다. 틀리지는 않지만, 그건 어딘가 너무 반듯해서 오히려 포멀한 표현이라 했다. 그러곤 그녀가 웃으며 말해줬다.
"우리는 Ful Dobr라고 해요."
그 말은 설명보다 먼저 상황에 붙었다. 한국어로 치면, '정말 좋다'에 가까운 느낌으로, '맛있다'는 감탄 외에도 만족할 만한 여러 상황에서 두루 쓸 수 있었다. 말의 온도와 자리가 이렇게도 다를 수 있다는 게 꽤 흥미로웠다. 내가 알고 있던 언어가 교재의 언어였다면, 그녀가 알려 준 말은 실제 관계 안에서 살아 있는 말에 가까웠다. 마치 글말만을 배우던 내가 입말에 들어선 기분.
밥을 다 먹고 계산할 시간이 됐을 때, 그녀가 먼저 지갑을 꺼냈다. 나는 당연히 내가 사려고 했던 터라 그녀를 만류했다. 류블랴나에서 우리 동네까지 먼 길을 와 주었으니 한 끼 정도는 대접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그녀는 오히려 나에게 큰 도움을 받아 너무 고맙다며, 커피까지 다 사려고 마음먹고 온 것이라 했다.
나는 한국식의 정을 꺼냈다. 그러자 그녀가 무심히 한마디를 툭 던졌다.
"여기는 슬로베니안데...."
그 말에 둘은 머쓱함도 잊고 한참을 웃어댔다. 찰나였지만, 불쾌함 없이 존중과 배려가 오갔다.
카페로 자리를 옮기고선, 그녀에게 도움이 될 법한 한국소설과 가지고 있던 책 몇 권을 건넸다. 그녀 역시 봉투 하나를 꺼냈다. 정갈하게 준비한 일종의 수업료였다. 나는 받지 않았다. 나 역시 슬로베니아어를 더 공부하기로 했으니, 앞으로 그녀에게 배울 게 더 많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대신 말했다. 나도 도와달라고. 그녀는 기꺼이 고개를 끄덕였다.
슬로베니아어를 배우며 느끼는 나의 어려움을 그녀는 알아 주었고, 유독 많은 한자어와 유의어가 많은 한국어에서 단어 하나를 익히는 데 걸리는 그녀의 시간을 나 역시 이해할 수 있었다. 그래서인지 대화는 오히려 더 오래 이어졌다. 그날 내가 배운 건 언어가 관계가 되는 순간이었다.
그녀와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슬로베니아에 대해 내가 막연히 가지고 있던 이미지와, 이곳에서 자란 사람의 시선 사이에도 자주 틈이 생긴다. 또한 그녀가 오래전 한국에서 잠시 머물던 시간 속에서, 외국인으로서 조심스럽게 바라보았던 장면들에서는 공감과 보완으로 그 틈이 조금씩 메워지기도 했다. 때로는 자연스럽게, 때로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그 차이를 듣고 말하는 일도, 언어를 통해 가능한 배움의 순간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가르치고 배우는 사이이면서, 동시에 서로의 언어에 기꺼이 머뭇거리는 사람으로 다음 만남을 약속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