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보다 먼저 피는 계절

봄이 모은 자리

by 슬로하라


특별히 멈출 이유도, 오래 바라볼 이유도 없을 평범한 거리도 어느 날 계절을 품고 와 있었다. 넓지 않은 길목 한쪽, 건물들 사이로 나무들이 한꺼번에 꽃을 터뜨리고 있었다.


분홍빛 꽃송이들이 나무를 가득 덮고 있었다. 가지는 보이지 않을 만큼 촘촘했다. 며칠 사이에 이런 일이 생겼다는 것이 조금 놀라웠다. 겨울의 기척이 아직 남아 있는 도시가 그곳만 갑자기 다른 계절로 건너온 것 같았다. 시간이라는 것이 이렇게 눈에 보이는 방식으로도 바뀐다는 사실을 그날 새삼 떠올렸다.


나무 아래에는 사람들이 제법 모여 있었다. 마치 이 한정된 공간으로 초대받은 이들처럼 모두들 자연스럽게 발걸음이 멈춘 듯했다. 어떤 사람은 사진을 찍고 있었고, 어떤 사람은 고개를 들어 꽃을 올려다봤다. 아이들은 나무 아래에서 뛰어다니고, 강아지를 데리고 산책을 나온 사람도 있었다. 사람들의 옷차림은 아직 겨울을 완전히 벗지 못한 채였지만, 나무는 이미 꽃을 틔우며 계절을 먼저 맞이하고 있었다.


누가 부른 것도 아닌데 사람들이 같은 나무 아래 모여 있었다. 서로 말을 걸지 않아도 모두가 같은 장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도시에서는 보통 사람들이 흩어져 지나가는데, 그날만큼은 잠깐 같은 이유로 멈춘 듯했다.


봄은 생각보다 조용하게 시작된다. 특별한 신호가 있는 것도 아니다. 다만 어느 순간 거리의 공기가 달라지고, 사람들의 발걸음이 조금 느려진다. 그날은 사람들이 어디에서 멈추는지만 봐도 충분했다. 그 장면은 말보다 먼저 이해됐다.


풀밭 사이로도 곳곳에 고개를 내민 데이지들이 어느새 민들레와 함께 발목을 간지럽힌다. 발밑에서도 작은 봄이 계속 올라오고 있었다.


꽃은 잠깐 피었다가 사라질 것이다. 며칠 뒤 이 자리를 다시 지나가면 사람들은 아마 예전처럼 그냥 걸어 지나갈 것이다. 그 짧은 시간 동안 많은 사람들이 같은 이유로 잠깐 멈춰 있었다.


나무 아래에서 꽃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표정은 서로 다르지 않았다. 말을 나누지 않아도 그 장면은 충분히 이해됐다. 마치 만국공통의 언어처럼, 봄을 먼저 틔운 자연 앞에서 사람들은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있었다.


생각해 보면 계절은 늘 같은 자리로 돌아온다. 매년 이맘때면 꽃이 피고, 사람들은 잠깐 멈춰 서서 그것을 바라본다. 달라지는 것은 계절이 아니라, 그 장면을 바라보는 나의 자리일지도 모른다.


그날 오후, 그 나무 아래에서 모두가 잠깐 같은 계절을 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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